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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의사권선생 Sep 14. 2017

E13. 마지막 숨결 (반려동물의 안락사)

닥터 아이펫 동물병원 진료 에세이. 안락사

정신없이 바쁜 토요일이었다. 출근해보니, 검진 예약이 있었고 진료 대기 중인 보호자분들도 한 두 분 계셨다. 점심시간인 12시에는 예약 수술까지 있었다. 아마도 보호자님 사정으로 그리 예약된 듯했다.

검진 동물의 혈액검사를 하는 동안, 진료 대기 중인 다른 동물들을 진찰했다. 다행히 많이 아파서 온 동물들은 없었다. 각기 내복약 조제 후 퇴원시키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술 준비를 했다. 점심시간 조금 전에 수술을 시작했고 40분 정도 지나 마치었다. 마취 회복된 아이가 비몽사몽 하며 몸을 겨누는 것을 확인하고 한  돌리자, 오후 진료시간 시작이 얼마 안 남았음을 알았다. '오늘 점심은 패스네..'라고 생각하며 우엉차를 한 잔 내려 마셨다. 그리고 이후 시작된 오후 진료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바빴다. 오전의 일과는 저리 가라였다. 기계적인 진료들의 연속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토요일이었다. '아주 바쁘기만 했던 날'로만 기억될.. 어느덧 퇴근시간이 얼마 안남아 환복하고 퇴근 준비하려는데 우리 매니저 분이 마지막 진료가 대기 중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 마지막 진료 때문에 그 날은 더 이상 아주 바쁜 날만은 아니게 되었다.


내원 목적을 보니, 안락사 상담이었다. 다시 근무복을 입고 진료실에 들어가니 낯익은 보호자 분께서 기운 없이 앉아계셨다. 진료실 책상에 축 늘어져 누워있는 12살 '류씨'는 급성 간경화로 여러 번 내원했던 노령 슈나우져였다. 이미 우리 병원에서 여러 번 복수를 제거했었다. 아래 그림처럼 한 번에 1L 가 넘는 복수를 제거하기도 했다.  내복약 복용을 한 달 했지만 회복 모습이 전혀 없었다.

병원을 몇 년 동안 다닌 아이였지만 크게 아픈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나빠져만 가는 것을 보기가 답답했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길 2주, 대소변은커녕 혼자선 식사도 불가하게 되었다.


이미 숨은 빨리지고 얇아져 있었다. 임종 직전의 cheyne stokes 호흡이 보였다. 보호자님께 치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씀드렸다.


이 부분이 내 직업에서 가장 하기 싫은 부분이다. 회복 가망이 없고, 이미 임종이 다가온 아이들에겐 안락사를 권유드리는 것.. 이게 난 제일 싫다. 편안한 죽음이란 게 있을까? 단어조차도 반어적인 진단을 내리는 나의 멘탈은 이미 아노미다. 단지 티가 나지 않을 뿐.


안락사를 한 날은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병원에서 집까지 굳이 3시간을 걸어가거나, 저녁 약속을 만든다. 다른 사람에게는 가급적 얘기를 하지 않게 된다. 그 누구에게도 굳이 이 얘기하지 않는다. 그 낯선 용어를 친숙하게 만들기란 불가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류씨 보호자님은 남자분이셨다. 대게 남자 보호자분들은 슬픔을 참는 경향이 많다. Pet loss syndrome이라고 해서 큰 우울증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상담을 드린다. 반드시 빠른 기간 안에 모든 동물 관련 물품을 처분하실 것을 당부드리는 편이며, 계획을 세워서라도 외출활동을 많이 늘리시라고 말씀드린다. 다른 반려동물을 새로 입양하실 계획이라고 하시면 분명히 지금의 동물과는 다른 개체이니 키우시면서 전에 키우던 아이와 동일화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린다.


깊은 마취 상태에 잠든 류씨에게 영상통화로 모든 가족 분들이 인사를 하셨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마지막 인사를 뒤로 하고, 약물이 투여되자 류씨는 바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고통 없이 평안한 모습으로 마무리가 되었긴 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모든 인연은 결국 고통이다.'라는 불가의 말씀이 이해된다. 사랑한 만큼 그 슬픔이 크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한 차례 큰 소요가 병원 처치실에 울렸다가 사라진다. 마지막 숨결이, 따뜻했던 온기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 보호자님께 장례 관련 상담을 드리고 정갈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동물을 인도드린다.


꽤나 많은 동물들이 안락사 처치로 병원에서 운명한다. 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에게는 어쩌면 통과의례이다. 동물과 함께 살면서 한 번은 경험하시거나 고민하셔야 할 문제일 듯하다. 동물을 쉽게 기르지 말라고 당부드리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단순히 어린 모습에 반할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네들 보단 먼저 떠난다. 이 점을 꼭 기억하셨으면 한다.


저녁 퇴근시간에는 비까지 왔다. 오래간만에 잔잔한 비를 맞으며 걸었다. 나의 미안함이 조금은 씻겨내리길...


아무튼.. 좋은 곳에서 편히 쉬길 진심으로 빈다. 아프지 않고 늘 즐겁게..

퇴근 후 집으로 걸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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