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닮아, 나를 배신한 욕망

by 유영

"문득, 내가 원한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남들이 가진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욕망은 처음부터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건 타인의 말투를 닮았고, 타인의 풍경을 따라 걷고 있었다. '갖고 싶다'는 감정 뒤에는 언제나 '누가 먼저 가졌는가'가 있었고, '되고 싶다'는 마음 뒤에는 늘 '누가 그렇게 보였는가'가 자리했다.

욕망은 가장 나다운 얼굴로 나를 가장 멀리 데려가는 감정이다. 마치 내 안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대부분 외부에 있다. 타인의 시선과 기준, 박수와 평판이라는 낯선 대지 위에.

나는 그 위에 나를 심었다. 자라나는 줄 알았지만, 그건 누군가의 풍경이었다.

그 속에서 자라고 있는 척, 나를 기르고 있는 척, 결국 타인의 꿈을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모든 오해가 시작되었다. 사람은 이동하는 존재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나를 외부에 심어버렸다. 안으로 내려야 할 뿌리를, 밖에다 내린 것이다. 그래서 늘 그 자리에 붙잡혔다. 타인이 기대하는 모습, 타인이 응시하는 방향에 나를 묶어두었고, 그 기대에 맞춰 자라났다.

문제는 자라났다는 데 있다. 이미 뿌리를 내려버렸기에, 나중에야 그것이 내 것이 아님을 알아도 쉽게 옮겨 심을 수 없었다. 나는 성장했지만, 내가 바라던 방향은 아니었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도저도 아닌 혼란 속에 놓였다.

움직이기엔 너무 깊이 자라 버린 나. 떠날 수 없고, 머물 수도 없는 곳에, 너무 오래 서 있고 말았다.


살면서 우리가 한 번쯤은 묻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내가 뭘 원했었더라?' 애석하게도 그 질문은 대부분 늦게 도착하고 만다. 욕망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고, 우리는 그것이 타인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욕망이 이미 나를 배신하고 있었다는 진실을 너무도 나중에야 깨닫는다.








욕망은 대체 언제부터 외부에서 자라기 시작했을까.

대부분의 욕망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나보다 먼저 자란 누군가의 욕망을 닮아 있었고, 그건 종종 광고의 목소리로, 교육의 언어로, 타인의 기준으로 스며들었다.


"당신은 더 나아질 수 있어요."

"지금 이대로도 괜찮으신가요?"


아주 친절하게 속삭이며, 주문을 건다.

그 모든 말은 결국 지금의 나를 부족하게 만들어야만, 새로운 욕망이 자라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 나은 나, 더 예쁜 나, 더 성공한 나. 그 '더'는 늘 지금의 나를 부정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불안은 비교에서, 결핍은 타인으로부터 자라난다.

저만큼은 되어야 한다는 불안감, 저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열등감.

누군가의 성공이, 삶이, 어느 순간 내 미래가 되어버릴 때. 그렇게 타인을 따라 자라나고, 나는 그 안에서 나를 잃는다.


그렇기에 혼자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부러워해야만 의미가 생기고, 누군가보다 앞설 때에만 가치가 부여되는 모든 것들.

그것들은 전부 철저히 비교의 감정 위에 뿌리를 내리고, 그 속에서 또 다른 감정을 낳아 끝내 결핍을 만들고 만다. 그리고 다시, 길들여진 욕망을 낳는다.


욕망은 그렇게 자기 복제를 반복하며 내면을 잠식한다. 때로는 나를 세우고, 때로는 무너뜨리는 감정.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그 욕망이 누구의 것이냐는 물음이다.








본디 욕망은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건 욕망 자체가 아니라, 그 출처를 묻지 않은 채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다.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떠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손에 든 카메라는 그냥 눈앞의 순간이 예뻐서였고, 사랑은 언제나 말보다 시선이 먼저 닿았다.


그 모든 건 가장 순수한 욕망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안에서 오래 준비된 것들이 들어있었다.


그러니 진짜 욕망은 고요 속에서 온다.

타인의 언어가 빠지고, 비교의 감정이 가라앉은 다음, 오랜 침묵 끝에 불쑥 고개를 드는 것.

그것은 큰 목표나 대단한 성취의 옷을 입고 있지 않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 아무것도 갖지 않아도 조금은 편안해지는 마음.

그 감정의 자리에서 나의 욕망이 고개를 든다.


나는 이제 무언가를 원할 때마다 그 욕망이 진짜 나의 것인지부터 되묻는다.

누구의 풍경에서 시작되었고, 지금의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 하는지.

내 욕망이 나를 세우는지, 아니면 또다시 타인의 꿈을 대신 살게 하는지는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다.


그래서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욕망은 내가 피하지 않을 때에만 모습을 드러내니까.

내가 원하는 삶의 조건은 사실 이미 나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욕망이 나를 배신했던 수많은 순간들을 지나, 내가 나에게 되돌려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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