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을 꾸는 동안
사실 나에게는 남들에게 있어서는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묶어둔 약점이 하나 있다. 바로, 남들 앞에 나를 드러내는 일이다.
나는 무엇이 됐든 내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에게서 태어난 완전한 내 것을 가지기를 늘 희망했다. 단지 그 시작이 음악이었을 뿐이다. 흐릿한 경계에서 피어난 이름 없는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나의 의미를 만들고 싶었다. 소리는 말보다 진해서 말로는 미처 다 닿지 않는 마음의 작은 조각까지도 드러낼 수 있게 만들어준다. 나도 그러한 것들을 내 소리로 만들어 세상에 흘려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진심을 누군가의 귀 앞에 놓는 일은 늘 고통이었다. 피드백이란 말속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날이 있다. 상대는 단지 부족한 점을 짚었을 뿐인데 그 말이 나를 과하게 괴롭힌다. 내 안에 치우지 못한 모서리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상대의 말 한마디가 내게 닿을 때마다 그렇게 불편할 수 없다. 사실 나도 알고 있다. 모든 시작은 미숙하고, 성장에는 타인의 목소리가 필요하고, 그 목소리를 외면한 채 지금의 나를 넘어서는 일은 없다고. 그걸 알면서도 제대로 직시하려 하지 않은 채, 바람이 불어오면 나는 그 흔들림 속에 잠겨 있기만 했다.
남의 악보를 연주할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그건 내가 아니었으니까. 원래 진심을 담지 않은 일엔 상처가 없다. 두려움은 진심의 농도만큼 짙어진다. 내 손끝에서 태어난 것들을 내 이름으로 내놓을 때면 나는 벌거벗은 사람처럼 서 있게 된다. 시선이 내 안쪽으로 스며들어, 단 한 마디의 부정이 하루의 모든 빛을 가린다. 늘 그렇다. 좋은 말 열 개는 금세 흩어져버리고 나쁜 말 한 개는 흔적을 깊게 남긴 채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 두려움은 곧 무대 공포증으로 나타났다. 무대 위에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심장이 귀를 막는 소리를 들었다. 시작과 끝은 늘 박수가 함께 한다. 사실 난 그 소리를 들은 적이 별로 없다. 남의 무대에서는 그렇게 잘 들리는 박수 소리가 내 무대에서는 들리지 않아, 한 번은 믿지 못해 남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혹시 정말 박수를 쳤느냐고.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지 하며 웃어넘겼지만 나는 내가 남 앞에 서는 것에 병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더 확실히 마주하게 되었다. 동시에 인정하기 싫어 그조차도 회피하고 말았다.
이러한 내 약점은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도 못했다. 말하는 순간 더 초라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겸손한 사람이라 여겼지만 사실 나는 겸손한 게 아니라 겁쟁이였을 뿐이다. 두려움을 예의로 감춘 겁쟁이.
웃기지만 그래서 포기했다. 첫 번째 꿈을. 고작 남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렵다는 이유 하나로 도망쳤다.
진심을 드러내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나를 지키려면 숨어야 하고, 나를 채우려면 드러내야 한다. 왜일까. 나는 나를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끝까지 들키고 싶지 않아 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근원적 모순이다. 나의 의미를 확인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부정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사이에서 나를 드러내는 일은 위험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유혹적이었다. 그 모순 사이에서 늘 망설였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지만 언제나 이분법적으로 나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단지 그 순간 나에게 감당 가능한 선택은 무엇인지만 남을 뿐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던가. 시간이 흐르니 다시 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점점 더 짙어지기 시작했다. 사실은 버리기로 결심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솔직할 것이다. 욕망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고 억누를 뿐이다. 그래서 가끔 예전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게 왜 계속하지 않았냐고 물을 때도 그냥이라는 말로 애써 그 상황을 피했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 두 글자 안에 부끄러움과 미련, 두려움과 체념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나는 그저 무거워지는 것이 싫어 가벼운 말로 나를 대신했다. 그 말이 내 진심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이제 와서야 나는 조금씩 나를 꺼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익명이라는 그림자 뒤에 숨어서. 누가 날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난 어딘가에 나를 내놓는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겨내야지. 후회하기 전에 해보자. 포기는 결핍이 되어 돌아올 뿐, 도달하기 전까지는 미련이 남아 자꾸만 그 무게를 더해간다. 그리고 이제와 느끼는 것은 사실 세상에 이겨낸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냥 하는 것만 있을 뿐이다. 하다 보니 익숙해졌고, 만들려 한 습관이 아니었음에도 습관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무뎌졌을 뿐이다. 난 여전히 내가 이겨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할 뿐이다. 하다 보면 뭔가 될 것이고, 하다 보니 뭐가 되었든 난 일단 내 글을 어딘가에 남기는 것에 성공했다. 앞으로 계속 더 하다 보면 내가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삶은 결국 자기만족의 싸움이다. 내가 만족해야 살아갈 수 있다. 남의 말이 수단이 되는 이유는 보통 돈에 있다. 그래서 피드백을 구하게 된다. 돈이라는 수단을 얻기 위해, 혹은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삶을 영위하는데 최소한의 돈은 필요하니 나도 그 수단을 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결국 기준은 나다. 남의 말은 바람처럼 스쳐가고, 돈은 그저 잠시 머무는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재단해도 적어도 나는, 나를 팔지 않기로 했다. 자유는 나를 내보임과 동시에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불안하지만, 또 그 불안이 나를 숨 쉬게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꿈, 나의 꿈은 아직 깨어나지 않은 현실일까. 그렇다면 어딘가의 나는 꿈꾸던 현실을 살고 있을까. 어디서부터가 꿈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인지. 어쩌면 지금의 나는 꿈과 꿈의 사이, 몽중과 유영의 그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깨어나지 못했지만 이미 흘러가고 있는. 그 불완전한 흐름 속에서 나는 매번 다시 나를 배우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좋다. 어디에도 영원히 닿지 않고, 그 어디에도 영원히 속하지 않은 채, 잠깐 머물다 흐르는 자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