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뚱그리다.
1. 동사 : 되는대로 대강 뭉쳐 싸다.
2. 동사 : 여러 사실을 하나로 포괄하다.
어쩔티비
어느 날부터인가 중학생이 된 조카가 이야기 도중 "어쩔티비"라는 대답을 종종 했다.
내 눈에 아직도 순둥해보이는 조카가 마치 그들만의 은어처럼 들리는 "어쩔티비"라는 말을 처음 썼을 땐
무척 어색하게 들렸지만, 웃으며 장난치듯 내뱉는 표정을 보니 부정의 뜻으로 들리진 않았다.
그러다 수차례 대화 중에 등장하는 어쩔티비는 어떤 감정의 의미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마치 다양한 감정을 무책임하게 뭉뚱그려버린 그 대화 속 언어가 거슬렸다는 표현이 맞다.
화가 난다, 이해가 안 된다, 그만했으면 좋겠다, 나한테 무얼 바라는 거냐, 너나 잘해라 등의 의미 중 하나겠거니. 대략 '싫다'라는 부정의 대답임은 분명하지만 그 안의 세부적인 감정 언어가 있음에도 고작 “어쩔티비”라는 대체어로 뭉뚱그리는 조카를 보다가 문득 나 또한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짜증 나
며칠 전 친구가 이야기 마지막에 내뱉은 말, ”짜증 나 “
아마도 그녀가 사내연애 중인 남자친구를 이야기 중이었으며 말을 뱉을 때의 그녀의 표정은 살짝 미소를 띠고 있었기에 화가 나는 감정의 의미는 아니었겠지.
"짜증 난다"라는 그때의 말은 '어이없다' 또는 ‘황당하다', '내 마음을 몰라주니 답답하다 ‘ 등으로 생각했다.그러니 그녀의 짜증난다는 말은 내가 그를 이만큼 좋아하고 있는데 내 마음을 몰라주는 서운함이 적당할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지금은 헤어진 그와 싸우던 일이 떠올랐다.
여느 연인들의 마지막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사실적인 이유 없이 상처만 주던 때가 있었다.
그 어긋난 대화의 마지막에 나는 무수한 많은 말 중에
“짜증 나” 한 마디를 했던 게 기억났다.
마지막 순간의 그 말은 어쩌면 나의 많은 감정을 싸그리 뭉뚱그려버린 분명 무책임한 언어였다.
'나 너무 힘들어'
'이제 우리 그만해'
'우리는 더 이상은 아닌 것 같아'
'나는 여기까지가 최선이야'
‘그동안 고마웠어’
함께한 시간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정성껏 내 감정을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소중한 내 감정을 고작 뭉뚱그려진 '짜증 나' 한마디에 성의 없이 담아내고는 집에 와서 밤새 후회했다.
TV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은영 박사가 이야기했던 내용이 기억난다.
해당 아이는 잘 지내다가도 자주 짜증을 내는 행동과 욕설을 서슴지 않는 아이의 금쪽이로 나왔었는데,
그 이유가 어쩌면 다양한 부정의 감정 표현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때문에 그 아이의 부모에게 준 해결책은 짜증 내는 행동과 욕설에 대한 부정의 감정을 다양하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알려주면서부터 시작했다.
"(이유) 때문에 화가 나요"
"(이유) 때문에 불편해요"
"(이유) 때문에 답답해요"
"(이유) 때문에 힘들어요“
어릴 적부터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에 대해 배운 사람들이 많이 있을까.
그러한 부정의 감정은 관계에 있어서 분명 불편함과 문제를 일으킨다는 일관된 결론에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어려웠다.
이러한 학습의 결과들이 결국 "어쩔티비 짜증나"가 되는 것인가.
오랜만에 조카에게 카톡으로 일상 안부를 물었다.
학교는 어땠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친구들이랑은 무얼 했는지 어쩌고 저쩌고 물어보는 내 가득 찬 대화창에 비교하면 조카의 대화창은 단출한 단답형 수준이었지만, "어쩔티비" 한 마디로 끝나는 대화가 아니라서 괜히 뿌듯했다.
아직도 나는 어른이 되어 가는 금쪽이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