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맨 육아남 만들기

육아 전쟁만큼 힘들었던 남편과의 전쟁

by 엄지언

오늘은 빼놓을 수없는 우리 남편 이야기를 해보겠다. 내가 글을 썼다는 걸 알면 극구 거부할 것이므로, 살금살금 조심조심(?) 이야기해보겠다. 내 본심은 이만큼 튀어나와 있어도 수위 조절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암.

우리 남편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태어나보니 이름 있는 집안이었다. 부족함 없는 환경이었다. 아니 오히려, 과하다면 과했다. 어머님은 어렵게 남편을 가지고 낳으셨다. 귀하게 애지중지 키우셨다. 옷과 장난감이 마를 날이 없었다. 집에는 상시 아이를 봐주고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 남편은 엄마보다는 일하는 사람과 함께한 기억이 많다. 어머님은 물건으로 남편의 곁을 채워주셨다. 거기다 기질적으로 까다로웠던 남편. 이런저런 이유로 엄마와 애착 형성이 잘 되지 않았다. 지금도 만나면 항상 언성이 높아지고 싸운다. 남편을 어머님을 좋아하지만, 어머님도 아들을 위하지만, 둘의 방법은 잘 닿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모성'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싸우면 항상 나의 엄마 역할을 비난하는 말을 퍼부었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엄마였다. 자타공인이었다. 하나 오로지 남편만 나를 믿지 않았다. "네가 엄마로서 제대로 하는 게 뭐가 있어?" 이런 식. 억울했지만 남편의 화살이 실은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진즉 알았다. 그건 어머님을 향한 내면 아이의 울부짖음이었다.

남편은 자기가 받은 사랑대로 아이들에게 베풀려고 했다. 물건을 상시 사주고 싶어 했다. 나는 완전히 반대파였다. 아이들이 마구 뒹굴고 놀아야 하므로 좋은 옷은 아직 필요 없음. 완성된 장난감보단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물건들. 그 돈을 아껴 차라리 아이들 주식 계좌에 인덱스 펀드 하나 사주고 싶었다. 중고책 한 질이라도 더 사서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에게 품을 내어주는 것.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자주 다퉜다.

남편은 왕년에 한 따까리 하던 사람이었다. 소위 말하는 날라리였다. 놀만큼 놀았고, 알만큼 알았다. 화를 잘 내기도 했다. 한번 화나면 정말 무서웠다. 한참 힘들 때 왜 이런 남자와 결혼했을까 생각했다. 내가 어려울 때 그 기세로 외부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었으니까. 그런데 그 에너지를 나에게 퍼부을 줄이야.

남편은 원래 결혼을 안 하려 했다. 아이도 낳지 않겠다고 부모님께 선전포고 했었다. 그러다 37세에 나를 만나 결혼했다. 자기 인생이 중요했을 것이다. 아이로 삶이 흐트러지는 건 생각조차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어렵게 임신이 되었다. 너무 힘들게 육아했다. 얼마 전 남편에게 물었다. 아이 키우는 것만큼 삶에 힘든 적 있었어? 아니. 이렇게까지 힘든 적은 없었지.

창창하게만 살던 사람이 바닥 오브 바닥을 겪으며. 어떤 심리상태였을까. 남편은 정말 힘들어했다. 더 까칠해졌다. 강박증까지 생겼다. 나를 원수 대하듯이 대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렵게 가진 아이라 본인도 귀하다고 느낀 거. 마흔이 넘는 나이에 가진 아이들이라 주변에서도 귀하게 봐준 거.

사실 난 5년을 정서적 가장 역할을 했다. 아이들이 나에게 기대 버텨 자랐다. 남편도 실은 나에게 많이 의존했다. 이런 과정에서 내가 남편을 이해하려 했던 것들. 기도했던 것들.

먼저 남편의 화가 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밑바닥에는 어머님과의 관계가 있었다. 결혼할 때 부모님께 대하는 거 보고 결정하라고. 그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니구나 나중에 깨달았다.

부족한 부분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진짜 사랑은 부족한 점도 사랑하는 거라고. 내가 아이들에게 그리하듯이 남편에게도 그리 하게 도와달라고. 정말 나를 미치게 만들어도 그래도 또 용서하려 노력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남편의 행동에 대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거실을 하루 종일 치워 힘들다면, 오후 5시 이전에는 치우지 않기로 약속하는 거다. 티비를 보고 싶어 불만이 쌓였다면, 남편의 방을 만들어 그 안에서 실컷 보게 해주는 거다. 영역과 시간의 한계를 정해 나를 보호했다. 한계 설정은 아이에게뿐 아닌 남편에게도 필요했다.

그래도 또 싸울 일이 생긴다. 그러면 무조건 아이들 앞에서 화해한다. 한번 싸운 건, 꼭 끝맺음을 해서 아이들을 불안하지 않게 한다. 무엇보다 최대한 아이들 앞에서 싸우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안 싸우려고 씨씨티비를 설치하기도 했다.


육아 전쟁... 버금가는 남편과의 전쟁이었다. 까다로운 아이들 키우는 것만큼 남편과 결혼생활 힘들었다. 다 말하지 못할 만큼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아픔도 있고, 성장한 부분도 있다. 결과는, 그래도 이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이다. 일단 아이들이 잘 자라며 남편이 내 모성과 육아법을 신뢰하기 시작한 것이다. 젠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교류한다. 그리고 화를 폭발시키던 사람이 많이 달라졌다. 잘 참고 버틴다. 또한 나와 약속한 대안들을 지킨다. 자기 방에서 티비를 보고, 시간을 정해 청소를 한다. 마지막으로는 혹시 싸우더라도 화해하는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나만 성장한 줄 알았는데, 남편도 성장한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도 또 힘든 일이 생긴다. 또 부딪히는 일이 생긴다. 많은 부부가 그럴 것이다. 사실 연구결과 70프로의 부부가 겨우겨우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다르게 자란 사람과의 매일은 수행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도 또 살아진다. 아이들 웃음 보며. 같이 밥 먹으며. 아이들 재우고 대화하며. 아이들 독립하면 남편과 나 둘이 남겠지? 그때 이야기하길. 그래도 그렇게 버티고 같이 살길 잘했다고.


기도합니다


신이시여, 남편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도록 제게 바다 같은 마음을 허락해 주세요. 아이를 사랑하듯 남편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남편이 내 모성을 비난하고. 내 어려움을 돕지 않더라도. 아이들 앞에서 화내고 싸우지 않도록 제게 높은 이성을 허락해 주세요. 부족하고 서툴더라도 아이들 사랑하는 마음 남편에게 내려주시고. 제가 겪은 아이들과의 끈끈한 애착, 남편도 누릴 수 있도록 평생의 선물을 허락해주세요. 내가 변하는 만큼 남편도 성장하게 해 주시고. 삶의 동반자로서 아이들의 부모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위해주길. 미워도 밥 먼저 떠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제게 허락해주세요.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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