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隙)

: 보랏빛의 경계

by 유영

늘 그렇듯, 계절의 경계에는 보랏빛의 묘한 온기가 머무른다. 아직 식지 않은 여름의 뜨거운 적색이 먼지처럼 떠 있고, 한밤의 푸른 냉기가 숨 끝에서 서리처럼 번지는 중간, 그 어스름의 틈을 우리는 가을이라 불렀다. 낮은 뜨겁고 밤은 선선했지만, 바람의 결은 방향을 잃은 채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나는 그 보랏빛의 온도를 음미했다. 모호한 틈 속에서만 나는 맛이 있다. 왜인지 모르게 나 자신도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아마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이 상태는 자유일 것이다. 어른이라 하기엔 흐릿하고, 청춘이라 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지나가 있는, 경계의 자유. 그래서일까. 불안하면서도 틈 사이의 빛이 다사롭게 느껴지는 게.


가을에 내리는 비는 환영받지 못했다. 고인 웅덩이는 빛을 비추며 흔들리고 있었다. 나를 비추는 거울 같기도, 빠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늪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꽤 묘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내리는 비는 생각보다 가볍다. 내쉬는 숨은 제법 편안하다. 하지만 어떤 날은 한 방울의 비가 어깨에 닿기만 해도 주저앉을 것만 같다. 사실 나는 내가 되어가고 있는 어떠한 것보다 이미 지나간 시절에 대한 상실의 아픔이 더 크게 피부에 와닿는다.


모든 여름은 뒤를 돌아보면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막상 그 타임라인 속에서 살 때에는 대부분 찌를 듯 뜨거웠지만 말이다. 넘치던 열기와 갑작스러운 고독. 어른이 되기를 두려워하면서도, 어른이 되면 무언가 달라질 거라고 믿는 근거 없는 희망. 아마 지금의 서늘한 계절도 미화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계절의 사랑은 변해있을 것이고, 익숙한 이별에 낯설어할 것이며, 그러다 결국엔 전부 잊어버릴 것이다.


다 자란 꽃도, 나무도, 강한 바람엔 견디지 못하고 흔들린다. 하물며 다 자란 어른이라고 다를까. 바람이 불면 흔들리면 그만이지, 왜 애써 버텨야 어른인가. 내가 뽑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길을 너무 무겁게 걸어간다. 떠나온 청춘을 돌아보면 찍힌 발자국의 대부분은 한없이 가볍다. 가벼운 발자국에 담긴 것은 기쁨이었다. 그렇다면 무거움과 가벼움의 틈 사이에서 온전하지 않은 나는 뭐라 정의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쉽게 정의되지 않는 것들을 좋아한다. 미지의 것들에서는 설렘이 느껴진다. 완전히 하나, 아니면 다른 것. 나, 그리고 너. 우리는 항상 분명하고, 확실한 것들을 좋아하지만, 그 사이에 있는 중간의 무수한 스펙트럼이 내뿜는 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리고 그게 더 인간적이라는 것도.


사랑 또한 경계의 감정이다. 우리는 늘 완전한 사랑을 꿈꾸지만,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언제나 결핍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때문에 오늘의 사랑이 완벽해 보여도 내일은 전혀 다른 얼굴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누구도 당신을 완전히 채워주지 못한다. 그럴 수 없다. 우리가, 사람이라는 존재가 애초에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불완전한 경계의 것임이 틀림없다. 기억 속에서 재구성되고, 기대했던 것과 어긋나고, 원했지만 닿지 못한 모든 사랑의 형태를 겪으며 난 어른이라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돌아오지 않을 사랑인 것을 알고도 기꺼이 내 사랑을 나눠줄 용기, 외로움을 이유로 비틀린 애정을 붙잡지 않는 절제, 누군가가 나를 채워줄 것이라는 환상에 매달리지 않고 오롯이 나를 견디는 태도. 어른이라는 단어는 그런 사람의 그림자에 가까웠다. 아직 닿지 못한, 그러나 언젠가 닿고 싶은 꿈의 형태처럼.


갈라진 틈은 어째서 결핍이 되는 것일까. 보라. 허무 속 틈새로 들어오는 빛을. 모든 문이 닫힌 순간에도 아주 미세한 틈 하나만 있으면 바람은 들어오고, 먼지는 날아올라 주변을 새롭게 비춘다. 모호한 상태의 무너진 마음의 조각들은 서로 다른 빛을 반사하며, 조각된 영원의 서사를 이루듯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간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리니,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실낱같은 은빛의 희망을 보지 못한다. 그 안에는 잃어버린 것들과 아직 오직 않은 것들이 들어 있다.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것들일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분명하게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들을 희망이라 칭해봤자 뭐 하냐고 묻는다. 아무리 희망이 허공이어도, 우리는 그 허공 위에 서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희망을 믿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나를 무너뜨렸던 것은 늘 손에 잡히는 것들이었고, 희망을 부정할수록 얻는 건 더 깊은 어둠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둠 속에 나를 세우고 빛을 온몸으로 느꼈다. 모순과 불안정, 그리고 그 속에 있는 가능성과 희망의 빛을.


시간은 잔인하게 우리를 어른이라는 자리로 밀어붙인다. 그러나 경계의 틈에 서있는 자들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멈춰 서 있는 자신을 용서하라. 살아 있다면, 정말로 희망은 있다. 모두가 함께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가 혼자고, 어른은 없다. 불행이자 희망이 라고 하자면, 이 세계의 모든 것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미지의 것이라 여기던 경계에 발을 들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은, 끝과 시작은 생각보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애매한 사이라는 것이다. 어딘가로 향하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 하나 있다. 그 길목에는 어김없이 어두운 터널이 있다. 그게 아무리 긴 터널이라 해도 세상 그 어디에도 영원히 지속되는 터널이라는 것은 없다. 끝은 있다. 그 말은 시작도 있다는 말이다. 이 세계에 그 둘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세계의 순환을 증명한다. 세계 속에 사는 우리도 다를 바 없다. 내가 끝을 보고 싶지 않다 해서 끝이 영원히 지연되는 일은 없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애써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틈에 조금 더 오래 머물러도 괜찮을 테니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유를 품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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