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서툰 사랑
첫, 사랑은 늘 삐걱거리며 시작한다. 불붙지 않은 성냥을 억지로 그어대다, 결국 손끝만 시린 채 남겨지는 것처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도 몰라서 대부분의 첫사랑은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남는다. 적어도 내가 아는 첫사랑의 얼굴도 그러했다.
첫사랑이 흩어지고 나면, 세상은 봄을 맞이한 듯 분주해진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연애담은 나만 계절을 놓친 듯 허전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좋아해 보고, 때로는 좋아해 보려 노력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내가 했던 그것들이 정말 사랑이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래서 실은, 가끔씩은 어떤 사랑은 연극 같다고도 느껴진다. 그 사랑의 시작은 내가 아닌 남들의 시선에 있다. 연기를 하는 배우는 관객을 바라보고 그들의 눈빛 속에서 살아 있다고 느낀다. 누구나 하는 역할이니 나도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었는지, 아니면 빈 무대 위에 홀로 서 있는 것이 두려웠는지 대본 없는 사랑마저 흉내 내게 만들었다. 순간에는 정말 진심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막이 내리고 나면 허무함과 묘한 안도감마저 느껴진다. 정말 사랑의 모조품에 불과했던 것일까. 진심 없는 대사로 이어진 장면은 쉽게 잊히고, 그렇게 쉽게 잊힌 기억은 사랑이라 이름 붙이기도 부끄럽다. 그래서 막이 내린 무대 끝에 홀로 남은 나는 배우도 관객도 아닌 채, 세트장 잔해 속에 서 있을 뿐이었다.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오래가려면 적당히 좋아해야 한다고. 상대보다 조금은 덜 좋아해야 오래가고, 초반에 타오른 불꽃은 금세 사라지고 마니 잔잔함으로 가야 한다는 말. 하지만 난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라기보다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한 기술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그러한 방식으로 오래 남는 건 사랑이라기보다 타협에 가깝고, 안전과 공존에 불과하다. 적당히 사랑하라. 마치 이미 시든 꽃에 물을 뿌려 생화를 흉내 내라는 것처럼 들린다.
연애와 사랑은 다르다. 연애가 단순히 풀어야 할 문제라면 사랑은 답을 쓰지 못해도 괜찮은 백지나 마찬가지다. 사랑에는 잘하고, 못하고 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관계의 유지와 약속에 신경 쓰는 것은 사랑일까, 연극일까. 오래간다 해서 생화보다 조화가 더 아름답다 말하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늘 가짜보다 진짜를 꿈꾸니까. 하지만 진짜는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사랑이 덜한 관계는 오래도록 남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오래됨이 정말 사랑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모든 처음은 실수도 잦고, 서툴 수밖에 없다. 잘한다는 건 먼저 서툰 나를 받아들인 후에야 가능해진다. 청춘은 원래 불타는 시기다. 불타는 일 없이 잔잔함으로만 유지되는 사랑은 청춘의 사랑이라 부를 수 없다. 애초에 불완전하고, 오래갈 수 없을지라도, 그 불완전함과 짧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청춘의 사랑일 것이다.
내 감정을 눌러가며 지속되는 사랑은 마지막까지 진심의 반만을 드러내게 만든다. 돌아보면 내게 남은 건 눈부신 것처럼 보였으나 실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미 같은 기억이었다. 겉만 화려하고 향은 없는. 그 가짜의 화려함을 손에 쥔 채, 나는 더더욱 진짜라는 환상의 꽃을 기다리게 되었다. 떨림으로 피어나는 사랑, 손끝에 향기를 남기는 사랑. 그것만이 나를 무대 밖의 삶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정이 골목마다 켜져 가는 가로등 불빛이라면 사랑은 새벽을 가르는 불꽃같다. 우정은 켜지고 또 켜지며 거리를 밝혀주지만, 사랑은 단 한순간 어둠을 찢고 터져 올라 세상의 모든 그림자를 삼켜버린다. 고작 그 한순간 때문에, 찰나의 섬광 앞에서 사람은 숨 쉬는 법조차 잊어버린 채 기꺼이 자신을 내던진다. 꺼져버릴 것을 알면서도 그 한순간의 불꽃이 내 밤을 끝없이 밝혀줄 것만 같아서.
내 청춘의 사랑에는 실패의 흔적들이 가득하지만, 그 흔적이 쌓여 나를 서서히 계절의 끝으로 데려갔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사라지는 불꽃을 사랑이라 부르며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