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좇는 아이

몰입 혹은 집착. 뭐가 되었든 세상과의 연결고리

by 엄지언
경이롭다


오색 풍선을 자기 몸에서 뻗어나가듯 그리는 헬렌. 고양이 도장도 찍는 중. 한참 혼자 놀아 그런가 엄청 경이롭게 느껴짐. 가끔 헬렌이 이렇게 확실한 자기의 작품세계를 보 때 수많은 생각이 든다.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다. 고양이랑 풍선만 그리니까. 그런데 그 걱정을 언젠가부터 내려놓았다. 경이롭게 볼 것인가 문제로 볼 것인가. 엄마가 믿어주지 않으면 이 험난한 세상 누가 울 헬렌을 믿어주나. 내가 믿는 대로 헬렌이 그렇게 자랄 거라고 생각하련다.


헬렌같이 하나에 꽂혀있고 자기 세계가 확실한 아이들의 부모를 위한 조언:


이런 아이가 부모와 긴밀해지는 방법은 아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부모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느끼면 된다.
자기 세계에만 틀어박혀 있다면, 부모가 아이의 능력에 의지해 그 능력으로 부모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다는 걸 믿게 하라. 자기 세계를 나누는 것이 가치 있다고 느끼게 하라.
하나에만 빠져있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해 관심사를 발전시켜라. 관련 외국 서적을 연구하려면 외국어도 필요하고 관련 역사도 알아나갈 수 있다. 아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함께 중요하게 느끼는 것이 출발점이다.

출처: <영재 공부> by 제임스 웨브. 매일경제신문사
#엄마가항상곁에있을게



솔직히 지금에야 웃으며 이 일기들을 공개한다. 하지만 이때 발달까페 드나들며 엄청 검색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 많은 사례 찾아 읽고 아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마음이 오락가락. 힘들었다. 그러던 중 아이의 이 그림을 보았다. 그래, 내가 널 안 믿으면 누가 널 믿겠니? 결심하여 무려 18개월을 같이 고양이와 풍선에 풍~덩 빠져들었다.



깊어가는 코코 사랑

집밖으로 나와 열발자국 걷다가 집에있는 코코가 생각나는지 "집에 코코 눈띵글 코코"라며 글썽이는 헬렌.


헬렌이 원래도 하나에 콱! 꽂혀서 뽕을 뽑는 스타일었다. 그런데 뽕을 뽑다 못해 아예 고착이 되어버린 대상이 있었니 그것은 바로 코코(고양이).


원래도 좋아하지만 컨디션 안 좋을 때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코코를 찾는다. 옆에 있는 내가 고양이가 될 지경.


사실 장점도 있었다. 고양이가 나오는 내용은 가리지 않고 다 좋아했기 때문. 언어 불문 책을 엄청 열심히 보게 되었다. 고양이로 유인해서 하기 싫어하는 것들을 쉽게 했다. 고양이 보러 가는걸 빌미로 산책. 고양이로 사회에 접근하도록 다양하게 유도했다. 이보다 더 좋은 육아 파트너가 어디 있단 말인가.


템플 그랜딘 박사는 이런 고착 대상이 있을 경우 못하게 하는 것은 실수란다. 오히려 다른 것으로 확장하는 동기 부여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또한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와 지구력이 매우 높은 것은 영재의 특성이다.


별난 아이 혹은 영재성 이중에 고르라면. 부모는 아이를 믿어주는 쪽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는 매일 고양이가 나오는 책을 읽어주었다.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고양이를 보러 가자며 산책을 나갔다. 고양이 사랑이 부디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도 이어지기를. 그리고 내가 지혜롭게 이끌기를 기도했다.



딸에게 쓰는 편지. 몰입과 밸런스


그런데 헬렌, 이렇게 고양이와 더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 앞으로 배워야 할게 몇 가지 있단다.


무엇보다 건강을 지켜야 한다. 네가 건강하지 않으면 고양이랑도 재밌게 놀 수 없잖니? 그러기 위해서는 고양이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다가도,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한다. 아무리 재밌어도 적당히 잠을 자야 한다.


엄마도 고양이를 사랑한단다. 하지만 가족이 먼저고 사람이 먼저다. 그런 다음에 고양이를 챙기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도 헬렌을 더 이해하고 고양이를 좋아하고 챙겨준단다.


