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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Jun 30. 2020

예민 까칠맘 사절? 예민 사랑맘 환영!

다른 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을 만드느냐 시민을 만드느냐를 선택 해야만 한다. 동시에 두 부류의 사람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루소 에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했다. 도저히 신을 신발이 없어 주문했다. 나름 내 취향껏 고른 리본 슬리퍼. 큼지막한 리본. 뽀송한 분홍색. 비싸고 좋은 건 아니지만, 내 예전 취향을 그대로 다시 살릴 수 있는. 신발을 신자 마치 내가 20대로 돌아간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즐거워서 신고 방 안을 왔다 갔다. 바로 밖에도 신고 나갔다. 내 눈에 내 발만 보였다. 딱 내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어라, 왼쪽 슬리퍼의 리본이 삐뚤어져있었다. 너무 신나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걸까. 삐뚤어진 리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두 개의 리본이 겹쳐져 있다. 아래 리본은 붙이고 위의 리본은 떼어져야 모양이 이쁘다. 다른 쪽은 그렇게 되어있다. 그런데 왼쪽은 위쪽 리본과 아래쪽 리본이 둘 다 붙어있었다. 그래서 모양이 찌그러져있었구나.


에잇. 이게 뭐람. 한껏 들떠있었는데. 거기다 이미 밖에 신고 나왔지 않은가. 교환이나 반품을 할까 싶어 바닥을 살펴보았다. 이미 신발 바닥은 살짝 닳았다. 흙이 묻어 까매져있었다. 그래도 상품이 하자니 내가 원하면 신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윗 리본을 살짝 떼어내 보면 어떨까. 어차피 뒤에 붙은 실리콘은 보이지 않을 테니까. 내 눈에만 커다란 결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신었는데... 보내는 게 옳은 걸까.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에이 뭐 대수롭지 않게 그냥 신자. 어차피 한철 신고 버릴 건데. 아니야 나에게 감히 삐뚤어진 리본이! 용납할 수 없어. 그들에게도 알려야 해. 두 생각이 싸웠다. 거기서 또 나를 붙잡는 것. 혹시 내가 너무 예민한 것 아닐까. 심지어 코로나 생각까지. 다들 힘든데... 이런 건 그냥 넘어가자;; 이놈의 예민함. 이놈의 이타주의. 정말 피곤하다 피곤해.


나는 전 세계 인구의 15프로에 해당하는 예민한 기질의 사람이다. 그리고 거기서 내향과 외향을 둘 다 가진 5프로에 해당한다. 생각이 많은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다. mbti검사에서는 인구의 1프로에 해당하는 이타주의자 선의의 옹호자 라 한다. 나는 항상 소수에 속했다. 나는 달랐다.


어릴 때는 나와 남이 어떻게 물질적으로 구분되어 있는지를 고민했다. 이 세상이 가상은 아닐까 상상했다. 지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를 생각하느라 잠을 설기도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나에게 즐겁기도 어렵기도 했다. 나는 주머닛속 송곳 같았다. 달랐다. 그리고 튀었다. 항상 먼저 혼이 났다. 혹은 항상 먼저 얻기도 했다. 모 아니면 빽도. 그런 내가 나는 버거웠다. 외로웠다.


엄마는 어릴 때 항상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착하지. 그래 그렇게 해야 착하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착해지라는 말. 나는 착하게 살았다. 다른 내가 싫었던 나는 언젠가부터 나를 가렸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맞추었다. 사람들의 속도에, 사람들의 관심사에, 사람들의 인정에. 썩 훌륭했다. 사람들은 나를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더욱 외로워져 갔다. 풍요 속 빈곤. 나조차 외면한 나는 누구에게도 진실로 사랑받지 못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나를 닮은 우리 아이들. 나에게 주어진 큰 숙제. 아이를 온전히 사랑하려면 나에게도 그리해야 했다. 나는 뼛속부터 나를 다시 바꾸어나갔다. 사람들의 인정을 놓았다. 함께 아닌 혼자이길 추구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 보았다. 내가 너무 하고 싶었던 것. 하지만 두려웠던 것. 내가 두려웠던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이었을까. 나는 사랑받고 싶었던 걸까? 혼자가 되는 게 두려웠던 걸까?


