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시계, 나의 시간
시작은 언제나 낯설고 불편한 감정의 언저리에서 기인한다. 그래도, 이때 아니면 언제 하겠어. 누군가는 무모하다 했던 결정들 앞에서 나는 자주 그 말을 중얼이 듯 내뱉곤 했다. 확신이 없어서, 용기가 없어서 뱉은 그 말은 내 무모함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건 나를 움직이게 만든 가장 단순하고도 순수한 욕망이 담긴 문장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문장을 떠나보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처음 내딛는 한 걸음은 언제나 두렵다. 시작이 반이라는 그 진부한 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막상 시작해 보면 반은커녕 그제야 전부가 내 앞에 펼쳐지면서 막막하다는 감정이 느껴진다. 하면 할수록 해야 할 일은 태산이고, 넘어야 할 산은 매번 그보다 조금 더 높았다. 그럴 때면 출발선조차 내 의지로 그었던가 하는 의심마저 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나는 이 말이 결국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뛰기 시작하면 더 이상 걷는 것은 어렵다고 느끼지 않는 것처럼. 시작하는 순간만큼은 언제나 현실보다 상상이 앞선다. 상상은 늘 이상을 꿈꾸기에, 나는 그 이상에 영원히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끄러움, 수치심. 그렇다 해서 뛰기를 주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다음이 더 높은 산이든, 험난한 산이든, 희망이라면 아직 가야 할 산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마음을 내고 첫걸음을 내디딘 사람에게는 이상하게도 세상이 그 마음을 알아보는 듯 조금씩 길을 열어준다.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속해도 된다는 것이다. 밀린 시간들이 기다렸다는 듯 순순히 따라와 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시작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것이다. 걷기 시작했다. 그다음 뛰는 것은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뛰게 된다. 시작에 말이 얹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모해 보여도 발부터 내딛는 것이다. 그다음은 자연스레 뒷발이 따라올 것이고, 말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
사실 시작이 두려운 이유는 우리의 삶이 너무 정형화된 것에 있다. 학교, 대학,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노후 준비. 삶의 이 타임라인은 마치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공공재처럼 떠다닌다. 조금만 늦어도 낙오자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앞서나가야 한다. 이상해. 무언가 이상하다 말하면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그 시선들이 불편하다. 다 그렇게 사는 건데 너는 왜 그렇게 못하냐며 특이하다는 말로 나를 정의한다. 결국 그 시선들이 두려워 무언가를 하기 전에 누군가의 허락부터 받으려 한다. 하지만 타인의 허락보다는 나의 허락이 좀 더 필요하다. 이 삶은 내 것이다. 나의 증명은 타인이 아닌 내가 내려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선택을 내려준 것이 자신이라면 틀려도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 감정마저 놓아줄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자유롭다.
사람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우리를 살아가게 두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이름과 사연은 지워지고 그 자리에 숫자만이 남게 되었다. 그 숫자는 곧 사회 전체를 수직화하고 서열화했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것들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쉽게 의문조차 가지지 않았다. 몇 달의 차이가 언니와 동생을 가르고, 누군가는 평생을 끝까지 위에 있는다. 학교 입학 시기부터 군대의 징집 순서 정리, 기업의 연차 부여, 이렇듯 사회는 경험과 연륜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이 아닌 숫자에 경력을 매기기 시작했다. 어떤 숫자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이 정해지고, 기회와 말투, 존중의 양까지 달리 배분받는다. 그 구조가 얼마나 견고한지 만 나이로 전환된 지금조차도 우리는 여전히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도대체 삶이 왜 고작 숫자 따위로 분할이 되는가. 우리는 전부 각자 다른 계절에서 피어난 존재들이다. 태어난 계절이 다르고, 태어난 시간이 다르다. 계절은 자연스레 흐른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가을이, 그리고 겨울이 찾아온다. 그러나 삶이 어디 계절처럼 흐르던가. 다수의 꽃이 봄에 핀다 하여 서리가 내리는 겨울에 꽃이 피지 않던가. 모두의 이름이 다르기에 언제 피어나고 지는지 답이 나와있는 책 따위는 없다. 때문에 우리는 늘 어긋나고, 모자라고, 넘치고, 때로는 멈추기도 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날에 피어나는 미완의 개화다.
제때. 많은 의문을 가진 입을 다물게 만드는 단어이다. 제때 하지 못하면, 뒤늦게 해 버리면 남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어딘가 모자란 어른. 지금쯤 이 정도는 되어 있어야지. 그걸 지금 시작한다고? 너무 늦지 않아? 누구의 시계로 정해진 것일까. 명확하게 그들의 시계다. 그들의 늦음은 당신 인생의 실패가 아니다. 당신 인생의 실패로 전가하게 만들지 말아라. 그들이 말하는 늦음은 그 사람이 자기 삶의 시간표를 나에게 덧씌운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단 한 걸음도 내 시간 속에 들어오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바깥에서 어림잡아 짐작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인생에 있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빠른 때, 적당한 때, 늦은 때라는 말은 어쩌면 모두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단, 그 '때'가 진짜로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전제가 붙어야 한다. 자기 세계 안에서만 유효한 시간일 것. 시계는 내가 시작을 마음먹는 순간부터 움직인다. 그러니 그때는 온전히 내 것이며, 그 시간이 흐르는 방향도, 속도도, 그 누구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다. 망설이다 놓쳐버린 수많은 순간들이 알게 한다. 지금 마음이 움직였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그 일이 시작되기에 가장 빠른 때라는 것을. 누군가 늦었다고 말해도 시작하기에 늦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시간표에는 없을지 몰라도 나의 시계는 지금 막, 나의 시간으로 제대로 들어선 채 나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