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즈가르에서의 2주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무렵 나긴다르가 우리에게 시크 템플에 가겠냐고 물었다. 처음엔 시크교도의 템플에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인지 몰랐다. 나중에서야 시크교도 사람들을 만난 것은 인도 안의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멋들어진 터번을 두르고 다니며 시선을 끄는 이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들이 시크교도 들이다. 시크교는 16세기 초에 구루 나낙이라는 이가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절충하여 창시한 종교다. 때문에 힌두교나 이슬람교와 비슷한 부분도 많지만 독특한 시크교만의 문화와 생활양식 또한 갖고 있다.
시크교도들은 엄격한 규율에 따라 생활하며 정직과 성실을 철칙으로 삼아 지키기 때문에 인도 내에서도 신뢰가 높다고 한다. 멋진 터번을 쓴 사람에게는 안심하고 도움을 요청해도 좋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신기한 것은 시크교도들이 작은 칼을 몸에 차고 다닌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을 찌르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인데 오랜 박해 끝에 스스로를 지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른 아침부터 험난한 길을 지나 도착한 곳에는 시크교도들이 모여 사는 대학과 사원이 있었다. 한눈에도 구별되는 독특한 옷차림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학교 곳곳에는 시크교도들이 지켜야 할 규율 같은 것이 적혀있었다. 이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신념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이슬람교의 엄격한 원칙주의보다는 느슨하지만 만물을 신으로 여기는 힌두교의 자유로움보다는 정제된 시크교 특유의 느낌이 곳곳에서 베어 나왔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정말 아름다운 음악소리에 이끌렸다. 발길이 닿은 곳은 음악대학의 수업교실이었다. 우리가 상상하는 전형적인 강의실과는 달리 동그랗게 벽이 둘러진 아늑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우리의 가야금과 비슷한 시크교도의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잠시 앉아서 음악을 듣고 가라고 초청해주셨다. 여기서 들은 음악이 인도에서 들은 어떤 소리보다도 아름다운 소리였다. 월드 뮤직을 좋아해서 재즈, 보사노바, 탱고 장르를 않고 가리지 않고 이국적인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시크교도 친구들이 들려준 연주는 이전에 어느 곳에서도 들은 적이 없는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외국 문화라고 하는 것도 역시 얼마나 제한적인지 다시 한번 느꼈다. 중동, 아프리카, 남미 우리에게 생소한 곳이자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곳에는 정말 얼마나 다양하고 다채롭게 아름다운 예술과 문화가 숨어있을까?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런 것들이 공유될 수 있는 기회가 늘어간다면 참 좋을 텐데, 반대로 돈의 흐름에 따라 획일화되고 있다는 생각에 잠시 슬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시크교 학생들이 들려준 음악은 그런 생각조차 날려버릴 만큼 정말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을 글로 옮기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들이 연주하는 인도 악기인 시타르는 우리나라 가야금과 비슷한 악기였다. 여러 개의 줄을 손으로 튕겨 소리를 내는 방식이다. 가야금이 주로 단독으로 강하고 결단력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면, 시타르는 더 유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데, 동시에 여러 대를 연주함으로써 여러 개의 구슬이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듯한 잔잔하고 맑고 아기자기한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답게 우리에게 한국의 음악을 소개해 줄 수 있냐고 요청해 왔다. 그러나 비루한 우리에게 가진 재능이라곤 목청뿐이었다. 쑥스럽지만 아리랑을 말도 안 되게 몇 소절 불러주었다. 그들의 연주에 비하면 너무 창피한 우리의 생목이었지만 이 낯선 언어와 가락을 소개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었다고 위로를 해본다. 한참을 집중해 연습하던 이들에게도 우리와의 만남이 즐거운 휴식이었나 보다. 우리는 금세 정이 들어 몇 장이고 반복해 사진을 찍고, 메일 주소와 페이스 북 계정을 주고받았다. 인사동에서 산 한복 입은 소년소녀 열쇠고리를 하나씩 나누어주니 정말 아이처럼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무심코 선물을 챙겨 온 것이 보람되는 순간이었다. 교실 밖을 나서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친구들은 한참을 복도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인도에는 이처럼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그래서 인도야 말로 모든 것에 대해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도 사람들은 ‘이렇다, 저렇다’하고 단정 지어 말한다면 그야말로 장님이 코끼리 코를 만지고 코끼리가 뱀처럼 가느다랗고 긴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새로운 인도 사람들을 알게 될 때마다 ‘~~ 할 것’이라는 예측은 모두 엇나갔다. 하나의 나라라고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새로운 모습들이 끊임없이 숨겨진 이 대륙. 나 역시도 북부의 몇몇 도시만 방문하고 인도를 보았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시크교도 사람들과의 만남은 인도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