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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Aug 25. 2019

대나무 갈퀴를 그리워한 까닭은

형님, 여름을 어찌 지내셨는지요? 저는 계속 바빠서 서울 집에 다녀온 게 한 달이 넘었네요. 집사람도 이젠 그곳도  아침에는 선선하다고 합니다만 여기는 아침에 추워진지 며칠 되었습니다.  이곳은 작년의  그 불볕더위에도 열대야는 하루도 없었다고 말씀드렸지요?  더운 것은 싫지만  일어나기 싫은 내 마음 말고 물리적인 제약이 하나 더 추가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지요. 시간이 가면 얇은 이불은 덮어도 추운 때가 곧 오고 그러면 오히려 지금을 그리워할 테지만 그땐 그때고 지금은 하여튼 그렇습니다.


창고 작업은 7월 8일 큰 창고 작은 창고 2개를 동시에 뜯어내고 비로 인해 그리고 농사일로 인해  8월 14일까지 15일 작업하여 이제 하루 정도면 마무리될 수 있습니다. 작목반 선배 한 분과 후배 한 분, 두 분이 작업하는데 참과 식사를 준비하며 틈틈이 작업보조를 하였습니다. 후배로부터 보조 그렇게 뿐이 못하냐고 반 농반진의 구박 많이 받으며 사과의 최고수 신 선생 말을 또 상기 안 할 수 없었습니다.


 " 어떤 이는 몇 년 안에 기술자가 되지만 어떤 이는 보조를 10년을 해도 보조만 합니다."


본인이 사과 농사하러 귀향하기 전 건축현장 일을 하면서 본 것이라고 해준 얘기 입니다만 형도 아시다시피 제가 올해 6년 차 사과농부인데 '이러다 보조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살포시 고개를 들 때가 있거든요. 해답은 이미 알고 있지요. "가는 세월을 내 좇아다니지 말고 선도적으로 대응할 것,  아이스하키 퍽이 갈 곳에 미리 가있어야" 그런데 한번 해보세요. 이번 작업이 아직 안 끝났는데 벌써 다음 작업 시작할 때가 지난 경우가 다반사예요.

그래도 다음에 작업일 생기면 좋은 작업보조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예전엔 밭에 비해 창고가 후졌는데 지금은 창고에 비해 밭이 후져 보인다는 것입니다.


올해 내가 해야 하는 3차 적과를 반 정도 하다가 창고 작업이 시작되어 많은 나무들이 너무 많이 매달린 사과가 힘들어 축축 처져 있는 듯해서 보는 나도 스트레스를 받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꼭 내가 하리라 생각했던 마음을 고쳐 먹고 평소 일을 도와주시는 동네 아주머니들께 부탁을 했습니다. 작업을 하시던 한 분이 제게 말씁하시길 ' 이 작업은 주인은 못하겠네요, 객인 나도 사과들이 많이 커서 자르는 것이 아까운데..".

적과로 떨어진 사과를 치우기 위해 갈퀴를 찾아왔습니다. 우리 집에는 전 주인이 쓰다 한쪽이 고장 난 오래된 대나무 갈퀴와 내가 사 온 플라스틱 갈퀴 2가지가 있습니다. 대나무 갈퀴의 한쪽이 꼬여 있어 새 갈퀴를 사 왔습니다. 모양은 새로 사 온 플라스틱 갈퀴가 더 효율적으로 생겼습니다만  막상 써보니 너무 예민하고 날카로워서  진도가 안 나갑니다. 하여 다시 옛 대나무 갈퀴로 돌아온 지 꽤 됩니다. 이 곳 춘양과 봉화의 철물점에 대나무 갈퀴를 구입하려 했으나 요즘 안 나와 구할 수 없다고 하여 많이 섭섭했습니다.


일반적인 갈퀴의 갈고리는 11개 인데 우리 것은 역전의 용사인 관계로 3개는 행불.

 요즘 분위기에 일본 얘기는 도움이 안 되지만 작년인가 후쿠오카의 대형 철물마트에서 명인 아무개 도장과 낙인이 찍힌 대나무 갈퀴 머리를 발견하고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대략 우리 돈 만원 정도였는데 사려고 그 앞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였지만 너무 부피가 커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참 정이 안 가는 나라지만 배울 것은 있는 것은 부정하긴 힘들지요. 그때 그 대나무 갈퀴를 보면서 갈퀴에 새긴 낙관에서 보이는 장인의 프라이드가 부러웠습니다. 하찮다면 하찮은 갈퀴에 이름과 명장 도장을 박아 생산하는 그 프로정신. 우리는 너무 빨리 세월을 따라가는 것이 문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에게 필요한 프로정신에 대해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대나무 갈퀴를 구할 수 없는 내현실에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완전치 않은 대나무 갈퀴와 플라스틱 갈퀴로 적과 된 사과를 긁어모으면서 양쪽을 비교해 봤습니다.

플라스틱 갈퀴의 모양이 더 반듯하고 체계가 잡혀 있는 듯합니다. 갈퀴의 갈고리는 대나무 갈퀴가 더 두껍습니다만 끝이 세월의 흔적에 부드럽게 굴곡지어 있습니다. 플라스틱 갈고리도 마모가 되었습니다만 풀숲을 헤치는 데는 적당한 두께의 날이 오히려 얇은 날보다 부드럽습니다. 즉 갈퀴질을 할 때에 대나무가 힘이 덜 듭니다. 갈고리 수가 적은 것과 대나무 특유의 탄력이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오래된 것도 값어치가 있는 법이지. 대나무로 부드럽게 휘어 11개의 날로 갈퀴를 만든 것은 수많은 변형의 갈고리 모양과 수를 써 본 결과로 옛사람들의 지혜지. 그런데 왜 우리는 대나무 갈퀴를 안 만드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썼습니다. ㅠ우리도 대나무 갈퀴 명인도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하며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장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네이버에 "대나무 갈퀴"를 입력을 해봤습니다.

짜잔!!


세상에!!! 무려 197건의 대나무 갈퀴가 있는데 우리는 왜 없냐고 작년부터 섭섭해했다니......

물론 인터넷 안 찾아본 것 아니지요. "갈퀴"를 치면 28,188 건의 판매 광고가 있고 광고 하나하나 몇 페이지를 뒤져봐도 플라스틱이나 철제 갈퀴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철물점 주인들의 얘기까지 겹쳐서 없는 것으로 결론짓고 혼자 애달파한 것이지요. "대나무 갈퀴"를 치지, 이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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