엄마는 어렸을 때 하루 종일 말만 그렸다. 아빠도 공룡 책만 미친 듯이 봤다고 한다. 헬렌 넌 그런 엄마 아빠를 쏙 닮았다. 그래서 그 몰입이 너무 즐겁고 삶의 원동력인 것을 안다. 그런데 그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려면 삶의 밸런스가 어느 정도 유지되어야 한다. 엄마랑 아빠는 그걸 다 커서 혹은 소중한 것을 잃고서야 깨달았다.


요즘 사람을 만나도 코코 이야기 먼저 하는 네게, 그리고 아빠가 와도 고양이 그림만 그리는 네게, 오늘 엄마는 인사를 꼭 먼저 해야 한다고 가르쳤지. 고양이도 중요하지만 가족과 사람이 먼저. 인사를 먼저 하고 코코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울다가, 이내 수긍하고 뒤늦겠지만 인사하는 너.


앞으로 커서 무엇에 몰입하고 좋아하게 되더라도 이 말을 잊지 말렴. 엄마도 부디 울 헬렌의 기질을 꺾지 않고 잘 이끌 지혜를 갖기를 :)



첫 헬렌이 좋아하는 여자아이 "Mary"


사람 인형 거부하고 고양이만 좋아하던 헬렌. 그동안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생겼다. 이름은 Mary.


마더구스 Mary Mary Quite Contrary 책에 나오는 여자아이 메리. 고양이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에 물을 준다. 어떤 여자아이 캐릭터에도 반응하지 않던 헬렌의 빗장을 열어주었다.


꽃 고양이와 같이 있는 메리가 자기 자신과 닮아서일까? 아니면 그런 대상을 만나고 싶은 걸까? 헬렌은 요즘 메리를 매일 그려달라 한다. 매일 메리 노래를 부른다.


예전 크리스마스 때 사줬던, 거부하던 인형을 메리라고 알려주었다. 메리라며 고양이 인형과 같이 안고 잔다. 역할놀이도 시작했다. 진짜 얼마나 혼자 맘고생했는지. 이제야 조금 마음이 놓인다.


요즘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 헬렌은 또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적으로 자기와 맞는 상대와는 잘 논다. 육감 같은 게 있나 보다. 그런 또래나 언니는 굉장히 드물다. 아주 가끔 그런 상대가 있다.


그냥 거부하는 게 아니었다. 맞는 걸 찾아내면 되는 거였다. 여기서 힌트를 얻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여기저기 많이 다녀봐야 할 것 같다. 나중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꼭 같이 가보고 골라야겠다.




아기 인형을 갖고 놀다

ㅠㅠㅠㅠㅠㅜㅜㅜ 감동에 눈물 퐁퐁


헬렌 어렸을 땐 다른 평범한 여자아이들처럼 아기 인형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18개월부터 돌변했다. 그냥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덮어버리고 뒤집어버리고 울고. 거의 공포에 가까운 행동을 하던 헬렌.


그때부터 감각 과민이 심해졌다. 외출 포함 모든 것을 거부했다. 정상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자폐의 시작이 되는 붕괴성 장애 이런 것도 걱정했다. 만약 그런 영향이 있는 거라면 6개월 내에 감각 적응에 신경 써야 한대서 정말 노력 많이 했다. 센터에서 검사도 받았다. 괜찮다곤 했지만 마음을 놓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키즈카페에서 '처음 보는' 아기 인형을 갑자기 만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서고 앉는 시늉도 해보고 팔도 움직여본다. 정말 너무 놀라서 숨이 멎을 뻔했다. 혹시나 내가 흐름을 깨서 안 하게 될까 봐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신기했던 건 헬렌이 재밌게 가지고 놀면서도 중얼중얼 되뇌듯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헬렌은 코코(고양이 인형)만 좋아." 그래서 내가 "그렇지. 코코만 좋아하지. 그런데 다른 것도 재미있어?"라고 물으니 "응."이라고 대답한다.


헬렌의 이성은 코코만 좋아하고 싶은데. 이젠 세상에 관심 갖고 싶은 본능이 자꾸 올라왔나 보다. 마음속에 갈등이 일어나 보다. 예전 무엇이 울 헬렌의 마음을 그리도 굳게 닫았던 건지. 그냥 성장 과정이었을까? 엄마는 너무 궁금하고 알고 싶다.


헬렌은 알을 깨고 나려나보다. 길고 길었던 터널 이렇게 지나는가.





지난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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