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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Jun 02. 2019

한 놈만 남기고 다 자르기

적과(摘果)의 달, 5월.


시각의 차이

역시 마누라 말이 맞았다.
이번 개화는 냉해로 인해 작년보다 일주일 이상 길어졌고 먼저 핀 꽃들이 피해를 입어 걱정할 때 " 매년 개화기 때 들은 얘기"라며 기다려 보라던 마누라 말이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현재로서는  맞는 듯하다. 제일 먼저 꽃피는 중생종 외에는 착과 상황이 예년과 비슷해 보인다. 당장의 상황에 일희일비 하기보다는 좀 더 담담하게 좀 더 멀리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할 나이인데...


순경 10명이 도둑 1명 못 잡는다는데 '적과는 도둑이 만 명인데 순경은 서너 명'인 셈이다. 열심히 보면서 적과를 한다고 해도 돌아보면 적과 되지 않은 사과들이 여기저기 즐비하다.  보이는 시각의 차이에 따라 또 의식에 따라 솎아야 할 사과들이 보이기도 하도 안보이기도 한다. 초창기에는 '성의 없이" 일한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막상  내가 해보니 어찌 이런 것을 못 보고 지나갔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적과 전,후

간단한 산수

5월 중 적과를 위한 가위질을 몇 번이나 했을지를 간략하게 계산하면: 

성목 :700*70*1.3*1.5/0.7*3.5=477,750/20=23,887 성목

유목: 600*15*1.5/0.7 *3.5=67,500*0.6=40,500 - 유목
 
성목 700주에서 70개들이 사과 컨테이너 1.3배의 사과생산(2018년 기준)했고  생산된 사과는 1차 적과 후 남겨진 150%의 사과 중 선발, 그 선발된 사과꽃은 대략 30% 꽃을 제거하여 남겨진 것이다. 최종 선택된 한 개의 사과는 개당 5-6개의 측화 중 선발된 것으로 나머지 4-5개의 측화는 약 3-4번의 가위질로 제거된다. 올해 1차 적과의 연인원은 총 20 명으로 나의 노동력은 포함되지 않았다. 


* 유목 600주는 주당 15개 사과 수확으로 책정하고 이는 150%의 사과 중 선발되었고 역시 30%의 사과 꽃눈 제거되었고 측과는 3.5번의 가위질로 제거되는 것으로 간주하였고 유목은 거의 나 혼자 작업했으므로 내 노동력을 다소곳이 60% 적용한 결과.


금수저 흙수저

결국 5월 한 달 동안 나는 줄잡아 5만 번 이상의 가위질을 한 셈인데 여기에는 홍로 꽃 솎기는 포함되지 않았다.  선택의 주체가 되어 가위질을 하면서  '자연의 선택'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연 속에서 개체의 존재 이유는 '씨를 남기는 것"이다.  하나의 사과나무 안에서도 경쟁자를 제치고 선택을 받기 위한 사과꽃들 간의 경쟁, 그 경쟁에서 선택되어 살아남은 꽃눈 안에서 5-6개의 사과꽃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유리한 주자는 '금 숟가락'을 물고 난 아이다. 좋은 사과를 얻기 위해서는 한 꽃눈의 가운데서 제일 먼저 피는 중심화를 선택하여야 한다. 대개는 중심화 즉 '금 숟가락'을 물고 난 녀석이 선택되는데 그 녀석이 제일 먼저 피기에  올해처럼 냉해를 입으면 둘째, 혹은 셋째가 선택되기도 한다. 그래서 레이스는 중도 포기하면 안 된다. 끝까지 항심을 가지고 전력을 다 할 필요가 있다. 냉해 같은 돌발 사태가 없어도 둘째는 포기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둘째가 첫째보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아 보이기도 한다. 아래 사진의 경우 누가 첫째일까?

위쪽에 있는 녀석이 잘 생기기도 하고 살짝 커 보인다. 그러나 나는 적과를 하면서 아래에 있는 친구를 선택하고 위에 있는 녀석을 제거했다. 아래 있는 과일의 과경 (열매의 줄기)이 더 굵기 때문이다. 먼저 난 녀석이 더 많이 먹어선지 아니면 금 숟가락의 위력인지 과경, 즉 영양분 공급 통로가 커서 앞으로 더 잘 자랄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중심화를 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수제 얘기가 나오면 흙수저도 나와야 하고 평등, 불평등 그리고 억지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평등까지 전개되어야 하는데 골치 아픈 얘기다. 잘 모르면 얘기하면 안 되지만 '불평등한 것이 자연적인 것'이고 인위적으로 불평등을 보완하려는 것이 실제는 더욱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예를 들면 "학종"을 만들어서 성적 위주의 평가를 벗어나려 하는 시도를 하지만 내 견해로는 '개울물에서 용 나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시도로도 보인다. 적과와는 거리가 더 멀어지지만 숙명여고 쌍둥이 아빠는 구속되었고 애들은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못 다니게 된 것도 "학종"때문이고 자신이 연구 발표하는 논문의 공저자로 자기 애를 집어넣어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시킨 교수 일도 "학종"으로 이해되는데 그 교수가 구속이 안 된 것도 불공평하고 평등한 결과가 아니다. 

