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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Jun 28. 2020

더럽게 운 없던 여자의 이야기

새똥을 맞았다

아이들과 놀이터에 놀러 나갔다. 같이 놀아주다 벤치에 잠시 앉았다. 그런데 잠시 순식간에, 뚝. 내 옷에 뭐가 묻었다. 으악. 이게 뭐야. 새똥 아니야?


새똥을 맞았다. 챠르르한 롱스커트에 묻은 조그맣고 까만 덩어리. 그 주변 하얀 액체. 으아악. 진짜 새똥이구나. 냉큼 화장실로 달려가 새똥을 씻어냈다. 그냥 물로는 없어지지 않았다. 비누를 묻혀 빡빡 문지르니 겨우 사라졌다. 어쩔 수 없이 손으로 만졌다. 음 새똥을 만진 건, 새똥을 맞은 기분의 완성 같은 느낌이랄까. 마른하늘에 똥벼락. 딱 그랬다.


쓸데없는 궁금증이 발동한 나. 새똥을 맞을 확률을 찾아보았다. 신기한 건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단 사실이었다. "새똥 맞았는데 로또 사야 할까요?" "새똥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되나요?" 아니, 새똥을 맞으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단 말이야? 뭔가 김새는군. 그런데 사실 나는 '로또'를 맞을 확률이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재수가 없으면' 새똥을 맞을까 궁금한 것이었다.


새똥맞을 확률. 로또 1~2등 수준이라나. 출처: GoodLuck2Me2 블로그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사람이었다. 물론 여태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살아 으니 그것만으로 재수가 좋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항상 확률게임에서 지곤 했다.


자궁외 임신은 1000명당 17.3명 꼴이란다. 약 1.7프로의 확률이다. 나는 첫 임신 때 자궁외 임신 판정을 받았다. 습관성 유산은 전체 임신의 1프로 미만이다. 3회 연속 유산될 확률은 0.34프로에 해당한다. 그런데 나는 6번 유산을 했다.


아이를 낳고 너무 힘들어 알고 보니 우리 아이는 예민한 기질의 아이였다. 예민한 기질의 사람 인구는 약 15프로다. 그중에서도 까다로운 기질은 5프로에 해당한다. 아이 둘 다 까다로운 기질일 경우는 더욱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이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남편도 같은 기질이다. 예민한 여자와 예민한 남자가 만나 예민한 아이 둘을 낳고 살 확률은 어떻게 될까. 참고로 우리 집안도 남편 집안도 대대손손 예민한 기질이다.


임신, 출산, 육아 외 나의 삶은 어땠을까. 나는 정말 부모 운이 없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3번 이상씩 결혼하고 이혼하셨다. 부모님과 떨어져 조부모님과 자란 나. 가난 학대 등 최악의 환경이었다. 독립해 새로운 환경을 구축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꼬였다. 의료사고로 두번째 수술에 죽다 살아난 적도 있다. 진짜 더럽게 운이 없는 사람. 그게 나였다.


그냥 삶이란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남편은 부모 복이 많다. 뭘 해도 잘 풀린다. 인맥도 넓고 인복도 많다. 어떤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해도 미꾸라지처럼 도망갈 구멍이 생긴다. 오히려 그래서 힘든 일을 못하고 가끔 철도 없다. 그래도 그냥 잘 살아간다. 사실 제일 운이 좋은 부분은 바로 나를 만난 거다. 운만 없지 다른 건 다 갖춘 사람을 만났으니까. 가만 생각해보니 나 남편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족함을 상쇄해줄 사람이니 말이다.


나는 참 착실하게 살았다. 열심이었다. 항상 노력하는 삶이었다. 얼마 전 TCI 심리 검사를 했다. 기질을 긍정적으로 끌어주는 자율성 연대감 자기 초월 등 후천적 성격 점수들이 다 만점에 가깝게 나왔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쉽게 얻어지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노력들이 나를 완성해냈다. 삶을 보는 눈이 깊어졌다. 어린 나이부터 세상 볼 줄 알았다. 사람 보는 눈도 생겼다.  가끔이지만 일이 잘 될 때도 있었다. 나는 몇 분야에서 탑을 찍었다. 아주 바닥을 경험하거나, 아주 하늘을 날거나, 두 가지 중 하나의 삶을 살게 될 거라 생각했다.


이서 작가의 개명 전 저서인 <오래된 비밀>을 읽었다. 행운을 부르는 방법이 있단다. 그 방법들을 읽어보니 걸, 나는 이미 행운을 부르는 삶을 살고 있었다. 현재에 충실했으며, 매일 감사했으며, 남들과 비교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놀랐다. 아 나는 그나마 이렇게 해서 이 정도였구나 하하. 운을 부르는 여신이 말하는 방법을 다 동원해 살았는데도 이렇게 힘들었다면, 내가 가진 원래 운이란 어느 정도였을까. 운 전문가 이서연은 어떤 나쁘고 좋은 운도 30년을 넘게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30년은 채웠으니 이제 내 나쁜 운의 흐름이 바뀔 때라는 거지. 사실 얼마 전부터 그걸 느끼고 있었다.


최근 몇 년 정말 이렇게까지 힘들 수가 없었다. 내 힘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득, 이제부터 내 운이 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인지 내 운을 트여줄 좋은 책과 귀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사주에서도 말년에 잘될 팔자라고 했다. 나는 말년에 잘되니 좋다는 줄만 알았는데, 그 말인즉슨 말년 전에는 고생문이 훤하다는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는 행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오늘도 나는 운이 정말 좋았다 라고 마무리짓는. 가끔은 억지로 껴맞출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느낀다. 내 새로운 인생이 움트고 있음을. 그런 삶에 걸맞은 내가 이미 완성되어 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해낼 수 있음을. 내가 할 일은 하나다. 믿고, 모든 걸 맡기기. 그리고 우뚝 서기다. 새똥은 역시, 로또의 증조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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