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하는 엄마의 자격

오은영 박사님께 자격을 상담 받는다면

by 엄지언

며칠 전 모든 할일을 두고 아이들 재우다 잠이 들었다. 글 쓰고, 명상 하고, 경제 공부도 하려했다. 그냥 그렇게 잠들어 일어나보니 아침. 허무했다. 특히 약속이 있었다. 밤에 온라인 명상 모임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냥 그렇게 아무 소식도 없이 증발했다. 나는 원래 약속을 꼭 지키는 사람인데. 속상했다. 그런데 다음에는 과연 제대로 참석할 수 있을까. 첫째에게 그렇게 약속을 해놓고 또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날이 떠올랐다.




2020년 2월.

5살 첫째의 2학기 마지막 날 쓴 일기


오늘도 깜박했다. 첫째가 일찍 끝나는 걸. 유치원 단축으로 12시에 끝났는데 나는 1시까지 쿨쿨. 둘째와 잠들어 있었다. 심지어 오늘은 2학기 마지막 날이었다


다행히 남편이 유치원에서 연락을 받아 첫째를 데리고왔다.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단다. 첫째가 와서 놀라 시계를 보니 두시였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너무 미안했다. 어제 약속한 터였다. 내일은 엄마가 꼭 데리러 간다고. 어제도 둘째 보는 엄마 대신 아빠가 데리러갔었다. 그래서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지 못했다며 속상해 했다. 평소 내가 데리러가면 1~2시간을 친구들과 놀고 온다. 이번년도 마지막 날이니 친구들과 놀 수 있게끔 엄마가 꼭 데리러간다고. 약속에 약속을 했었더랬다.


남편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대체 이게 몇번째인가. 다행히 근처에 있어서 한시간만에 데리러 갔다한다. 일하다 비상호출로 중간에 갔으니 본인도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남편의 비난도 두려웠다. 부부싸움할 때 이 이야기가 나올 게 뻔했다.


평소 참 노력하는 엄마인데. 둘째 낳고 가끔 이렇다. 멀티가 안되는 이놈의 머리때문이기도 하다. 둘째 보다보면 정신이 없다. 요구에 끌려다니다보면 낮에 사실 아이 보는 거 외에 다른 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덕분에 전화 무음. 그리고 카톡도 하루 한 번 몰아 확인한다.


또한 둘째 낮잠 재우다 같이 잠들어 첫째 데리러 가는 시간을 놓친 적이 많다. 선생님은 처음에 나를 믿어주시다가 나중엔 으례 잘 늦는 엄마라고 생각하게 된 듯했다. 철두철미한 내가 이렇게 무능력한 엄마가 되다니. 나를 용서하기 힘들었다.


죄책감. 부모의 권위가 하락하는. 엄마의 자격이 떨어지는 느낌. 약속 지키는 것 중요한데, 하. 어떻게 내 자신을 달랠지 생각해보자.




이때 읽었던 동아일보의 오은영 칼럼 <엄마 ‘자격’? 그런 말은 없다>의 한 파트 소개한다.



욱해서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손이 올라갔다며 한 엄마가 울면서 말했다. “원장님, 저는 엄마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나는 부모건 교사건 이유를 불문하고 절대 아이를 때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다. 그 엄마의 행동은 분명 잘못됐다. 그렇다고 ‘엄마 자격’이 없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모들은, 특히 엄마들은 육아를 조금만 잘못하는 것 같으면 ‘엄마 자격’을 걱정한다. 주변에서 “엄마가 돼서…” 하면서 ‘자격’을 운운하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조금 화가 난다. 엄마면 엄마지 ‘엄마 자격’이 어디 있는가. 물론 아이를 때리면 안 된다. 이때는 ‘나는 왜 아이를 때렸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을 찾아 고치면 된다. 수많은 자녀교육서의 저자나 육아 블로그의 스타들처럼 아이를 키우지 못한다고 엄마 자격이 없을 수는 없다.
눈앞에서 자동차가 내 아이를 덮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치자.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 0.1초도 생각지 않고 바로 뛰어들 것이다. 아이를 잘 달래지 못하는 엄마도, 골고루 먹이지 못하는 엄마도, 매일 짜증육아를 일삼는 엄마도 모두 반사적으로 몸을 던질 것이다. 만약 그때 다치거나 죽게 된다면, 그 순간을 원망하고 후회할까. 아마 다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엄마 자격’이라는 생각이, 내가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을 때 드는 줄은 안다. 하지만 그조차 ‘엄마’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기에 더 잘 키우고 싶기에 드는 생각이다. 내 안의 엄청난 육아 본능을 믿어라. 그리고 방법은 내 아이의 성장을 돕는 방향으로,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차근차근 배워 나가면 된다.






칼럼의 엄마는 아이를 때렸기에 오은영 박사님께 울며 엄마 자격을 상담받았다. 그렇담 잠들어 첫째를 제대로 데리러 가지 못한 나도, 엄마 자격을 상담받으면 어떻게 말씀하실까?


엄마면 엄마지 엄마 자격이 어디있는가. 물론 제 시간에 데리러 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는 왜 아이를 제 시간에 데리러가지 못했을까를 생각해보고,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을 찾아 고치려고 노력하면 된다.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엄마 자격이 없을 수는 없다.


분명히 이렇게 이야기하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고 따끔히 혼나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엄마 자격이 있는 것처럼, 내 인생의 자격도 있는 거겠지. 아이 낳고 정말 엉망이다. 리고 또 많은 힘든 일들이 있었다. 내 몸은 괜찮은지 걱정이 된다. 이제는 나아지련다. 다시 내가 되련다. 그런 의지에서 명상도 건강관리도 시작했다. 잘 안되어도 계속 노력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식의(食醫) 아닌 식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