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 사람들은 항상 나를 바라봐준다 + 특히 내가 형편없이 있을 때도 누군가는 나를 판단 없이 바라봐준다 -<초등 자존감의 힘> by김선호
요즘은 강아지의 자존감도 존중받는 시대다. “반려견의 자존감을 키우면서 훈련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강형욱 훈련사가 그 선두 주자다. 강아지를 사랑하고 관심을 주는 것이 자존감에 가장 좋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야 스트레스가 줄어 문제행동 없이 똑똑하고 건강하게 잘 자란다나. 아동 심리 상담가들도 상담 온 엄마들에게 강형욱 훈련사가 강아지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라고 추천한다고 한다. 우리 집 반려견 깨비를 보다가 불현듯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토록 개에게도 자존감이 중요한데, 나는 어떤가. 자존감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문득 그날 밤이 떠오른다.
밤늦게 들어온 아빠는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하지만 눈빛이 살아있었다.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아빠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너를 낳은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였다.” 아. 취중진담이란 이런 거구나. 건조한 감정으로 나는 생각했다.
사실 놀랄 것도 없었다. 그동안의 삶에서 내가 부모님께 어떤 존재로 여겨졌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다만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을 확실한 말로 들은 것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나는 혼전임신 아기였다.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던 것 같다. 나를 원인으로 결혼한 엄마 아빠는 자주 싸웠다. 나는 남자가 여자들을 때리는 그림을 몰래 자주 그렸다. 나는 예민한 아이였다. 낯가림이 심했고 많이 울었다. 매일 밤 엄마 발을 동아줄처럼 붙잡고 냄새를 맡으며 잤다. 차를 타도 파를 먹어도 늘 나는 토했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살게 된 친할머니네 집에서 난 매일같이 두드려 맞았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나는 정서적 신체적 학대로 인한 부작용을 겪었다. 하지만 저 말은 이런 수많은 일들보다도 내게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나는 실수인 걸까? 나의 존재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된 걸까? 내가 없었다면 모두들 괜찮았던 걸까? 나는 그럼 왜 태어난 건가? 왜 나 같은 존재를 만든 건가? 신이 있다면 대답 좀 해보세요.
모든 아이는 사랑스럽다. 생떼를 부릴 땐 언제 그랬냐는 듯 밉기도 하다. 허나 그런 사랑과 미움이라는 감정 조차 들어올 여지가 없다면. 나는 내 아이를 키우며 자식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절절이 느꼈다. 내 목숨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다. 이렇게 소중한데 왜 부모님은 나를 그렇게 대했을까. 알면 알수록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낙인 효과’라는 것이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낙인이 찍힌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낙인은 나를 그런 존재로 살도록 만든다. 마치 풀리지 않는 마법에 걸린 것과도 같다. 나쁜 낙인은 나를 평가절하한다. “너는 정말 못된 아이구나.”라고 말하면 진짜 못된 아이가 된다. 부정하면 할수록 낙인의 주문에 빠져든다.
나는 아빠에게 낙인이 찍힌 셈이다. '가장 큰 실수'... 내 자존감은 거기에 갇혔다.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많은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 마음은 가난해져 갔다. 그 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영향을 받아 반응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증명하려 애쓰고 만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강하게 부정하는 것은 이렇게 역효과를 낸다.
그렇다면 낙인의 저주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공부한 것은 이렇다. 낙인이 찍힌 상황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나의 감정을 보듬어야 한다. 나는 왜 그런 낙인의 존재가 아닌지 스스로에게 작은 것들로부터 구체적으로 증명한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 사람이 틀렸구나 라는 마무리까지 필요하다.
낙인으로부터 풀려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진정한 자유가 느껴진다. 뭘 해도 산뜻한 기분이 든다. 이토록 무거운 것이었다니. 이제 나는 어떤 것이던 낙인과 낙인을 찍는 사람을 거부한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련다. “너는 정말 소중한 존재야.” 부모님께 가장 듣고 싶었던 말. 나라도 하면 되지 뭐.
[scene] 눈을 감는다. 깊이 깊이 생각 속으로 들어간다. 수많은 모양과 색깔의 생각들을 지나 저 아래 어린 내가 보인다. 아빠의 말을 듣고 덤덤한 듯 충격에 빠져있는 나. 방안에 혼자 웅크리고 있는 나에게 지금의 내가 다가간다.
지금의 나: 넌 정말 소중한 존재야.
어린 나: 내가? 난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그럴 리가. 너처럼 빛나는 아이를 본 적이 없어. 너는 분명 하늘에서 보낸 귀한 존재야.
우리 아빠는 내가 가장 큰 실수라고 이야기했는 걸. 할머니도 내 사주 때문에 부모님이 이혼하신 거라고 했어.
저런.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어떻게 그런 심하고 얼토당토않은 말을 견디며 살아왔니. 그 말을 들었을 때 네 기분이 어땠어?
아무 생각이 없었어. 나는 이미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냥 좀 슬프긴 했어. 난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거야.
흠, 이미 알고 있었다니 너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니. 네게서 큰 슬픔이 느껴져. 아 그래서 그랬구나 라고 내 마음에 저리는 통증이 느껴진다.
그런 사람들 말은 믿지 마. 가까운 가족이라도 마음속으론 거리를 두는 게 좋겠어.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 아빠는 준비되지 않은 결혼과 출산에 힘들었던 거야. 하지만 그건 아빠의 선택이었고 책임을 지어야 하는 부분이야. 할머니는 불안도가 높아 뭐에라도 의지하려고 미신을 믿으시나 봐. 뭐가 됐던 아이에게 그런 사실무근인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야. 너를 봐. 너의존재만으로 이 세상에 빛이 나. 거기다 이런 힘든 상황에도 뭐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잖아. 어린 네가 어른들보다 훨씬 나아.
고마워. 네 말 명심할게. 그런데 자꾸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자꾸 떠오르면 어쩌지? 작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크고 무서운 말들이야.
어린 네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든 말이라는 네 이야기가 맞아. 자, 좋아. 너에게 힘을 줄게. 네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도록 너에게 남다른 힘을 줄게. 네가 그 아픔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잊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