불평등한 것을 평등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은 오직 둘째 사과처럼 선택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선택받을 수 있도록 자기 실력을 기르는 일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뿐이라는 것을 사과가 얘기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

5월 6일이 낙화 후 방제일이었으니 작년에 비하면 일주일 늦어진 셈이다. 동네 분들이 해주시는 적과도 그만큼 늦어져서 5/21일부터 시작하여 4일간 총 20 품이 들었다. 결국은 봉화에도 작년부터 외국인 노동자의 물결이 시작되었다. 20인분에는 6인 분의 말레이시아 친구들도 포함되는데 적과로 외국인을 쓴 것은 처음이다. 다행히 영어가 되는 친구가 있었고 마침 그가 최연장자 (43세)여서 다른 이들에게 작업 내용을 전달하여  일이 수월했다. 역시 사과농사도 짓는 마을 이장이 당일 아침 전화해서 잘 교육시켜 놓으면 자신을 포함한 우리 마을 사과하는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니 잘 부탁한다고 했다. 20대 초반부터 40대 초반까지의 말레이시아 인들은 말레이시아 본토와 떨어져 있는 키나발루 출신 들이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혼재해 있어 준비가 까다롭다. 영어 하는 친구가 혼자 이슬람인데 돼지고기는 안 먹어도 맥주는 좋아한다. 적과에 있어서 일의 효율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50% 정도. 결국 그들의 진가는 힘쓰는 일. 동네 남자 임금의 2/3 가격에 젊어서 힘도 좋아 작년 사과 수확 시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석 달의 비자면제 기간 동안에 비 오는 날 빼고 일을 하면 최대  5백만 원 정도 벌어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작년에 왔던 친구들이 또 왔다는 것을 보면 그들 기준으로 괜찮은 일 인 모양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월남, 중동 나갔던 것을 생각하면 그들을 통해 우리를 본다.


수구와 진보

사과 선생님이신 하선생도 적과가 어렵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내게 늘 위안이 되었다. 선생님도 어려운데 학생에겐 어려운 게 당연하다. 나름 맞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적과를 진행하게 되는데 어찌 보면 방향도 모르면서 눈감고 더듬으며 나가는 것과 같은 형세다.  올해부터 스마트폰으로 의문이 나는 곳에 사진을 찍어 이유를 적어두고 그 장소에 표시를 해 놓아 한 두 달 뒤에 확인하기로 했다. 이런 방법으로 실용적인 적과지식을 늘릴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는 기본적인 지식 즉 정화에 붙은 사과를 선택하고 액화는 버려라, 40-50개의 잎수를 확보하기 등의 룰에 입각하여 적과를 하다가 하선생에게 자문을 했다. 하선생의 요즘 방법은 "과대가 짧은 것"을 선택하라는 것으로 정화라고 하더라도 과대(가지부터 과일 시작점까지의 길이)가 길면 (1.5-2Cm 넘으면) 정과가 되지 않으니 버리고 큰 것 위주로 잎이 많은 것을 고르되 액화라도 그런 범위에 들고 과대가 짧으면 선택하라고 한다. 정화면 작아도 앞으로 커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적과를 해온 나는 '수구세력'인 셈이다."진보"적인룰에다가 내가 얻은 지식으로 무장을 하고 적과를 하면 더듬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방향은 알고 가는 상태가 될 것이다.


사실 적과를 잘 하든 못하든,  수구든 진보든 아직 내 눈에는 너무 붙어 있지만 않으면  잘한 것 같다. 실상 잘 못했다고 하더라도 눈으로 보이는 큰 차이는 없다. 다만 고수들의 과원에는  나무에 달려있는 사과의 크기가 일정하다고 하는데 그것이 적과를 잘한 것이다. 그런 때가 올 수 있도록 끝까지 실력을 연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또한 사과가 다시 상기시켜준 레슨이다.

이제 1차 적과는 마무리되고 2차 적과는 6/9 이전에 끝내는 것이 목표여서 마음은 바쁘고 날은 덥지만 고소작업차에서 작업을 하며 반짝이는 사과 잎들을 보면 " 아 좋구나" 소리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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