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인생을 바꾸지 않는다.

by 유영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유의 문을 여는 일이다.

책이 아니라, 결국 자신을 읽게 되는 일이기에."




어느 날부터인가 책은 결과물이 되었다. 많이 읽는 사람, 빠르게 읽는 사람, 남들보다 먼저 정보를 흡수한 사람. 그들은 모두 독서를 잘하는 사람으로 불린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지적 자산으로 포장되었고, 그 지적 자산은 곧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팔려나갔다.


책을 읽으라는 말은 넘친다. 그러나 왜 읽어야 하는지,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 질문은 사라졌고, 오직 '얼마나 많이'라는 양적 기준만이 남았다.

자기계발서들은 말한다. 성공한 사람은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책 속에 답이 있다. 지금 당신의 인생이 바뀌지 않는 건,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아서라고. 책은 그렇게 또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더 많은 책을 읽는 자가 성공할 수 있다는 전제는 자본주의적 교육 시스템 속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읽는 행위는 이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아니라, 남에게 내보일 수 있는 스펙이 되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마치 그 사람의 깊이를 보장해 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반드시 깊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사유로 이어지지 않는 읽음,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읽음은,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책을 통해 삶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에게 자기계발서는 너무도 완벽하게 정리된 문장을 내민다. "이렇게 하면 된다.", "이렇게 살면 된다." 그리고 그 문장은, 마치 하나의 공식처럼 반복된다. 그 공식은 빠르다. 결론부터 말하고, 해답부터 내민다. 질문은 없다. 질문을 던지기엔 이미 답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런 책은 읽고 나면 말끔하다. 모든 것이 해결된 듯한 착각을 남긴다. 하지만 정작 책을 덮는 순간, 마음에 남은 것은 거의 없다. 울림이 아니라 수행 과제가 남고, 철학이 아니라 실적표가 남는다.


나는 그런 독서를 경계한다. 문장을 소비하고, 개념을 흡수하고, 성공의 기술을 수집하는 독서.

하지만 읽음은 흡수가 아니라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 문장이 나를 지나갈 때, 나는 그 문장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기억해야 한다. 무엇을 읽었느냐보다, 무엇이 나를 건드렸느냐가 중요하다.

책 속의 문장이 아니라, 그 문장을 읽는 나의 상태가 중요한 것이다. 독서가 단지 정보의 수집이 된다면, 이는 검색과 구분되지 않는다.








읽는다는 행위가 살아 있는 이유는 우리가 감정이 있고, 경험이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통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달았고, 그 무지 속에 얼마나 많은 질문이 숨어 있었는지를 발견했다. 좋은 책은 언제나, 정답보다 질문을 먼저 던졌다. 읽는 동안 나를 흔들었고, 읽은 후에도 나를 붙잡았다.

그런 책은 결코 읽고 끝나는 법이 없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독서는 재테크다. 책은 투자 상품이다. 주식, 부동산, 단기간 수익. 이런 것들이 독서 목록의 우선순위가 되어버렸다. 철학은 '비효율'이 되었고, 인문학은 '쓸모없음'이 되었으며, 소설은 '시간 낭비'가 되었다. 느리게 감정을 이해하는 것보다 빠르게 실행하는 능력이 더 높이 평가받는다.

이 사회는 더 이상 생각하는 독자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직 빠르게 적용할 독자를 원할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말하는 '위대한 창조', 그렇게들 원하는 '시대를 이끄는 리더'. 그 모든 것은 결국 철학과 인문학, 그리고 무엇보다 상상력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이 상상력은 효율로는 길러지지 않는다. 그것은 삶을 느리게 바라보고, 다른 세계를 깊이 상상하며, 말이 되지 않는 질문들을 오래 끌어안는 힘에서 생겨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은 단지 이야기의 나열이 아니다. 그 안에는 작가의 철학, 시대의 감정, 존재에 대한 은유와 비유,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녹아 있다.

그 모든 것을 각자의 언어로 다시 읽고, 해석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통과시킬 때, 새로운 세계가 탄생한다.

그러니 소설은 사유의 훈련이고, 상상의 실험장이며, 인간 이해의 가장 진한 기록이다.


지식을 습득하는 학문은 계속해서 남의 지식만 습득하고, 내 이론은 완성하지 못한다.

하지만 좋은 소설은, 지식을 넘어 존재를 바라보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책들을 종종 쓸모없다고 치부한다. 그 대신, 자기계발서는 여전히 정답을 말하고, 기술을 알려주고, 성과를 보장해 준다. 그러나 그런 책들은 삶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자기계발서 중심의 독서는 때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막기도 한다. 나만의 노력으로 이룬 성공에 몰입하면서, 타인의 사정과 감정을 쉽게 무시하게 된다. 그 결과, 삶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대하며, 자신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 믿지만, 정작 타인의 세계를 헤아릴 줄 아는 눈은 점점 흐려지게 된다.


오히려 소설은 그 반대다.

서사를 따라가는 동안 낯선 타인의 내면에 깊이 들어가게 되고, 결국엔 나 자신까지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좋은 소설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누구든 이해받을 이유가 있고, 설명될 사연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면, 수많은 인간의 세계를 먼저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 가장 빠르고 깊은 통로가 바로 책이고, 그중에서도 소설이다.

책은 시간을 건너고, 공간을 넘어, 타인의 고통과 기쁨, 혼란과 깨달음을 오늘의 나에게 직접 건네주는 유일한 매개체다.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이 만든 환상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결국 타인의 정답을 수행하는 데에만 소진될 뿐이다.








나는 이제 묻는다. 왜 우리는 책을 읽는가. 왜 그 많은 문장을 그냥 흘려보내는가. 왜 문장이 내 안을 통과하지 못한 채, 그저 '읽었다'는 체크리스트에만 머무는가.

나는 이제, 읽는다는 것을 다시 정의하고 싶다.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외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다. 읽는다는 것은 지식을 입히는 일이 아니라, 무지함을 인정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책은 인생을 바꾼다고.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책은 인생을 바꾸지 않는다. 책을 '어떻게' 읽느냐가, 인생을 바꾼다.

좋은 책은 누구에게나 읽히지 않는다. 바뀌려는 사람에게만 읽힌다.

그리고 내 삶을 흔들어 놓은 문장 대부분은, 언제나 소설 속에 있었다.

정보를 나열하는 책들이 지식을 줄 수는 있어도, 사람을 바꾸는 건 결국 이야기였다.


책은 읽는 것이 아니다. 살아내는 것이다. 한 줄 한 줄을 삶 속으로 데려오는 것. 그 문장이 내 삶의 일부가 되는 것.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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