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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May 19. 2019

식물에게 영혼이 있을까?

"매혹하는 식물의 뇌'와  "세컨 네이처" 

단순한 일상생활 자체도 일종의 기적이다. 아침에 눈이 떠지면서 이루어지는 일상생활이나 추운 겨울을 휴면으로  이겨내고 사과나무에 꽃이 피고 벌이 날아들고 수정이 되는 것 모두가 기적의 연속이다. 살아 있음으로 가능한 일들이다. 재활훈련을 받아본 사람은 안다. 그저 팔 하나 굽혔다 펴는 게 , 무릎을 접었다 펴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를. 사과농사를 짓게 되면서 식물들의 반응이 생각 외로 예민하고 기민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으면서 그들의 인지 - 반응 방식이 몹시 궁금해져서 '식물'이 들어가는 책을 만나면 약간의 설렘을 가지고 읽게 된다.


1. 매혹하는 식물의 뇌, 스테파노 만쿠소, 알렉산드라 비올라 지음, 행성 B이오스 


일단 제목과 내용이 내가 궁금해하는 얘기들이어서 진도가 빨리 나갔다.  지은이 스테파노 만쿠소는 피렌체대학 교수로소 대학 부설"국제식물신경학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식물 신경"이라니 멋진 네이밍이다.) 그의 저서 "식물 혁명"이란 책을 먼저 읽으며 이 책을  만났다. 공저자 비올라는 과학 저널리스트며 방송작가이다. 이 책은 2015년 뒤에 소개하는 세컨드 네이처의 저자 마이클 폴란의 추천사와 함께 출간되어 번역본은 2016년 나왔다.

사람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일컫는 "식물인간"이라는 표현이 심각한 식물에 대한 무지의 발로라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프레임으로 식물의 권리와 존엄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식물의 지능을 입증하는 과학적 증거 소개
-식물과 동물의 차이점 발생과정 설명

-식물의 오감 (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식물과 다른 식물, 곤충, 동물과의 상호작용

- 지능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식물


일부 내용

음파 노출(주파수  100-500 Hz)
유전자 발현 촉진
BOSS와 국제 식물 신경생물학 5년 연구 프로젝트로 과일의 향, 색, 폴리페놀 함량 증가 확인
곤충의 방향감각 혼란 야기
뿌리도 음파 인식하며 의사소통에 이용

뿌리의 수분 측정능력, 미량원소 및 무기염류  탐지 능력, 중력, 자기장 감지

BVOC s(Biogenic Volatile Organic Compound- 휘발성 유기화합물)를 이용한 의사소통 및 방어


저자는 식물의 지능은 뿌리의 근단에 있으며 각각의 근단은  데이터처리센터로서 다른 근단과 연결되어 거대한 집단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아주 작은 식물도 1500만 개의 근단을 가지고 있으니 큰 나무들은 어마어마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분산 지능을 진화시켜서 창발 행동의 역동성이 하나의 개체 내부 즉 뿌리에서 나타난다. 무리를 형성하면 나타나는 창발 행동과 근단과 뿌리를 연결한 착상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책을 읽으면서 식물의 분산 지능이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블록체인"의 구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 그래 구조도 알겠고 지능도 인정하는데 식물의 생과 사를 구별하는 포인트가 무엇인가?"가 긍금해졌다.

사람이나 동물의 구조와 기능을 다 알아도 살아있게끔 하는  그 무언가가 없으면 곧 흙으로 돌아간다.

어제 하선생과 한 시간 이상 통화를 하면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하선생의 관찰에 의하면 수분 스트레스받은 사과나무는 꽃이 많아도 결실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왜냐하면 각 나무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그 나무는 물에 트라우마가 있어서 수분이 부족한 것을 상정하고 결실을 맺기 때문이 아닐까요?". 항상 수분 부족에 시달린다면 과일을 많이 달면 다 같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여러 현상을 감지하고 전체로서 방향을 정하려면 분산이 아무리 많이 돼있더라도 결정의 주체는 있어야 한다. 책 서두에서 언급하는바 "식물에게 영혼이 있을까?"라는 명제는 그리스 시대부터의 논쟁거리였다고 하는데 나는 그가 학자이기 때문에 "영혼"을 언급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영혼과도 같은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는 저술가 이자 정원사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위 책의 추천사를 쓴 "마이클 폴란"이 지은 " 세컨 네이처".


2. "세컨 네이처", 마이클 폴란, 황소자리


그의 책  "욕망하는 식물들"을 먼저 읽었다. 제목도 그렇고  그가 선정한 4개의 주제 중 하나가 '사과'여서 아주 흥미 있게 읽었던 책이었는데 2009년 출간된 이번 책에서는 상상 속의 정원과 현실 속의 정원에서 배운 것에 관한 이야기를 정원사의 입장에서 얘기하고 있다. '자연(nature)'와 '이를 가꾸는 일 (Culture)" 사이의 중간지대가 '정원'으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장소라고 정의한다. 헨리 소로로 대표되는 미국의 전통적인 자연관과는 다른 ' 실용적' 견해를 제공한다.


소로는 콩밭 가꾸기에 대한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 (중략) 그렇다면 우리의 콩 농사가 실패했다고 해서 그리 낙담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풍성한 잡초가 새들에게는 보다 풍부한 먹잇감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아무렴 즐겁지, 헨리. 그리고 굶어 죽는 거야.


P 163, 제6장 우리가 바로 잡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은  정원의 방제도 화학적 방제보다는 생물학적 방제를 선호하는 아주 조심스러운 정원사로 자연과 잡초, 나무에 대한 그의 견해는 두고두고 곱씹을 만하다. 다만 여기에서는 주제와 관련된 부분만 짚어본다.

그는 아마도 나무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위와는 구별되는 , 영혼과도 같은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중략) '영혼'이라는 말이 다소 신비주의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쉽게 생각하면 나무의 생명력 또는 생장 발육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 189.  제7장 원예의 재능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 아니 내가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몹시 반가웠고 흥분되었다.

식물이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줄 만한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근거의 유무은 중요치 않다. 나는 줄곧 식물 역시 그들 나름의 정체성을 가졌으리라고 상상했고, 덕분에 더 많은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p.190 상동

윗글은 고수들의 "교감"에 관한 글이다. 다시 하선생의 말에 의하면 나무를 균일하게 키우는데 도사인 신 선생은 약한 나무에겐 강전정과 열매 적게 달기로 강한 나무에겐 약전정과 열매 많이 달기를 정확하게 적용한다고 한다. 사과에 관한 한 최고의 고수중 한 분으로 꼽히는 신 선생은 내게 " 제가 신경질 내면 나무가 압니다. 그러면 농사도 안됩니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농사일을 하면서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교감이 필요한지는 알겠고 나무의 정체성도 인정하는데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생명체로 보기보다는 단순한 작업 대상으로 간주하게 된다. 부란병 가지를 제거하는 일이나 두둑의 풀을 베면서 정체성을 가진 생명체에 대한 겸손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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