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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Dec 08. 2019

글쓰기가 아니라 스릴을 즐겼네.

성장판 글쓰기 12기를 마치며.

"마누라, 집, 땅은 연(緣)대로 간다"

사과농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땅을 사기 위해 몇 달을 사과주산지를 돌아다니는 나를 보며 답답해하는 집사람에게 한 말입니다.  "그놈의 정 때문"이라는 우리 집사람의 경우도 사실은 그것이 그녀의 "복"이기 때문에 35년을 저와 살고 있는 것으로, 다  자신의 복이고 자신이 감내 할 몫이겠지요.  " 집 혹은 땅에 대한 임자는 따로 있다"는 말도 같은 의미로 해석됩니다. 귀농한 사람 중에 먼저 산 땅을 팔고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계약 당시에는 뭔가 홀린 듯 정말 맘에 들었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연(緣)대로" 가는 경우가 비단 위의 세 가지뿐이겠습니까? 살면서 생기는 모든 만남이 자신의 삶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 이 모든 것들이 모두 "연대로" 제게 오고 또 제가 찾아가는 것이겠지요.  개인적으로 사람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중에 하나가 "책"입니다. 내게 오는 책들 혹은 내가 찾는 책들 또한 내가 만난 어떤 사람처럼 전혀 생각하지 않던 방향으로 내 생활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연유로 가끔 쓰는 독후감에는 그 책을 만난 사유를 간단히 정리합니다. 서평, 다른 이의 추천, 읽고 있던 책에서 언급이 되어서 또 책방에서 우연이 만났다든지  등등. 어떤 사연이든 내가 만나는 책은 나와 만나기로 되어 있던 것 아닐까요?


"메모 독서법"(신정철저)는  그렇게 서울 집에 가면 가끔 들르는 서점에서 만났습니다. 이 책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평소"메모"와 "독서" 두 가지에 관심이 있는 내게 어필하는 제목이어서 구입을 했고 내용이 마음에 들어 당시 군에 가 있던 아들에게도 보내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자와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고 자연스럽게 "성장판 독서 모임"에 연결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비교적 젊은 세대인 것으로 판단되어 눈팅으로만 책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성장판 글쓰기 3기 모집" 공지를 접하게 되었고 수일을 고민하다가 3기로 등록하여 매기 8주 동안 8편의 글을 제출하는 "게임"에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메모독서법" 책이 지난 1년 반의 내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 것입니다. 


"성장판 글쓰기"는 글쓰기를 장려하기 위해  나 같은 의지박약자에게 글쓰기 습관을 만들어 주는 좋은 방법입니다. 8주 동안 매주 한편씩의 글에 만원(10.000원)씩 8만 원을 내가 선지급하고 8주 후 개근한 이들에게  결석한 이들의 돈을 1/N로 나누어 지급합니다. 8만 원 이외에 4만 원의 offline 강의비가 있습니다 (총 12만 원). 이번 주가 12기의 마지막 8주 차로 요행이 그동안 3기부터 쭉 결석 없이  올 수 있었습니다.  과거 9기 동안 가장 많이 받은 금액이 10만 원대, 적은 금액이 9만 원 대였습니다. 금액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악착같이 일요일 저녁에 PC 앞을 지키고 있는 것은 돈보다는 결석을 않겠다는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잘 쓰지는 못하더라도 못 쓰지는 말자"라는 주제로 성장판 글쓰기가 진행되는 동안 매주 한 꼭지씩 숙제를 제출하였습니다.  마감이 일요일 밤 12시여서 처음 얼마 동안에는 마음이 급해 저녁도 거르면서 숙제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젠 조금의  여유가 생겨 저녁은  먹고 시작합니다. 


사실 쓰는 것은 일요일 저녁 빠를 땐 금 혹은 토요일부터 시작하지만 그러려면 그때까지는 글감을 정해야 하므로 글감 정해지기 전까지 "뭐를 쓰지"를 걱정합니다. 일단 정해지면 도입부와 구성을 생각하다 주말 저녁에 연신 시계를 쳐다보며 작문 숙제를 합니다. 바로 지난주 7주 차는 아슬아슬하게  밤 11:55에 제출되었습니다.  마감시간에 쫒기며 사는 것은 사실은 익숙한 일입니다. 학교 다닐 때도 마지막 순간에 리포트 제출, 미루고 미루다 시험 전날에 벼락공부 ( 다행히 우리 때는 그런 것이 통하던 때) , 그리고 회사에서 PT나 리포트도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농사는 때에 맞춰 해야 하는 일이 있어 자연이 정한 마감시간을 지키는 일 외에는 평소의 삶이 내려오기 전 보다 훨씬 여유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장판 글쓰기를 시작한 후에는 글쓰기가 제겐 "메기"가 되었습니다. 평소에  글감을 찾는부담을 안고 있다가 수요일이 지나면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어찌어찌해서 글감을 선정하면 접근 방법을 고민하다가 주말에 PC앞에 앉아 글을 쓰고  마감시간 전에 부랴부랴 제출하는 스릴 있는 "성장판 글쓰기" 게임을 80주째 하고 있습니다. 


글을 쓴다면  좋은 글을  써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글감, 구성도 좋고 문장도 좋아야 하고 퇴고도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인데... 그러나 제게는 좋은 글 또는 그를 위한 퇴고는 사치가 되었고 마감 결승선을 보고 무조건 달리는 전진만 있습니다. 허둥지둥 맞춤법 검사만 해서 글을 제출해야 한 주가 갑니다. 어찌 보면 글을 쓰려는 원래의 목적은 뒷전이고 결석을 안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앞세워 마감 시간 전에 터취다운하는 "글쓰기 게임"을 하는 셈입니다. 게임에 빠져 있는 것은 매기 글쓰기가 끝나고 다음 기를 모집하는 2-3주의 공백 기간에는 쓴 글이 없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아, 물론 변명은 있습니다. 다음 기를 위한 글감을 모아 놓는 다는.


게임을 좋아하는 성향이 아닌데 매주 이런 "압력 받기" 혹은 "긴장하기" 선호형이 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깨워있게"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글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나에게 일상적인 농부의 관점과 더불어 또 다른 시각의 관점을 제공하는 기회가 됩니다. 농부의 관점만을 갖는 것이 잠자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다른 시각을 유지할 수 있다면 내가 직면하는 현상에 대해 다각적이고 더 생동감 있는 해석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혹은 매주 한 주제에 대해 조사 혹은 생각하고 나름대로 정리하는 과정은 소위 얘기하는 "내공"을 강화시키는 좋은 훈련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렇게 강화된 "내공"은 나름의 즐거운 삶을 사는데 아주 요긴한 활력소가 됩니다.


이런 연유로 "성장판 글쓰기"가 지속하는 한  "글쓰기 게임"에 참여하여 계속 스릴 있는 주말을 맞이 할 계획입니다. 다만 나 자신도 궁금한 것은 언젠가 그 "글쓰기 게임"이 중단되었을 때도 내가 계속  나 나름의 게임을 즐길 것 인지의 여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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