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 결말
우리에게 결말이 있다면 그게 꿈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꿈을 하나의 목적지처럼 말하고는 한다. 닿기 위해 달려가지만 도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끝이 나면 안심이 되는 걸까, 마침표가 있어야 아름다운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나는 끝을 보고 싶지 않다. 완벽한 결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살아 있는 것들은 본래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나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끝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건만, 어쩐지 종종 그것이 너무 낯설어서 내가 적은 문장조차 내 것이 아닌 듯 멀게만 다가왔다. 나의 책이라면 차라리 결말이 없는 편이 더 나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남의 서사를 읽을 때는 결말부터 펼쳐보는 버릇이 있었다. 끝을 미리 확인해야만 그 이야기 전체가 안전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마침표가 있다. 그리고 그 점을 찍어야만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완성, 결말, 끝맺음. 나는 그러한 것들에 기대면서도 막상 그 앞에 다가서면 불안해했다. 결말을 믿고 싶었으나 끝맺기를 두려워했다. 그러한 모순이 쌓이고 쌓여, 끝이라는 단어에 과도하게 마음이 닿아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늘 결말을 원한다. 정말 결말을 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끝이 좋아서라기보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깨끗하게 마무리된 이야기는 두렵지 않다. 그 안에서 무엇이었든, 어떤 이야기가 있었든 상관없다. 인물의 닳아버린 감정 따위는 결말이라는 이름 아래 깨끗하게 정리될 수 있다. 하지만 끝나지 않은 것, 미처 다 말하지 못한 것들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는 것은 괴롭다. 선택들은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어김없이 마음 한쪽에 남아 꿈틀거리며 나를 호출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 꿈틀거림이야말로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든다는 사실은 왜 아무도 모를까.
꿈이라는 글자는 네모 반듯하다. 둥근 것 하나 없이 각진 글자이다. 단어에 담긴 의미와는 다르게 모순적이다. 그래서인지 꿈은 언제나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내 꿈이 정말 내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꿈을 가져다 붙인 착각이었는지조차 모를 일이다. 꿈을 꾸는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느 순간부터 그림자가 되어 뒤로 밀려났는지도 알 길이 없다. 뚜렷한 직업이 있어서 그것이라 표현하기도 어렵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사실 꿈이라는 것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자석이라면, 꿈은 철처럼 이유도 없이 붙어오는 것들이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내가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고 이유 없이 자꾸만 반복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꿈이 아닐까. 사실은 본성과 같지만 꿈이라 이름 붙인 것이 아닐까.
꿈에는 결말이 없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꿈이고, 멈춰 있어도, 사라져도 꿈이다. 완성되어야만 꿈이라고 믿는 동안 우리는 꿈보다 결말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닿지 않은 것들은 전부 실패가 되어버리는 나의 조각들. 하지만 세상에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고, 이루지 못해도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 그 불완전함을 느끼기에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더 선명히 깨닫는다.
꿈은 이루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어떤 꿈은 이루어지지 않기 위해 태어나기도 한다.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만들기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다르지 못해도 사라지지 않고, 이루지 못한 것들은 실패가 아니라 내가 여전히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결말을 원하는 시대에 미완의 꿈을 품고 살아가는 일은 언뜻 보면 패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가장 인간적이다. 이야기에 결말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큰 자유인가. 내 멋대로 원할 때면 언제든 다시 쓰고, 지울 수 있다.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기 때문에 완벽하고, 그래서 미끄러지는 여백마저 완성이라 부를 수 있다.
한때 꿈을 포기했다고 믿은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포기한 게 아니라 그냥 모습을 바꾼 거라고. 얼어붙은 듯 보였던 꿈은 어디선가 천천히 녹아 다시 흐를 것이고, 흐르는 동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언젠가 다시 나에게 닿을 거라고.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결말은 슬픔을 품고 있다. 그 슬픔은 결말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흔들릴 여지마저도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다. 돌아갈 여지조차 없는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그리움까지 붙는다. 그래서 나는 미완의 것이 좋다. 흐려졌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꿈들, 미처 다 보내지 못한 청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이별. 전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에서는 아직 끝내지 못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
모든 것의 끝은 없다. 끝이라 믿는 그 끝도 사실은 끝이 아닐 것이다. 그냥 다음 장면으로 흘러가는 것뿐이다. 그러니 열린 결말은 축복이 아닐 리 없다. 얼마나 다행인가. 이 여백 속에서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자유이고, 가장 낯설게 아름다운 꿈이다. 그러니 이 삶에 기꺼이 축배를 들며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