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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Oct 27. 2019

사과생산의 패러다임 변화

 빨리 키우기와 천천히 자라기

사과농부를 마지막 직업으로 결정하고 땅을 사러 다닐 때는  하선생의 고밀식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우선순위는 좋은 입지조건의 밭을 구해 내가 묘목부터 심어서 과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나님의 강력한 우려에 기존의 과원을 인수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현재의 과원과 집을 만났다. 첫해부터 기존의 나무에서 사과가 생산되었고 또 다행스럽게 맛이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전업하면서 소프트랜딩에 성공한 셈이 되었으나 늘 고밀식 모델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 3년 차에  약 40%의 과원의 나무를 뽑고 대망의 고밀식 과원을 위해 1년 동안 예정지 관리를 하며 공을 들였고  묘목도 1년 전부터 예약을 해두었건만 불행하게도 묘목이 영 시원치 않았다.  너무 실망이 되었지만 이게 내 복이려니 하고 접기로 했다. 안 그러면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는데 달리 취할 방도도 없기에 정신건강을 위한 자위적 조치였다. 그때에 우리가 고밀식 재배의 교주님으로 애칭 하는 신 선생의 말이 많은 위안이 되었다.  " 1년 늦게 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무들은 교주님 말처럼 1년 늦은 진도로 씩씩하게 잘 크고 있다. 


2017년 마이스터 대학에서 남티롤로 견학을 갔을 때 그들의 밭과 관리방식에 대해 배우며 앞서 가는 이들의 현주소를 보게 되었다. 우리와는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결국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었다. 거의 3배에 이르는 생산량에 우리보다 50% 이하의 노동시간 그러나 단순하고 깨끗한 과원환경. 기가 막힐 정도였다. 우리에게 방제시스템을 설명해주러 온 조합 직원은 그 자신이 5000평의 과원을 주말농부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생력화와 고생산 효율이 앞으로의 추세이며 동시에 생존을 위한 핵심주제로 생각되었다. 그 이후에  마이스터 동기인 S 씨의 농법이 생력화에 기반을 둔 고밀식 재배방법으로 생각되어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관찰하고 있다. S 씨의 과원은  현재 경북대 사과연구소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소개하는 과원이 되었다.

대문사진은 이태리 남티롤의 에드문드재단의 농원, 위 두장의 사진은 경북대 윤태명교수님 자료

작년에 포항의 신 선생 밭으로 견학 갔을 때 내가 물었다. " 신선생님의 농법으로 100톤/ha 생산하는 것도 멋있지만 저는 일을 적게 하고 50-60톤/ha 하는 이태리 방식이 좋아 보입니다." ( 참고로 우리나라 평균 생산량은 약 20톤/ha). 그러자 놀랍게도 그가 말했다. "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려면 나무를 천천히 키워야 하는데 저는 평소에 빨리 키우라고 얘기 하지요? ㅎㅎ".  돌아와 내 유목을 보면서 내 뜻대로 빨리 자라지 않는 나무들이 섭섭지 않았다. 그리고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나무의 선단부를 묶어 주는 것을 생략하기로 하였다. 선단부가 바람에 흔들리며 몸을 지탱하기 위해 힘을 써서 자랄 수 있는 에너지를 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천천히 자라기"는 늘 생각하는 주제가 되었는데 이는 생력화의 중요 이슈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고밀식 모델은 나무를 빨리 키워 모양을 잡고 큰 나무에 가지를 받기 위해 아상을 넣는 작업을 하여 가지를 많게 하여  열매를 많이 달도록 하며 수세를 유지하는 "자전거 타기" 방식이다. 계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듯이 계속 가지를 유인하여 꽃눈을 만들며 대과를 만들기 위한 인력이 투입된다. 천천히 키우는 것은 나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가지를 받도록 하며 되도록 인위적인 꽃눈 형성을 지양하는데 이는 수확은 적고 대과도 적지만 나무도 사람도 편한 장점이 있다. 이미 많은 지역에서 돈 되는 농사는 사과밖에 없다며 지자체에서 많은 지원을 하여 (경기도 및 강원도 일원) 사과밭이 많이 늘어나는 데다가 고밀식 재배로 생산량도 늘어서 올해 사과값도 하향세를 예측하고 있다.


얼마 전에 신 선생을 다시 만났다. 듣기로는 그가 몇 그루 남아 있던 오래된 거목을 뽑고 나무를 새로 심었는데 올해 심은 나무에 사과를 몇 개씩 달아 놓았다고 한다. 나는 그가 드디어 "천천히 키우기"를 시작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가 맞다고 확인하였다. " 과거에는 사과값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추세였기에 그때는 나무를 빨리 키우서 사과를 빨리 많이 생산하는 것이 제반 경비를 제외하고도 이익이었지만 지금은 인건비도 비싼데 사과값이 없으니 생력화를 하면서 나무를 안정적으로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요지로 말하였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나무의 선단부는 묶어 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내 생각이 맞았다는 기쁨은 잠시고 사과 6년 차인데 그동안 불어닥친 심각한 환경변화에 심란해졌다. 1990년 중반에 사과 가격 폭락과 병으로 재배면적이 거의 50%로 축소되었고 그 결과 2000년부터 2013년까지 13년간 사과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였다.  이는 사과의 수입이 금지되었기에 가능한 결과로 만약 다른 농산물처럼  우리 생산비의 1/3 정도인 중국 혹은 미국의 사과가 수입이 되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FTA 및 농업의 개도국 지위 포기 등으로 곧 닥칠 수 있는 일이다.

사과 관련 밴드에 새로운 밭을 만들기 위한 충고를 바라는 글에 " 이미 생산이 많이 되는 아이템이니 다른 작물을 찾아보시라"는 회신이 달리는 것이 신기한 일이 아닌 상황이 되었다.

2019,10,22 현재 19년차 성목과 3년차 유목

신 선생이 " 천천히 키우기"를 말하는 자체가 엄청난 변화이기는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건강하고 맛있는 사과를 경쟁력 있는 가격에 공급한다"는 미션이 내가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혹은 그만두어야만 할 수밖에 없을 때까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 천천히 키우기" 만으로는 안 되는 상황이 오고 있다. 단위당 생산비를 낮추고 생산량을 늘려서 경쟁력을 확보하여야 사과농부를 계속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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