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농부 세네월 Aug 01. 2020

"비틀거리는 걸음 앞에 길고 긴
내 그림자"

임희숙 씨의 '잊혀진 여인 '과  지난 시간들


한동안 땅거미가 지기 한 시간 전에 작업을 마무리하고 애용하는 1급 산책코스 한 바퀴를 도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할 무렵이면 어두워 지므로 지나가는 차량이 용이하게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야광 벨트를 하고 일부 코스가 산을 지나는데 멧돼지와 조우하지 않도록 핸드폰의 음악소리도 높이고 걸었다.  듣는 음악의 종류는 그때그때 다른데 대개 유튜브의 음악을 듣는다. 어떤 노래가 있는지 빤한  핸드폰의 음악과 달리 다음 곡을 알 수 없는 라디오 프로그램 같은 분위기에 쓸데없는 멘트가 없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하나만 입력하면 줄줄이 비슷한 음악을 물고 나오는 유튜브 음악이 적성에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면 나는 유튜브의 인공지능에 희롱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고른 듯 하지만 실상은 AI가 고른 곡을 들으며 점차 다듬어지고 세뇌되어 가는 과정이란 느낌도 든다.


거의 집에 다와 가서 주위는 어둑해지는데 임희숙 씨의 '잊혀인 여인' 이 나온다. 

최초 버전도 좋으나 개인적으로 후에 편곡된 나온 재즈(?)풍 곡이 더 좋다,

https://youtu.be/1zy7cBLfeaI


https://youtu.be/oT_PqV27xGY

이 노래 직장 그만두고 얼마 만되어 혼자 야생화 촬영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들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카메라 렌즈 안의 마이크로 세상에 빠져 틈만 나면 뛰어 나가고 늘 시간이 모자라 지는 해가 야속했던 야생화 출사. 그러나 일단 시간이 제약요인이 아니고 충분한 자원이 되자 그 전처럼 흥도 나지 않았고 재미도 없어졌다. 모자라던 시간을 쪼개 나가던 야생화 출사가 아니라 시간을 죽이기 위해 나가는 야생화 출사니 당연했다. 노래를 들으며 자동으로 개사가 되었다. 


잊혀진 여인 가사

긴 잠에서 깨어보니

세상이 온통 낯설고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 없어

나도 내가 아닌듯해라


그 아름답던 기억들이

다 꿈이었던가

한마당 타오른 그 불길이

정녕 꿈이었던가


누군가 말을 해다오 내가 왜 여기 서있는지

그 화려한 사랑의 빛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멀리 돌아보아도 내가 살아온 길은 없고

비틀거리는 걸음 앞에 길고 긴 내 그림자


잊혀진 나 (개사)


나이 들어 직장 나와보니

세상이 온통 낯설고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 없어

나도 내가 아닌듯해라


그 잘 나가던 시절들이 
다 꿈이었던가
한마당 타오른 그 기억들이

정녕 꿈이었던가


누군가 말을 해다오 내가 왜 여기 서있는지

그 화려한 시절의 나는  어디로 갔는지

멀리 돌아보아도 내가 살아온 길은 없고

비틀거리는 걸음 앞에 길고 긴 내 그림자.


노래도 좋은데 마지막 두 줄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33년의 직장 세월 뒤에 남아 있는 내 모습과 "비틀거리는 걸음 앞에 길고 긴 내 그림자"의 절묘한 

오버랩핑. 그 후로도 가끔 술 한 잔 걸치고 귀가할 때면 가로등에 비치는 내 그림자가 비틀거리지 않도록 신경 쓰며 걸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금도 여전히 내 걸음 앞에는 길고 긴 그림자가 깔리지만 걸음은 비틀거리지 않는다. 또 '화려한(?) 시절의 나"도 찾지 않는다. 당연하지, 약 25년 전에 벌던 수입을 위해 몸으로 때우는 사과 농군에게 지나간 시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33년 동안 해 온 일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과농사가 내 일이 되었으되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직업"으로 농사를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과 그 안에서 나름 의미 있는 목표를 가지고 배울 것도 많고 할 것도 많다는 사실에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남티롤에서 이미 시행한 지 50-60년이 되는 고밀식 세장 방추형이 이제 봉화에서는 낯 설아 하지 않는 수형이 되어 가고 고밀식을 표방하는 우리 작목반 원수가 4년 사이에 3배가 늘은 것도 의미 있는 일이긴 하지만 내년에 식재할 우리 밭의 60%에 달하는 지역의 새로운 수형의 재배방법이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고 중요한 일이다. 이번에 새로 심는 나무가 아마도 내 인생의  마지막 식재일 텐데 새 수형의 근원지인 이태리에서도 아직 3% 정도의 면적만이 하고 있다는 guyot (구요) 수형에 큰 기대만큼 걱정도 크다. 뚜렷한 목표와 그를 위해 배울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은 것이 대단한 축복이고 나아가 우리 과원과 사과를 믿고 또 찾아 주는 고객들이 있으니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원하던 농촌생활을 할 수 있어 좋고 가끔 집에 가서 혹은 이 곳으로 내려온 가족들과 같이 하는 시간이 있어 좋으니 기운 해에 길어진 그림자의 주인공이 다 비틀거리는 걸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가 아니라 스릴을 즐겼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