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과 마음을 다해 첫째를 키웠다. 아이와 매일 걷고 안고 또 걷고. 감각 적응 하나하나 다. 아이가 거부하는 것들 일일이 놀이로 극복하기. 매일 관찰일기. 그리고 육아 공부. 막히는 부분 있으면 연구 또 연구.
이런 노력 끝에 까다로웠던 첫째는 두 돌에 처음으로 엄마와 손을 잡았다. 옷 갈아입을 때 짜증을 내지 않게 되었다. 27개월에 처음으로 다른 가족들에게 다가갔다. 석돌에 엄마와 자진해서 뽀뽀를 했다. 드디어 이불을 덮고 잤다. 점점 발전해 아이는 40개월부터 기관에 다니게 되었다. 갓난이 둘째 안고 반 엄마 모임 열심히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했지만 결국 적응하고 원을 즐기게 되었다.
어느 날 헬렌을 픽업 갔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학예회 춤 노래 연습하는데 우리 첫째 목소리가 가장 크고 열심히 한다고. 부담임 선생님까지 칭찬해주신다. 원어민 선생님도 첫째가 열심히 영어 발표하니까 격한 칭찬을 해주셨다고. 이런 말을 듣고 안 기뻐할 부모가 누가 있을까. 아 그래요? 하하하하 울 헬렌이 그랬어? 기특하네~ 감사합니다. 다 선생님이 챙겨주신 덕분이에요.라고 말하며 아이를 데리고 왔다.
첫째에게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하게 됐어? 물으니
헬렌: 크게 노래하면 엄마가 들을 거라고 했어~
헬렌: 그리고 엄마가 보내주는 곳이잖아.
나: ♡♡♡♡♡
이뿐 아니다. 교회에서도 아이가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었다. 가장 적응이 힘든 교회였다. 한 번 옮기기도 했다. 아기학교를 통해 놀이로 접근하자 조금 관심이 생겼다. 옮긴 곳에서는 6살까지 엄마와 같이 있어도 되었다. 다른 모든 아이들은 진즉 엄마랑 떨어져 앞에 가서 앉아있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6살 되기 직전까지 꽉 채워 엄마 옆에 꼭 붙어있었다. 그리고 예배 시간에는 혼자 뒤로 가서 쉬어야 했다. 유치부에 올라갔다. 유치부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정말 열심히 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우리 첫째란다. 너무 열심히 찬송 율동 발표해서 아이들이 모두 긍정적 영향을 받는단다. 첫째처럼 엄마 옆에만 붙어 떨어지지 않는 우리 둘째를 보는 눈들이 너그러워졌다. 내 양육에 믿음을 가져주셨다.
기관에서도. 교회에서도. 오래 다니던 숲체험이나 놀이터에서도 그랬다. 어리둥절하고 쑥스럽고 몸 둘 바를 몰랐다. 적응이란 걸 해야 했다. 아이에게 너무 맞춰주는 엄마. 혼자만 단독 행동하는 엄마. 유별난 아이와 유별난 엄마.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다들 내 아이와 나를 좋게 봐주셨다. 우리 아이가 너무 잘한단다. 긍정적 영향을 끼친단다. 연락처를 받아간다. 심지어 누군가는 어떻게 키우셨냐 묻는다. 나는 그대로인데.
나는 그저 아이를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내 사랑을 표현했고요. 혹시나 내 사랑이 올바른지 항상 관찰했습니다. 또한 나 자신을 믿었습니다.
한참 자뻑에 빠져있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냥 마냥 기뻐해도 되나. 나 그동안 노력 많이 했으니까. 아니면 그냥 무덤덤하게, 아 이것도 다 타고난 거고 운이다. 네 팔자다 하고 받아들여야 하나?
아이의 발전이 기질의 영역일까, 아니면 노력으로 형성된 성격의 영역일까. 나 그냥 순수하게, 내가 잘해서 이렇게 자랐소 라고 기뻐해도 될까? 내가 노력한 것은 맞다. 엄청난 에너지를 쏟은 것도 맞다. 그런데 노력만큼의 결과가 온 것은 합당한 걸까 아니면 운인 걸까?
사실 그럴 것이, 기질에 대해 알면 알고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허무감이 커지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타고나는 거구나. 그렇구나. 내가 그동안 힘든 과거를 극복하고 이루고 노력한 모든 것 다. 그냥 내가 그런 자질을 타고 태어나서. 혹은 그런 힘든 환경 자체가 나한테 독이기도 했지만 다 양분이 되어서. 그래서 아이도 이렇게 열심히 키운 걸까. 그렇담 내 노력도 타고난 건가? 노력을 열심히 하는 기질도 타고난 거라면 노력을 안 하면 어찌 되나? 허무했다.
그렇담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누고 베풀며 살자. 이런 생각도 들었다가,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가.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생각이 정리되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일한 만큼의 보상'을 얻는 것은 일반적이다. 합리적이며 정당하다. 많이 일하고 아낀 자는 많은 열매를 저장하게 된다. 또한 뇌가소성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기질도 중요하지만 정말 순수하게 내 노력에 의해 발달된 영역인지도 모른다.
법에도 최저임금이 있듯이, 내가 노력하고 희생한 것에 대한 열매는 받고 누려야 합당하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하지만 그 노력 이상의 열매는 운이고 타고나는 것(재능)이다. 어디까지가 내 노력과 헌신에 대한 몫이며, 어디서부터가 운과 재능이었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터.
만약 해도 해도 안된다면? 빨리 방법을 바꾸거나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하면 할수록 잘 되는 건? 그럼 그건 하늘이 도우시는 길이니 그쪽으로 가면 된다~
남편은 젊을 때 나이트에서 댄스 경연대회를 휩쓸고, 오렌지족으로 이름이 신문에 났으며, 전교생 앞에서 교단에 올라가 마이크 잡고 쇼했단다. 공부 쪽인 나는 상 받으러 교단에 올라가고, 각종 임원으로 활동하고, 잡지에 이름이 나고 등등. 이 유전자를 어찌 막으리. 하지만,
자존감이 높은 등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기질이 좋은 쪽을 향하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사회 적응. 내 아이를 위한 헌신과 노력의 몫은 받는다- 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 나와 남편이 누리지 못한 끈끈한 애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