해방감이 느껴졌다. 나를 있는 힘껏 뻗어내고 힘도 자유자로 써 보았다. 멀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가까워지는 사람도 있었다. 새롭게 가까워지는 사람들은 대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숨겨져 있던 그들. 그들도 자신을 숨기고 살고 있구나.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내 의지를 누르고 사람들에게 맞추어 사는 사람을 루소는 시민(사회인)이라 부른다. 그렇지 않고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을 인간(자연인)이라 부른다. 루소의 에밀에 따르면, 나는 예전 '시민'의 삶을 살았다.


사회인은 분모에 의하여 가치가 결정되는 분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회제도라는 것은 인간을 부자연스럽고 의존적인 개체로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과거 로마의 시민들은 가이우스(칼리쿨라 황제)도 루키우스(네로 황제)도 아닌 한 낱 로마인일 뿐이었다. 그들은 오직 조국만을 사랑하고 자신은 돌보지 않았다.
-루소 에밀


*루소시민이며 또한 동시에 인간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고 말한다. 시민은 N분의 1. 인간은 N의 삶을 살아간다.인간과 시민 동시에 두 부류의 사람을 만들 수는 없기에 양자택일하라 말한다. 은 자신을 위한 교육과 타인을 위한 교으로 나뉜다. 요즘의 자기 주도 학습, 메타인지 등은 이러한 루소의 자연교육(자신을 위한 교육) 사상을 담고 있다.




나도 이제 정한  살기 시작했다. 만족스러운 나날이 지속되던 중. 나이면서도 사람들과 함께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나를 찾으니 비로소 타인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과 함께하려면. 예를 들어 지금 같은 코로나 시기 N분의 1로서 대의를 따라가고 싶다면. 독립적인 존재이지만 가끔은 소속감을 느끼고 싶다면. 어떤 방법이 없을까.


막연하게 고민하던 중 인문학 전문가 종원 작가님의 블로그 글을 읽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베스트셀러와 그냥 글의 차이는 무엇인지 아냐고. 전자에는 '사랑'이 있다고 하셨다.


...! 사랑. 사랑...!!


그래, 나는 오래도록 타인에게 맞추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내가 되기로 결심했다. 타인에게 맞추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법. 있다면 그건 사랑이었다. 사랑하면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배려하게 된다. 사랑하면 나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모두를 보듬게 된다. 사랑하면 되었다. 나를 사랑하듯이 타인을 사랑하면. 개별적인 존재를 유지하며 함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루소의 에밀에 한 문장을 추가하는 영광이 주어진다면 이렇게 적겠다.


인간시민 둘 다는 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면서 시민의 장점을 얻는 방법은 있다. 그것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 교육을 중시하며 또한 사람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신발을 반품하지 않기로 했다. 이게 무슨 사랑이겠냐마는. 반품함으로 이 신발은 버려질 것이다. 이 신발을 만든 사람의 노고. 배송하는 사람의 노고. 다들 힘든데 열심히 일하고 있다. 리본 잘못 붙은 걸 떼어내도 괜찮을 것이다. 대신 나의 불편했음을 정중히 알리겠다. 반품은 안 하고 그냥 신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이지 않게 고객센터에 알릴 것이다. 나는 그 쇼핑몰을 사랑하니까.


간단한 일 참 복잡하게 사는 나. 그래서 싫었던 나 자신. 예민 까칠 맘 사절이라는 문구를 보면 혼자 쭈구리되던 예민 소심 맘. 알고 보면 참 따뜻한 나. 그래서 이제는 진짜 나로서  사람들과 함께할 나. 가장 큰 두려움이었던 혼자되는 것.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사랑하지 못하는 것. 나를. 그리고 타인을.


이제는 사랑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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