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가장 늦게 배우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자존감이 시대의 화두가 된 건, 어쩌면 모두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아껴야 한다는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그 말이 계속해서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점점 자신이 '아끼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더 깊이 절망하게 된다.
자존감은 본래 내면의 감각이었다. 누구에게 보여줄 필요도,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도 없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것은 하나의 능력처럼 여겨졌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기술, 자신감을 표현하는 언어, 나를 마케팅하는 법 같은.
이렇듯 수많은 책들이 자존감을 이야기하고, 수많은 콘텐츠가 자존감을 키우는 법을 알려준다.
이제 자존감은 삶의 기반이 아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로 변해버렸다.
'당신은 충분하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라', '나를 사랑하는 법'.
말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말들은 끝내 소비를 유도한다.
그렇게 자존감은, 또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면 불완전한 인간처럼 느끼게 되었고, 자존감을 키우지 않으면 뒤처지는 사람처럼 취급당했다.
그것은 결국,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전에 먼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작동한다.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타인의 사랑도 받을 수 없다는 말은, 결국 사랑조차 능력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책을 사고, 강연을 듣고, 기록을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런 노력은 오히려 자신이 부족하다는 감각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나는 왜 아직도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 '왜 나는 여전히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까?'
자존감은 높아지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확인하게 되는 결핍이 되었다.
사랑하라고 말할수록,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결국 자존감은 말의 영역에 갇혀, 스스로를 괴롭히는 또 다른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너무 많이 말해서 울림 없는 말,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을 압박하는 말이 되어버린 자존감.
그 압박은 결코 개인의 몫만이 아니다. 자존감을 요구하는 사회의 구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은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사랑받은 기억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기어코 '사랑을 받았던 사람처럼 살아야만' 인정받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상처 없는 사람', '밝고 건강한 사람', '늘 사랑받아온 사람'.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은 어딘가 결핍되었다고 말한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누구나 완벽히 사랑받으며 자라지 않았다. 사랑은 결핍을 품고 기억되는 감정이고, 사실 완전한 사랑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늘 기대했지만, 한 번도 정확히 만나지 못한 형태로 남는다.
부족했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되고, 아팠기 때문에 더 간절했던 감정.
사람들은 그러한 사랑의 결핍을 설명하지 않기 위해, 자존감이라는 말로 그 자리를 대신했다.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결국 그 말조차 또 다른 결핍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자존감은 때로, 사랑받지 못한 기억들을 덮기 위한 마법의 단어였다.
어쩌면 우리는 자존감을 얻으려 애쓸 게 아니라, 스스로의 결핍을 인정하는 연습부터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자존감은 사랑받아본 사람에게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서져본 마음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조금 망가져도 괜찮고, 완전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감각. 그 감각이 없을 때 자존감은 오히려 또 다른 폭력이 되고 만다.
자존감은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을 안아줄 수 없는 날이 있고. 그러니 완벽히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외면하지 않고 머물 수만 있다면.
때로는 미워하는 그 마음까지 품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사랑이란,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지나 다시 스스로에게 되돌아오는 일이다.
그리고 그게 진짜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훈련이 아닌, 다만 나로서 잠잠히 머무는 일이다.
모든 감정의 파도를 지나, 끝끝내 나 자신에게 되돌아올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