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날. 리도섬에 다녀온 뒤 좀 쉬다가 해질 무렵 산마르코 광장으로 갔다. 나폴레옹이 이곳을 ‘유럽의 응접실’이라고 했다던데 정말 이곳은 아름다운 궁전의 응접실처럼 널찍하면서도 아늑하고 고풍스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곳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잔잔한 바다, 광장을 메운 소규모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아름답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광장은 산마르코 성당, 두칼레 궁전, 종탑 등 세계 최고의 명소로 둘러 쌓여있지만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플로리안>이라는 세계 최초의 카페였다. Since 1720년, 무려 3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카페 앞에 서서 나폴레옹, 괴테, 카사노바가 드나들었을 상상을 해본다. 특히 카사노바는 이곳의 단골이었다고 한다. 여성들에게는 카페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던 시대에 이곳 <플로리안> 유일하게 여성 출입이 가능했던 곳이기 때문이라나. 차 한잔 하고 싶은 마음을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몇몇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라이브 연주가 선물처럼 느껴지는 고마운 순간이었다.
이 아름다운 광장과 베네치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종탑에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여행지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 전망을 바라보는 코스는 놓치지 않았던 것 같다. 델리 시내든, 바르셀로나 시내든 정신없이 여행지를 헤매다 잠시 꼭대기에서 작아진 삶의 터전을 바라보는 시간이 좋았다. 나무만 보다 숲이 보이는 시간이고, 바삐 걷다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였다. 지금까지 성당과 미술관은 수도 없이 보았기에 베네치아에서는 성당과 미술관을 제쳐두었다. 산마르코 광장의 종탑은 감사하게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니면 안 갔을지도 모르겠다. 100m를 단숨에 올라 해가 지는 베네치아를 바라본다. 그렇게 잠시 멈추고 하늘과 바다, 솟은 지붕들, 작은 골목들을 한참 바라보다 내려왔다. 베네치아를 제대로 본 듯한 기분이었다.
베네치아에서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었던 일은 곤돌라를 타는 것이었다. 베네치아 곳곳에는 멋이 좔좔 흐르는 검은색 페인트가 칠해진 곤돌라가 사방에 널려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빠삐용 복장을 입은 탄탄한 근육의 곤돌리에레들이 곤돌라에 폼 잡고 서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많이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바라나시에서 만난 뱃사공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 곤돌라 한 대가 천 만원이 넘고, 곤돌리에레를 양성하는 학교도 있다고 하니 곤돌라에 대한 베네치아 사람들의 자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혼자서 타기에는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몇 사람이 모이면 부담 없는 가격으로 베네치아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쌓을 수 있다. 나도 몇몇 사람들과 함께 곤돌라를 탔다. 곤돌라를 타고 두칼레 궁전과 감옥 prigioni를 잇는 탄식의 다리를 지나는 것은 베네치아를 정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곤돌라를 타고 좁은 골목골목을 지나며 바닷물에 색이 바랜 이름 모를 집들의 별을 훑으면서, 목청 좋은 곤돌리에레가 이탈리아어로 뽑아내는 가곡을 들으며 그렇게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골목골목을 다 뒤져서 맘에 드는 가면을 몇 개 샀다. 다소 섬뜩해 보이기도 하지만 베네치아를 기억하기에 좋은 기념품이다. 골목을 헤매다 지치면 젤라또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이탈리아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수박 맛 젤라또 아이스크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골목 구석구석에 보이는 베네치아의 호텔들은 어찌나 아름답고 고급스러워보이던지. 그 호텔 앞에 손님을 기다리는 곤돌라가 딱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급 서러움이 몰려왔다. 내가 머물고 있는 민박집과 사람이 빼곡히 올라탄 수상택시와 격하게 비교되는 광경이었다. ‘다음에 올 때는 취업하고 돈 많이 벌어서 꼭 이 아름답고 운치 있는 베네치아의 호텔에서 묵으리라!!’. 하지만 그런 여행과 땀에 절은 배낭을 메고 혼자 씩씩하게 골목을 누비고, 소박한 민박집에서 모기에 뜯기며 잠든 이 여행을 바꾸라면 바꾸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 이대로 너무 소중하고 아름답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