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아이펫 동물병원 진료 에세이. 요독증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추운 날의 연속이었다. 야무지게 옷을 여미고 문을 나서도 이내 놀란 토끼눈으로 칼바람을 헤치며 출근하기 일쑤였다.
행여나 전철 문이 바로 눈 앞에서 닫히기라도 하는 날은 정말 그보다 더 아쉬운 순간이 없었다. 배차간격이 조금 길고 승강장이 외부에 있는 중앙선, 아무리 뛰고 뛰어도 문은 결국 눈 앞에서 닫혀버리는 나의 숙명!!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란 억울함.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전동차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만 홀로 남은 승강장을 터벅터벅 걷는 야속함은 신화 속 '시지프스'가 된 느낌이었다.
그날도 시지프스가 느끼는 허무함을 체험하며 병원에 도착했다. 날씨가 이러니 병원 방문객 수도 뚝 떨어졌다. 안타까운 맘이 들다가도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마침 며칠 전 일요일에 다녀온 연수교육 자료도 산더미였고 이 참에 책이나 정독하자 싶었다.
강의노트를 펴놓고 따뜻한 물을 채워가며 차 한잔 마시려는데 이틀 전 구토 증상으로 내원했던 금실이가 재진료 왔다. 하필 정진영 교수님의 '노령 만성신부전 관리'를 읽고 있었는데, 딱 그 해당 질환으로 의심되는 동물이 온 격이었다.
만성신부전(CHRONIC RENAL FAILURE)은 호전과 악화를 반복한다. 천천히 몸이 말라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변비라도 몇 번 보이면 요독 증세 때문에 병원에 와서 수액부터 맞아야 한다.
10살 정도 되는 믹스 품종 금실이는 원래 몸이 다부졌다. 중성화 수술한 남자아이였고 몸무게는 늘 8킬로가 조금 안 되는 편이었다. 병원 처음 개원했을 때부터 내원했던 아이라 마냥 어린 줄만 알았는데, 그동안 금실이네 나이 든 슈나우져가 하늘나라를 건너갔고 얘도 벌써 10살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밥 먹이기가 늘 힘들었다고 보호자께서 말씀하셨는데 크게 신경 안 써왔었다. 그냥 성격이려니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과는 사뭇 다른 금실이의 서늘한 눈빛에서 두려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병원에 처음 왔을 때, 구토만 조금 하고 먹지를 않는다고 하셔서 며칠 전까지 잘 먹던 오리고기 건조 간식에 의한 단순 소화장애인 줄 알았다. 3일간의 소화제 처방했었는데 약도 다 못 먹고 2일 후 상태가 더 안 좋아져서 내원한 것이다.
차분하게 진료실 테이블에 웅크린 금실이는 마치 윤기가 바래고 푸석푸석 올이 하나 둘 풀린, 커피 우유를 쏟아버린 양탄자 같았다.
병력(history) 상, 유기견이었고 어린 시절 파보장염으로 거의 죽다 살아났다는 보호자님 말씀을 들었다. 아차 싶었다. 두 요인이 신장에 큰 무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이 사실만 미리 알았었다면 신장손상 조기마커 검사라도 해볼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설마하는 맘으로 혈액 화학검사 결과를 확인하였다. 결과를 뽑아들자마자 작은 탄식부터 새어나왔다. 수치가 너무 안 좋았다. 요독증 수준이 기계로 측정되는 범위를 넘고 있었다.
보호자님께 신부전으로 인한 요독증이란 말씀을 드렸더니 모친께서 이 병으로 10년간 투병하셨고 본인께서 간호를 하셨기에 잘 알고 계시다고 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50대 초반의 보호자님은 남성 분이셨다. 삶의 희로애락을 강아지들과 함께했다고 하셨다. 특히 가장 힘든 순간에 의지를 많이 했던 존재들이라고 하셨다.
가장 마지막 고려인 안락사까지 상담드리고 우선적으로 수액 처치로써 요독증을 개선하자고 말씀드렸다.
순하디 순한 녀석이라 송아지 같은 눈만 끔뻑거리면서 한숨을 푹푹 쉬어댄다. 그도 그럴 것이 케이지 안에서 하루 종일, 아니 적어도 일주일 이상 입원해야 하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닐 게다.
다행스러운 건 얌전하고 꿋꿋하게 수액 잘 맞고 대소변도 잘 본다는 점이다. 구강의 궤양은 진행되었으나 호전적이라 안심했다.
물을 자유롭게 주는 것이 원칙이나 너무 심하게 구토를 하여 항구토제 주사 후 제한적으로 급수를 하고 수액량을 천천히 증량했다. 피하 수액은 고려하였으나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아 필요 없다고 판단됐다.
구토가 진정되자 위의 사진과 같은 약을 순차적으로 처방했다. 유산균 캡슐제를 우선 주고 탄산칼슘 성분의 약을 신장질환 처방식과 함께 먹여 체내의 요독을 대변으로 뺄 수 있게 유도했다. 3일 내에 금실이의 상태가 예상 가능 범위로 호전이 되어 다행이었다. 급성 신부전으로도 여겨질 수 있는 상황이기에 ACEi제제는 좀 나중에 처방했다. 개인적으로 검은구슬 같은 탄소입자 섭취는 변비를 유발할 수 있고, 동물에게 복용시키기가 쉽지 않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하늘이 도우셨는지 결과적으로 요독증은 확실히 개선되었다. 쉬는 날도 반납하고 열흘 동안 매달려서 3,000cc가 넘는 수액을 투여한 보람이 있었다. 아마 내일이면 금실이는 퇴원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식이관리만 잘된다면 다시 건강을 찾을 것이다. 비록 시지프스의 바위돌 같은 건강상태의 등락이 있겠지만 보호자님께서 지극 정성으로 금실이를 간호하는 모습에 안도가 된다. 병원을 운영하는 동안 뵈었던 그 어떤 보호자님들보다 많은 면회를 오셨고, 한번 오시면 2시간은 기본으로 금실이를 안고 다독이시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인연과 헌신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금실이가 치료를 받는 기간 중 노령의 만성 신부전 환자가 2명 더 진료를 왔다. 한 강아지는 수액을 맞고 가고 다른 아이는 관장 후 피하 수액을 맞고 갔다. 다행히 다들 상태가 좋아졌다. 정말 다행이다.
추운 계절에 더욱 힘든 건 나이 든 동물일 것이다. 빨리 계절이 바뀌고 꽃이 핀 잔디밭을 건강하게 뛰어놀길 바란다. 7살이 넘은 반려동물은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은 꼭 병원 진찰받으시길 권해드린다.
개인적으로 몸은 추웠지만 마음은 어느 시기보다 따뜻하고 뭉클했던 2017년의 12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