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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Nov 25. 2018

2018년 사과 농사  정리

수확 후에 아쉬움이 적을 그때를 위하여..

올해  성적표는 아주 실망스러웠다. 지금까지 받은 5차례의 성적표 중 가장 나쁜 결과다.

전년에 비해 수량 20% 감소, 품질은 크기 면에서 완패 ( 예년에 볼 수 없던 작은 크기의 사과가 많았다), 사과의 착색과 맛은 어느 해 보다 좋았지만 이는 이례적인 단풍 현상에 덕이었다.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수량이 적은 것은  이른 봄의 낙과 현상 때문이고, 여름의 폭염으로 사과가 안 자라 작은 것이어서 좀 억울한 부분이 있긴 하다. 그러나  나 보다 상황이 나쁜 사람도 많지만  나 보다 성적이 좋은 사람도 있어서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하기엔 무리가 많다. 내심 더욱 켕기는 것은 사과 마이스터 2년 과정이 끝나가는 이 마당에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배워서 성적이 그 모양이냐고 하면 정말 할 말이 없다. 머리에 든 것의 무게와 손에 쥐는 돈의 무게가 반비례를 하는 현상에 대해 무어라 변명할 말이 있겠는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올해 사과 맛에 대한 평가가 다른 해 보다도 더 좋아 재고가 급격히 소진되어 고정 고객들에게 늘 하던 수확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문의하시는 고객들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급을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수량이나 크기를 논하기 전에 봄의 이상 낙과 현상과 여름의 폭염 그리고 가을의 폭우를 견디고 이 정도 수확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고마워할 일이다. 아주 오래전 겨울 산행에서 먹은 사과 맛에 조물주에게 "이건 작품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한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사과 한 알 한 알이 자그마한 기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농부는 다만 조물주의 심부름꾼 일 뿐.

결론적으론 생각 한 만큼 결과가 좋진 않았지만 이는 절대적 기준이고 상대적인 기준으로는  주위의 다른 이들보다 나쁜 편은 아니라고 마음의 위안을 삼으며 그나마 이렇게라도 잘 자라준 것에 고마워해야 한다.


새로 한 일들

올해는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였는데 그 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는 없지만 내년에도 계속하며 그 효과를 가늠해 보려 한다.

1. 가지와 열매의 주 단위 측정
5개의 나무에서 각각 5개의 가지와 열매를 선정하여 주별로 가지의 길이와 사과의 둘레를 측정하였다. 이는  내 밭의 신장기와 휴지기를 알아보고 사과의 성장 사이클을 파악하려는 것인데 올해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내년의 자료를 비교하면 좀 더 확실한 그림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2. 퇴비차의 관주와 엽면시비
제주대의 현해남 교수 강의를 듣고 시행하였는데 그 효과는 아직 측정할 수 없으나 퇴비차가 퇴비의 90%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니 내년에도 계속하며  전반적인 효용성을 관찰해 보려 한다.

3. 심층수의 엽면살포 
마이스터 동기생의 추천으로 올해 안동대 전 교수님의 착색 보조제 처방에서 소금 대신 동해 심층수 사용하여 엽면시비를 하였는데 두세 군데의 다른 과원에 비하여 밝고 붉은색이 좋다고 판단된다. 색이 곱게 들은 사과들로 포장이 되면 팔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름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는데 과학적 분석이 아니어서 이 또한 내년에 다시 볼 일이다.

4. 에탄올의 착색 촉진제 적용
경북대 강 교수님의 실험 결과를 보고 에탄올을 수확 3주 및 2주 전 엽면살포하였는데 이는 인산칼륨을 살포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전술 한 바와 같이 올해 색이 좋은 이유가 단풍 현상, 작년보다 긴 일조시간 그리고 동해 심층수와 에탄올이 있으니 각각의 공헌 때문일 수도 있고 다 아닐 수도 있다

5. 기계식 사과 선별기 도입

봉화군의 50% 지원을 받아 기계식 사과선별기를 도입하였다. 지원금액의 50% 정도가 기계를 들여놓기 위한 비가림과 바닥 평탄작업에 소요되긴 하였으나 작업효율이 엄청 향상되어 수확 후에 크기별 보관이 가능해졌다.

마을 단위로 공동선별기가 있는 곳이 있고 설비 이용면에서 그것이 효율적이나 우리 마을은 사과농가가 많지 않아 그런 여건이 안되어 개별 설치가 불가피하다.

6. 전정의 자체 해결

작목반에서 전정교육을 실시하고 작목반원들끼리 품앗이로 전정을 별도의 경비를 들이지 않고 자체 해결한 첫 해가 되었다. 귀농할 때부터 꿈꿔오던 작업형태였는데 작목반원들의 실력 수준이 향상되고 팀워크가 생겨서 가능해진 일이라 아주 자랑스럽다.


못했던 일들


수확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사과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첫 수확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이라 맞는 것인지 모르지만 1차 수확 시 색이 덜 난 것은 다음 수확 때로 미루게 되는데 2차 수확 시 상품과의 비율이 높지 않아 추가로 투입된 비용에 상응하는 산출이 나오지 않는 경험을 했다. 유튜브에서 미국의 사과 업자도 우리처럼 은박지를 깐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트랙터+2인 인력을 사용하여 은박지를 까는 농장주의 변은 1차 수확률을 높이기 위해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에게도 1차 수확률이 중요한 것이다..


1차 수확률을 노이기 위해서는 나무 전체에 균형 잡힌 착과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적과의 프로세스가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ATS를 이용한 약제 적화 이후 동네 아주머니들이 도와주시는 1차 및 2차 적과를 거친 후에 내가 돌아다니면 수시로 적과를 하는 패턴에서 3차 적과를 내가 마무리 짓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적으론 늘 기다리는 일들이 있어 8월 말 9월 초에 허둥지둥 끝내게 되는 관행을 개선하여 내가 하는 3차 적과를 7월에는 마무리 지을 수 있어야 한다. 올해는 작년보다는 나았지만 부사의 경우 9월 초에 허둥지둥 최종 마무리를 지었으니 이 또한 사과의 소형화에 일조를 한 셈이다.


과수원 내의 간이 창고를 새로 지을 예정이었는데 내년의 숙제로 넘기고 강 밭의 나무들을 대목 부분이 드러나도록 포클레인을 불러 작업할 예정이었으나 지주를 먼저 보강하지 않으면 나무가 쓰러질 위험이 있어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여섯 번째 사과농사인 2019년에는 유목 밭의 나무가 3년 차가 되고 성목 밭은 19년 차가 된다. 성목 밭의 줄어드는 생산량을 유목의 생산량이 늘어날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고 궁금한 것은 내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사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인데 모르고 살아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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