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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Apr 14. 2019

사과나무와 반려동물의 주인에
대한 시각

우리 지역의 사과개화는 4월 25일 무렵이다. 개화 이전에 준비할 것들이 많다. 겨우내 쉬었던 관수 시설 점검부터 유목에 더 많은 가지를 내기 위해 하는 아상작업, 홍로의 꽃 정리 하기 등. 그중에서 내가 제일 하기 싫은 작업은 부란병에 걸려서 죽은 나무를 정리하는 일이다.

사과 부란병
나무의 줄기 및 가지에 발생되어 가지 또는 나무 전체를 말려 죽이거나 나무세력을 약하게 하여 과실 수량에 심한 영향을 미치는 무서운 병이다. 
본 병은 처음 나무껍질이 갈색으로 되며, 약간 부풀어 오르고 쉽게 벗겨지며, 시큼한 냄새가 난다. 
병이 더욱 진전되면 병에 걸린 곳에 까만 돌기가 생기고 여기서 노란실 모양의 포자퇴가 나오는데 이것이 비, 바람에 의해 수많은 포자로 되어 날아간다. 병에 걸린 부위는 그 후 건조해져서 겉껍질은 말라붙으며, 나무를 한 바퀴 돌면 윗부분이 말라죽는다.                             (출처: 신젠타코리아)

일반적으로 부란병은 늙은 나무가 많이 걸린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우리 밭의 18년 차인 성목들은 매년 부란병으로 그 수가 줄고 있다. 봄이 오기 전에 정리를 해야 하지만  항상 이맘때쯤  죽은 나무를 내가는 작업이 진행된다. 오늘은 4그루의 성목을 제거하여 반출하였는데 나무를 가지고 나오면서 문득 우리 과원의 사과나무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오면서 주위 나무에 설명을 하였다.

 " 얘네들은 부란병이 걸려서 죽은 나무다. 놔두면 너희들도 위험해, 그래서 제거해야 한다." 말을 하면서도 나무들이 고마워할지 자신이 없었다. 푸른 숲을 위하여 관리하고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사과를 얻기 위해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고 당신을 위한 것이잖아, 왜 고마워해야 되는데?". 정말 그렇게 따진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름 열심히 사는 것이 존재의 이유여서  " 나는 너를 돌보고 너는 맛있는 사과를 주고 서로 도우며 살면 좋잖아, 그냥 그렇게 살자" 고 하는 것이 어차피 가야 하는 길 더 편하고 즐겁게 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게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 저 실려가는 나무들 밑동의 체관부,  물관부가 다 말라 붙었지만 저장양분으로 마지막까지 꽃을 피우기 위해 사투를 벌이 말라간다. 당장 내가 죽을 판이지만 시시콜콜 따져가며 사는 친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 더 진도 나가기 전에 혹시 이 친구 농사짓는다고 내려가더니 맛이 좀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시간이 없더라도 짬을 내어 아래의 유튜브를 보기를 권한다. "식물의 정신세계- 피터 톰킨스, 크리스토퍼 버드"를 기반으로 영국 BBC가 제작한 다큐 필름이다. 고속촬영 화면이 멋진 화면도 많고 내용도 재미있다. 한글자막이 없는 것이 흠인데 책을 보면 이해가 잘 된다. 정말 시간이 없다면 그 아래 두 개의 짧은 꼭지는 봐야 한다. 그래야 내가 비정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테니까.


1. 

https://youtu.be/kTWcVnMPChM

2.

https://youtu.be/HexQpMhfEgk

3.

https://youtu.be/xvtcA46O-vA

" 식물의 정신세계" 책은 1993년 출간되었는데 식물이 보고 느끼는 감정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거짓말탐지기 신호를 통하여 입증하고 있다. 위의 마지막 꼭지는 양배추가 잘리는 것을 보고 격렬하게 반응하는 식물, 식물을 파손시킨 간호사에 반응하는 식물을 보여주고 있다. 부란병이 걸린 나무를 캐어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가지를 다 자르고 남은 주간 쓰러트려  뿌리째 반출한다. 그 과정을 주위의 나무들은 다 보고 있을 터이니 작업할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비교적  최근에 (2015년) 출판된   " 매혹하는 식물의 뇌- 스테파노 만쿠소, 알레산드라 비올라 지음"에서 피렌체대학 교수이며 '국제식물신경생물학연구소' 수장인 만쿠소 교수는 더 강력한 입장으로 이렇게 말한다.

고양이를 보고 사교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이라고 하는 사람은 있어도 참나무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또 참나무를 영리하다고 하는 사람으로 없을 뿐 아니라, 사랑스럽다고 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라. 하나의 생명체가 영하지 않거나 사교성이 없었다면, 오랜 진화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만약 식물이 환경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었다면 일찌감치 멸종하여 지구 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는 식물이 환경에서 수집한 정보를 보유. 저장. 공유. 처리.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유기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렇게 영리한 생물이 일관된 방식으로 정보를 획득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학문을 식물 신경생물학 (Plant Neurobilogy)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가 부모를 닮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이 '생명의 경이'라고 생각한다면 추운 겨울을 버티고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나무들의 행위도 당연히 같은 범주로 받아들여야 한다. 데크 밑의 햇볕 경계선 상에 저렇게 예쁜 꽃을 피우는 제비꽃도 그렇다.


책이나 유튜브뿐만 아니다. 내 사과 선생님의 선생님인  우리나라 사과의 일인자로 꼽히는 신종협 선생이 내게 한 말 또한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아직 사과를 시작하기 전에 배우러 방문했던 내가 물었다. "부부가 5천 평 하시려면 바쁘실 텐데 (저 같은) 손님이 너무 많이 찾아오는데 짜증 안 나십니까?" "바쁘지요, 그런데 제가 짜증을 내면 나무가 다 압니다. 그러면 좋은 사과 안 나옵니다." 정말 방문객이 많은데 지난 5년간 그가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살아 있는 것은 사람과 식물을 빼고 좋아하지 않아서 시골에 살면서도 동물은 기르지 않는다. 그러나 건 창고에 쥐의 흔적을 보고는 가끔 그곳에 고양이가 먹을 수 있도록 동물성 음식찌꺼기를 갖다 놓는다. 고양이는 윗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일 수도 있고 도둑고양이 일 수도 있는데 작전이 주효해서 쥐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고양이들에게 정기적인 식사제공자로 여겨지지 않도록 불규칙하게 먹이을 제공 하는데 내가 건 창고를 갔다 오면 어찌 알고 창고 주변을 기웃거린다. 내가 고양이를 기른다면 때로는 혼도 내겠지만 정기적인 먹이 제공자로 고양이는 내게 재롱을 피우며 관심을 유발하려고 할 것이다.


과원의 주인이자 관리자로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과원에서 나무들과 지내지만 가끔씩 주어지는 난폭한 파괴자의 역할을 나무들이 어찌 보고 있을지 궁금하고 신경이 쓰인다.  또한 열심히 물 주고 비료 주고 방제하고 전정하고 아상을 내는 작업을 하지만 그럴 때  맛난 사과만을 생각하는 것은  내 욕심만을 앞세우는 것으로 오히려 부란병 걸린  나무를 잘라 내는 것보다 더 나쁜 점수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의 섭리는 기본적으로 '이심전심'이 아닐까? '돈 버는 것이 목표가 될 수는 없어,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면 돈을 벌 수는 있지'. 맞는 말 인지 모르지만 비슷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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