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말은 때로 가장 부드러운 말이다."
삶에서 가장 큰 절규는, 때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순간에 터진다.
침묵은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말로 담기지 못한 감정들이 숨 쉬고 있다.
말을 잃은 순간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적막의 끝에서 어떤 말은 그 무엇보다 날카롭게 다가와 나를 찌른다.
가령, "괜찮다"는 말처럼.
'괜찮다'는 말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 말은 때로 감정을 끌어안는 대신, 감정을 종결짓는다.
이해하려는 말이 아니라 마무리하려는 말이 되어버렸다. 겉으로는 상대를 위한 말 같았지만, 실은 나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당신이 괜찮아야 내가 괜찮기 때문에.
감정이 이어지는 것이 두렵고, 복잡한 관계가 피곤하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괜찮다'는 말을 너무 가볍게 꺼낸다. 감정을 마주하는 대신 감정을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
그리고 때로, '괜찮다'는 말은 기대를 거는 말이 되기도 한다.
"넌 늘 잘했잖아, 괜찮을 거야."
격려일까, 믿음일까. 아니, 기대라는 이름의 짐일지도.
괜찮다는 말이 반복될수록, 괜찮은 사람처럼 살아야 했다.
넘어져도 금방 일어나 다시 중심을 잡아야 했다.
누구도 명확히 강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이 어딘가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면, 그들이 남의 무게 위에 가볍게 희망을 얹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사회 전체가 말한다.
"괜찮아, 다들 그렇게 살아.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이 말은, 위로보다는 경고에 가까웠다. 평평한 말속에는 고통의 경중이 깔려 있다.
아프다는 말 앞에 오는 '그래도'라는 말, 견디는 일에 요구되는 익숙함.
누구의 무너짐은 공감받고, 누구의 무너짐은 과장으로 취급된다.
고통을 느낄 자격은 제한되고, 5,000만의 삶은 저마다의 힘듦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그 등수를 매기고 만다.
현대 사회는 유독 감정에 인색하다.
슬픔은 오래 머물면 민폐가 되고, 눈물은 사람을 유약하게 만든다.
감정을 오래 붙잡고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미성숙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래서 어른이란 건, 정말 참고 견뎌야만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굳건하게 믿었다.
점점 슬픔은 느끼기보다 참는 것이 더 쉬워졌고, 감정은 말하기보다 조율하는 것이 더 편해졌다.
괜찮지 않음에도 괜찮은 척하는 일에 서서히 익숙해져 가다 보면, 나중엔 스스로가 진짜 괜찮다고 믿게 된다.
그래서 '괜찮다'는 말은, 서로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대신, 무언의 짐이 되어 간다.
결국, 표출되지 못하고 쌓인 감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다시 내가 홀로 감당해야 할 일이 되고 만다.
그렇기에 이제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일이, 어쩌면 괜찮다는 말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감정이 해석당하는 시대에서, 솔직함은 종종 불편함이 되고, 진심은 과잉이라며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사실 울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 법인데도, 사회는 그 울음을 피곤해하며 빨리 치우길 원한다.
이해하기보다 마무리하는 것이 편해졌고, 공감보다 회피를 택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그러니 '괜찮다'는 말이 위로보다 감정의 가림막으로 자리 잡은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고통을 무시하고, 타인의 감정을 지우는 순간, 그건 따뜻함이 아니라 폭력이 된다.
슬픔, 분노, 공허함, 두려움.
이 모든 건 병이 아니며,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가 살아 있다는 가장 단순하고 정확한 증거일 뿐이다.
누구도 완벽한 감정을 갖지 않았다.
누구도 흐트러지지 않은 얼굴로만 살아오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마음 어딘가에 말하지 못한 슬픔 하나쯤은 감추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망가진 적이 있고, 무너졌으면서도 아닌 척 일어선 적이 있다.
상처 위에 웃음을 덧칠하고, 고통 위에 평온을 가장하며 버텨온 나날들.
그 속에서 세상은 감정을 다루는 법을 섬세히 알려주지 않았으니 스스로 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감정은 다뤄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흘러가게 둬야 하는 생의 자연스러움이었다.
슬픔은 흘러야 씻기고, 분노는 흘러야 멈추며, 두려움은 흘러야 사라진다.
그러니 '괜찮다'는 말은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는 쓸 수 없다.
사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단순한 말 한마디보다는 함께 앉아주는 자세, 가만히 들어주는 마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곁에 머무는 태도. 그리고 스스로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자리.
단지 그것뿐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말보다, 정제된 문장보다, 그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 순간들.
그것만이, 진짜 '괜찮다'는 말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감정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울지 않아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은.
나 또한 그런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