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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May 28. 2017

이별은 작별인사도 없이...

 내일이면 각자의 여행 일정을 따라 정든 나긴다르 아저씨의 집을 떠나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몇몇은 북쪽으로 가 티베트 문화를 볼 수 있는 다람살라로 가기로 했고, 몇몇은 갠지스강이 있는 바라나시를 가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인도 북부가 생각보다 너무 추워서 일본 친구들과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최후의 만찬 역시 어김없이 흙바닥 아궁이에서였다. 첫날의 당황스러움이 이젠 익숙함이 되었다. 이상하게 이곳이 참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하루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델리에서 버스 안에 있는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일이 있었는데 인도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인도 사람들은 성폭행에 대해서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카스트제도가 법적으로는 금지되었다고 하던데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남아있나요?”, “인도 사람들은 그럼 딱 보면 서로 무슨 계급인지 요즘도 구별할 수 있나요?” “나긴다르 가족은 그럼 무슨 계급에 속하는 거예요?” 다소 까다로울 수 있는 질문에 까지 나긴다르 부부는 세심하게 설명해주었다. 나긴다르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없었다면 나의 인도 여행은 여전히 많은 궁금증과 아쉬움으로 가득한 외부인의 관광에 그쳤을 것이다. 나긴다르의 가족과 나눈 이야기와 함께 먹은 밥, 같이 걷던 시간들이 이 여행을 조금이나마 그들의 삶과 생각에 다가설 수 있는 기억들로 만들어주었다.  

  특히 인도의 카스트제도처럼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생소하고,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인도의 문화에 대해서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잘 모르기 때문에 쉽게 판단하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카스트는 법적으로는 금지됐지만 여전히 생활 속에서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인도의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이 다르고, 삶의 영역이 다르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서구의 평등과 개인의 개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 크게 네 개의 계급으로 나뉘는 카스트제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마치 잘 사는 사람부터 못 사는 사람까지의 경제적 분류라기보다는 인도 특유의 종교적인 삶의 양식과 닿아있는 구분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인도의 집단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물었다. 기사를 접하면 흔히 한국 사람들은 ‘역시 인도는 위험한 나라’, ‘이상한 나라’, ‘미개한 나라’로 단편적인 판단을 한다. 나 역시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궁금했고, 인도에서는 실제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빈번한지 그 인식은 어떤지 알고 싶었다. 마마는 인도에서도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공론화되었고,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엄청난 반발 시위가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마지막 날이라고 나긴다르 부부가 선물을 준비해주셨다. 히마찰프라데시주를 상징하는 모자라고 한다. 그런데 모자가 너무 작은 것인지 우리 머리가 큰 것인지 누구의 머리에도 맞지 않는 사이즈였다. 한바탕 웃으며 머리에 얹고 사진을 한 장씩 찍고 짐을 싸러 방에 내려왔다. 2주 동안 나에게 인도를 관광지가 아닌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어준 정든 공간을 하나둘 씩 정리해갔다. 봉사활동은 끝이지만 이제 혼자 하는 여행의 진짜 시작이다. 나는 타지마할에서 입기 위해 특별히 맞춘 아이보리 색 인도 펀자비를 고이 접어 배낭에 넣었다.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묻어있는 옷이었다. 옷감은 나긴다르 아저씨께서 직접 골라주셨다. 타지마할에서 예쁜 인도 옷을 입고 사진 찍고 싶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시고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는데도 짬을 내서 옷가게에 데려가 주신 것이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약간 황당한 작별을 해야 했다. 짐을 대충 쌓아놓고 아침을 먹던 중에 집 앞에 버스가 도착했는데, 갑자기 나긴다르가 우리더러 모두 짐을 들고 그 버스에 타라는 것이다. 우리는 경황없이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후다닥 캐리어 만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너무너무 아쉽고 허무했다. 버스에서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다 좋아하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삶이란 결국 그런 거죠. 보내는 것. 하지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작별인사조차 못했다는 거죠, 리처드 파커에게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고마워 리처드 파커 널 영원히 잊지 않을 거야.

  바다 한가운데서 생사를 같이했던 호랑이는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주인공의 아쉬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작별인사도 없이 유유히 숲 속으로 떠나버린다. 파이의 이별은 그 뒷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런 이별 속에서 그는 삶이라는 것이 결국 작별인사도 없이 맞아야 하는 끊임없는 이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엔 헤어지는 모든 순간이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포착되지 조차 않은 그렇게 작별인사도 없이 맞은 이별이 사실은 얼마나 많았을까. 우리는 제대로 작별인사를 나누지도 못하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서둘러 정신없이 버스에 올라탄 뒤로 조금 멀리서, 조금 오랫동안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런 이별이 나쁘지 만은 않았다. 몇 번이고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고, 작별의 말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그것은 꼭 정말 마지막이라는 확인 같으니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아쉬움은 굳이 티 내지 않았다. 바로 내일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그렇게 가볍게 떠났기에 언제든 반갑게 다시 만날 수 있는 우리이기를. “고마워요. 나긴다르 가족들, 함께 지냈던 친구들.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하고 싶었던 말을 급히 올라탄 버스 안에서 혼자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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