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다는 건, 설명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다."
세상은 늘 증명할 수 있는 것만을 진짜라고 믿는다.
눈에 보이는 수치, 입증 가능한 데이터, 수많은 통계와 과학의 이름들. 그리고 그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은 허무맹랑한 말로 치부된다. 생각의 힘, 말의 힘, 믿음의 힘. 이 모든 것은, 너무 오래 '의심'이라는 이름 아래 놓여 있었다.
'시크릿'이라는 개념 역시 그 안에 있다. 마치 종교와도 같고, 어떤 이에게는 사기처럼 보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에게는 삶의 모든 원리를 꿰뚫은 진실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그것을 믿고 있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믿음은, 누구에게나 설명할 수 없는 언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될 만한 이유를 찾고, 성공한 사람의 방법을 따라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수없이 듣는다. 하지만 그러한 말들이 점점 공허해지는 이유는, 시크릿이 단순한 공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계산으로 풀 수 있는 이론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에서 비롯되는 확신이었다.
말에는 힘이 있다. 하지만 그 말은 의심이 없는 말이어야 한다.
그리고, 말보다 먼저 생각이, 생각보다 먼저 믿음이, 그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그 문장 뒤에는, 수많은 오해가 숨어 있다.
사람들은 결과만을 보고 믿음을 평가한다. 하지만 시크릿은 결과를 예언하는 이론이 아니기에, 현실을 바꾸기 전에 먼저 나를 바꿔야 한다.
바라는 현실은, 내 무의식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감정과 일치할 때에만 서서히 현실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 과정을 믿지 못하면, 시크릿은 작동하지 않는다.
의심은 그 흐름을 끊는다. 그래서 시크릿은 논리의 세계가 아니라, 신뢰의 세계에 있다.
나는 믿는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그건 그냥 우연이야.", "그건 네 착각일 뿐이야.", "믿는 건 자유지만, 좀 미신 같지 않아?"라고 말하는 순간, 내 믿음의 선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믿음은 단단하지만 섬세하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믿음을 조용히, 아주 깊은 곳에 감추어두고 살아간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오직 생각으로만 응시하며, 나의 세계를 만든다.
시크릿을 믿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가지로 반응한다.
"멋진 생각이네요." 혹은 "그런 비현실적인 말 좀 하지 마세요." 나는 어떤 반응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 말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은 그들의 삶일 뿐, 내가 만들어가는 세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시크릿이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아무리 간절히 원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현실이 움직이지 않을 때. 그럴 땐 나는 조용히 되묻는다. 나는 지금, 진심으로 그것을 믿고 있는지. 혹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이건 안 될 거야'라는 불안이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사실 시크릿도 감정과 같다.
우리는 살면서 기쁨은 놓아두면서도, 슬픔과 불안은 억누르고 붙잡는다.
붙잡으면 집착이 되고, 외면하면 억압이 된다. 그러면 감정은 멈추고, 현실은 굳어버린다.
부정적인 감정도 억누르지 않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감정은 스스로의 흐름을 따라 떠나고, 그 여백에 새로운 현실이 찾아온다.
시크릿은 붙드는 힘이 아닌, 흘러가게 두는 신뢰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는다. 세계의 모든 원리가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믿음보다 논리를, 감정보다 증거를, 가능성보다 확률을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확률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그 가능성의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생각이며, 믿음이며, 의식의 힘이다.
말에는 힘이 있기에, 누군가에게 말하기 전에 나에게 먼저 말해야 한다. 수십 번, 수백 번 되뇌어 나의 일부가 될 때까지. 그래서 그 말이 현실이 될 만큼 내면 깊숙이 닿았을 때, 그제야 세상이 바뀌기 시작한다.
믿음과 집착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반복은 같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감정이 다르다. 바로 불안의 차이.
모든 집착과 외면, 억압의 밑바닥에는 늘 불안이 깔려 있다. 붙잡는 마음은 결국 놓칠까 봐 두렵기 때문에 생기고, 외면은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하지만 불안이 사라질 때, 그 반복은 순수한 믿음이 된다.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매일 믿으려 애쓰지 않듯, 너무 당연한 것은 애써 붙들지 않는다.
시크릿도 그렇다. 믿음이 삶의 전제가 될 때, 시크릿은 간절함이 아니라 이미 그러한 세계로 작동한다.
결국, 정말 이루어지는 말은 간절한 말이 아니라 의심 없는 말이다.
나는 여전히, 세계가 시크릿으로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의 시크릿은,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가장 조용하고도 깊은 믿음이기에, 굳이 말로 옮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도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나의 방식일 뿐이다. 조용한 믿음이 내게는 가장 어울렸을 뿐, 누군가에게는 말로 꺼낼 때 더 진심이 되고, 소리 낼 때 더 단단해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정답처럼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다만, 나의 길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엔 수많은 믿음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의 믿음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의 믿음을 살아가야 한다.
나는 답이 아닌, 질문을 남기고 싶다. 그리고 그 질문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조용히 피어나면 좋겠다.
세상은 생각보다 느리고, 감정보다 예민하며, 믿음보다 정직하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우리가 믿은 만큼만 도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