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의(食醫) 아닌 식모

현미밥과 시금치 된장국

by 엄지언

간만에 마트에서 모시조개를 샀다. 얼음물에 손을 넣어 아이들과 두 팩을 골랐다. 아~ 차갑다 라며 아이들과 번갈아 들며 집에 돌아왔다. 조개를 해감했다. 멸치 육수를 끓였다.


요즘 우리 가족은 매일 저녁 인스턴트 음식이었다. 코로나로 점점 힘들어지며 우동 짜장면 통닭 빵... 그러다 몸에 밀가루가 좋지 않다는 글을 읽었다. 안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정말 안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몸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나처럼 민감한 둘째도 마찬가지. 뭐라도 직접 해 먹자. 엄마표가 최고다.


둘째가 내 다리를 붙잡고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낸다.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랑만 놀아달란다. 어제는 그나마 누나랑 잘 놀아서 수월했는데. 오늘 또 그러는구나. 사실 요즘 성장기인지 계속 그랬다.


간만에 내가 직접 국을 끓이는데. 좀만 도와주지. 계속 인스턴트만 먹고살 순 없잖니.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그래도 정신을 가다듬었다.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이것만 다듬고 놀아줄게. 계속 우는 아이를 두고 후다닥 시금치를 뜯어 국에 넣었다. 첫째가 와서 조개도 넣었다. 얼른 마무리하고 둘째와 다시 놀아주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밥을 지었다. 오늘은 현미밥. 정제된 흰 음식만 계속 먹었으니, 비타민의 보고인 현미를 먹자. 몸의 독을 중화시켜줄 거야. 밥이 다 되었다. 밥통을 열어 휘저은 후, 계란물을 풀어 넣은 유리그릇을 넣었다. 얼마 전 이웃 작가님이 알려주신 레시피. 밥 먹기 전에 꺼내면 맛있을 거야. 일식집 계란찜 버금갈 거야. 생선을 구웠다. 아이 안으며, 달래며, 놀아주며. 한 끼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이기 위해. 애들 없으면 30분이면 끝날 식사 준비가 2~3시간 걸렸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국이 다되었다. 시금치도 모시조개도 싱싱해서, 국이 달달하고 고소하니 맛있게 되었다. 건강의 내음이 났다. 분명 두드러기를 가라앉혀 줄 거야. 남편과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우리 집의 진정한 식의 처럼 느껴졌다. 남편이 왔다. 들어오자마자 냄새를 맡는다.


오늘 저녁은 뭐야?

응, 된장국이랑 고등어. 그리고 계란찜도 했어.

그래? 하- 나 햄 구워 먹어도 돼? 그냥 대충 먹어야겠다.

뭐라고? 햄? 햄 구울 자리 없어. 지금 프라이팬에 고등어 구워놨거든. 나는 기껏 생각해서 만들었는데. 그렇게 말하니 섭섭하다. 맘에 안 들면 밖에서 사 먹고 들어와.


남편은 왜 이런 거에 섭섭해하냐며, 자긴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냐고 투덜댄다. 결국 남편을 두고 아이들과 밥을 먹으려고 상을 차렸다. 첫째가 와서 하는 말. 엄마, 흰 밥은 없어? 난 흰 밥이 좋은데.


딩- 내 인내심의 선이 끊어졌다. 이럴 거면 그냥 인스턴트 사 먹어. 왜 나는 사서 고생인 건가. 나는 어렸을 때 상대가 속상할까 봐 싫어도 말 안 하고 먹었는데. 김 씨 집안은 다른 건가. 식의(食醫). 식의 , 식의, 엄마가 식의가 되라고. 엄마는 가정의 음식으로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라고. 나는 내가 식의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식모였다. 그냥 밥 차려주는 식모. 대체 어디부터 뜯어고쳐야 할까.


첫째는 내 눈치를 보며 밥을 두 그릇 먹었다. 맛있다며 몇 번의 아부를 했다. 소리 없이 잘 먹은 둘째. 말을 못 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남편은 나중에 라면을 끓여먹었다. 내가 가장 맛있게 먹었다. 두드러기는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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