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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Mar 31. 2019

두렵지 않은 봄  

 사과농부의  6번째 맞는 봄  

드디어 전정이 끝났다. 1월 16일 시작하여 3월 27일 종료되었는데 영농일지를 보니 총 소요 시간이 192시간이었다. 그중에 약 20시간이 산수 형제분들을 비롯한 외부인사의 우정출연이었다. 하루 7시간을 순 작업시간으로 보면 약 27,8일이고 달력 날수로는 40일 걸린 셈이다. 2년 전까지 외부인사들에게 전정을 맡겼을 때는 6명*8시간*2일= 96시간이 걸렸으니 내가 혼자 하면서 절묘하게도 100%의 시간(96 vs 192시간)이 더 걸린 셈이다. 그러나 나는  작업하면서 병든 가지와 말매미가 알을 낳은 가지를 수거하고, 큰 가지를  베어 낸 곳에 도포재를 바르고, 지저분한  유인줄 제거까지 하였으니 공평한 비교는 아니다. 어쨌든 전정을 거의 나 혼자 작업을 마친 첫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한다. 전정이 끝났으니 자른 가지를 통로로 모아 놓고 제초기로 잔가지를 파쇄하는 작업이 아침부터 시작하여 점심 무렵에 끝났다. 예년에는 이동 파쇄기를 이용하였는데 첫해에 왼손 검지 손가락이 부러졌었다. 다치지 않아도 3-4일 걸리던 작업이었는데 반나절만에 해치우니 역시 기계의 힘이 무섭다.

 잔가지 파쇄하기

전정이 마무리될 즈음이면 봄이 온다. 오는 봄을 두려워하는 것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과농사 1년 선배이신 Y교수님이 작년 초에 내게 물으셨다, " 봄이 두렵지 않으세요?". " 두렵다 마다요, 살면서 봄을 무서워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서로 웃었었다. 첫해에는 아는 것이 없이 사과농사가 시작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 뒤로는 봄에 시작되는 일련의 작업 분량이 부담이 되었다. 어서 빨리 2차 적과가 끝나는 6월 말이 되기를 하는 마음이었다. 농업의 특성상  결과에 대한 상대적으로 큰 불확실성이 마음 한편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올해 꽃 상황이 어떨지, 서리등 동해 피해는 없을까? 착과가 제대로 되는지, 착과 된 아이들이 제대로 자랄지 등등에 대한 해답은 시간이 가면서 나타난다. 걱정을 해서 결과가 달라질 수만 있다면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대수로운 일이 아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가 있을 때만 걱정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걱정할 필요가 있을 때라니? 과연 그런 경우가 있을까 싶다. 그런 경우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모든 경우에 걱정을 할 것이다.)


장독대 측우기로 45mm의 비가 온 다음날 ( 문경 고수분을 따라 장독대에 실험실용 실린더를 갖다 놓아 우리밭에 내린 비의 양을 재는 측우기로 사용 중이다.)  강가에 있는 밭으로 가는 길에 두꺼비들을 보았다. 우리 사과밭 바로 아래에 있는 자그만 논의 한 귀퉁이 빗물이 고인 곳에서 두꺼비들이 짝짓기에 열심이었다. 아주 적은 면적이었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중요한 생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두꺼비나 개구리가 알에서 깨어나는 2주가 걸린다고 하니 앞으로 2주간 비가 안 오면 알들을 말라버릴 것이고 그들은 목표 달성을 못하겠지만 치는 볼마다 홈런을 내는 타자는 없는 법이다.

어떤 타자는 삼진 아웃을, 어떤 이는 안타를, 또는 사구를 골라 출구하지만 도루하다 아웃 당 할 수도 있다, 현재의 조그만 물웅덩이가 저들 삶의 목적을 이루는데 충분할 수도 있는데 저 넓은 논에 물이 꽉 차는 것을 원하는 두꺼비가 있다면 그건 바보 같은 욕심이다. 조건이 맞으면 본능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세대를 이어가는 방법이다. 


논뿐만 아니라 논 옆 배수구의 고인물에도 두꺼비들이 난리를 치르는데 바로 앞의 강가에는 왜가리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논으로 오면 순식간에 포식할 수 있는 기회인데 이쪽으론 절대 오지 않는다. 5월 중순 모내기 후에 올챙이들로 논이 북적거리면 그때 되어야 논으로 날아든다. 아마도 산란기의 두꺼비는 독이 있어서 왜가리들의 식단에서 제외된 듯하다. 그래야 두꺼비의 씨가 마르지 않는다.  작년에는 오후 내내 앞 논에서 식사하며 시간을 보내던 왜가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논 주인이 왜가리에 밟히는 모가 일어나지 못할까 봐 농약을 살포한 때문이었다. 자연의 섭리가 참으로 절묘하다. 왜가리가 있던 없든 목청껏 울며 배우자를 구할 수 있게 한 두꺼비,  과포화를 막기 위한 왜가리를 이용한 올챙이 수 조절, 논에 약을 탄 것을 알아차리는 왜가리들.  다만 왜가리들이 그렇게 많이 밝고 다녀도 모들은 멀쩡하게 살아남았으니 사람의 성급한 성미만 쓸모없이 보이나 그 덕분에 목숨을 유지한 올챙이가 있을 터이니 그 또한 자연의 섭리다.


꽃사과 &  꽃다지와 냉이 꽃

좌측의 사진은 꽃사과 종류인데 전정 마무리하다 눈에 들었다. 밑에 있는 쪼그라든 꽃사과는 작년에는 예쁜 붉은색을 뽐내던 꽃사과였지만 지금은 저 꽃처럼 예쁜 연두색 봉우리와 대비되어 미처 떨어지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처럼 보인다. 늘 젊음과 새 것이 예뻐보이고 생산성이 있다, 이 또한 자연의 섭리.


올해 우리 사과밭에서 일어 나는 모든 것들 또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조물주의 섭리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으로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는 일이다. 나로서는 사과농부로서 직무유기없이 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하여 그 일들이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하면, 혹은 진행되도록 노력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저 조그만 물웅덩이에서 짝을 구하려 애쓰는 일이다. 실체적인 대상도 없이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올해는 꽃 개화 시간표를 만들면서 작약이 피고 밤나무 꽃 향기가 퍼질 때까지  꽃구경 하면서 일하는, 화려하지만 차분한 봄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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