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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Feb 25. 2020

이제는 행복한 내가 아직도 아픈 어린 나에게

내 마음속 여행을 시작하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를 봤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진 공지능 로봇 소년  데이빗의 이야기.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버려진 데이빗은 엄마를 만나고 싶어 인간이 되길 기도한다. 그는 2000년의 기다림 끝에 피노키오의 푸른 요정을 만나 소원을 빈다. 미래인들은 이 소년에게 단 하루 엄마와의 시간을 복원한다. 비로소 안식하는 데이빗. 이 영화를 보며 어린 시절 그리운 때가 생각났다.




2000년의 기다림 끝에 푸른 요정을 만난 데이빗
그에게 주어진 시간 딱 하루.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하루를 보내다. 출처 :  스티븐 스필버그 <A.I.>


다시 돌아간다면. 다 버리고 다 리셋하고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영화의 주인공처럼 딱 하루만. 어린 시절의 엄마와 남동생과 24시간을 보내고 끝을 맞이할 수 있다면. 내 힘듦 아픔 다 버리고, 대신 그 대가로 지금의 행복버리고. 돌아가서 다시 그 날을 누리고 모든 걸 멈출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나...? 생각해 보았다.


잠시 망설여졌다.

나도 이런 내 마음에 놀랐다. 혀 자각하지 못하는 터였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하고도 싶었다. 그동안의 힘듦과 아픔이 너무 커서 아예 안 겪은 것으로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때가 너무 그리워서. 그냥 그 순간을 영원히 내 마음에 간직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모든 걸 끝내는 거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그래도 지금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많이 힘들다. 하지만 너무 행복하다 나는.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고 깨비와 그리고 남편... 도. 나는 많이 변했지만, 예전의 나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나를 사랑하는 것으 내가 선택했으니까. 그것도 나다. 그래서 그냥 지금을 사는 걸로. 옛날의 나는 가끔 만나서 안아줄게. 과거와는 바이바이야.



현재의 나 : 넌 너무 안타까워. 아직도 울고 있잖아. 마음이 아파. 울음이 멈추질 않잖아. 수없이 안아줘도 위로해도 멈추질 않아. 어떻게 하면 되겠니...? 방법을 알려줘.

9살의 나 : 방법? 계속 울 거야 나는. 영원히 그때의 엄마를 만날 수 없으니까. 나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거든. 여기는 너무 무서워. 다정하지 않아. 따뜻하지 않아. 난 너무 어려. 다시 돌아가서 거기서 안식하고 싶어. 근데 돌아갈 수 없잖아. 그래서 계속 눈물이 나. 네가 아무리 행복해도 나는 달라. 나는 내가 그리워하는 건 그게 아니야. 네가 그런 나를 위해 아무리 네 위치에서 노력해도 그건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야. 네가 진정 나를 위한다면 나를 많이 기억하고 찾아서 달래줘. 달래지지 않아. 나도 알아. 그냥 근데 그 방법밖에 없어. 네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거야. 그래도 너는 살아질 거야. 가까스로 나를 너에게서 분리해 냈지만, 내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를 잠재우는 방법은? 그건 나도 몰라. 그게 옳은지도 모르겠어. 나는 살아있고 싶으니까. 그렇게 우는 게 나를 위한 애도야...


그래, 어쩌면 나는 충분히 애도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빨리 괜찮아지려고. 내가 겪은 슬픔은 너무 큰데 너무 적게 울었다.


그럼 너를 애도하면 되겠어? 그리고 네가 실컷 울게 두면 나아지겠니? 진정되겠니? 편히 안식할 수 있겠니?

너무 울다 지치면 다 내려놓고 포기하는 순간이 올 거야. 그다음엔 오랫동안 휴식하겠지. 푹 쉬고 나면 조금 기운이 날지도 몰라. 그러면 그땐 나아지려고 노력하기 시작할게.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 하지만 지금은 울래. 너도 울어줘. 그리고 슬퍼해줘. 지칠 때까지. 더 이상 뽑아낼 눈물이 없을 때까지.



그래.. 알았어. 같이 슬퍼하자. 질문을 쏟아내서 미안. 내 삶을 살아내면서도 그리 할게.





나는 지금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다 가지지 못했고 힘든 때도 많다. 하지만 밤마다 하던 행복해지게 해 달라는 기도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전쟁 같은 하루 속에서도 나는  충분히 차고 넘치도록 행복하다. 외롭지도 않다. 나는 가족이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 안에서 무언가 아우성친다. 원인 모를 슬픔이 느껴진다. 이를 느낀 후부터 종종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린 나를 상기하고 과거를 떠올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심리학 책도 읽고 상담도 받았다. 하지만 그때뿐, 큰 차도가 없었다. 나는 뚜렷하게 상상해보았다. 지금의 내가 어린 나를 찾아가는 장면을.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고 안아준다. 씨앗을 심는 것처럼 지금의 삶과 연결될 메시지를 하나씩 던지고 돌아온다. 힘들 때마다 이런 방법을 반복했다. 내가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깊게 깊게 내 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한다. 점점점 내 깊은 에 닿는다. 거기에는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잔뜩 있다. 점점 더 깊게 들어간다. 맨 밑바닥에서 아픈 어린 나를 만날 수 있다. 의식적으로 해오니 예전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던 것들이 쉽게 된다. 이것이 흔히들 명상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혹시 내가 차원을 여행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심는 꿈 여행자 돔 코브 /출처: 크리스토프 놀란<인셉션>


지금의 행복한 나는 아직 아픈 어린 나를 위한 여행자가 되려고 한다. 예전의 내게 돌아가 도움을 주고 싶다. 그로 인해 변하는 것은 어린 나뿐이 아닐 것이다. 분명 지금의 내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수많은 경험을 해온 만큼 할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조금은 어둡고 슬프고 먹먹할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더 위트 있게 써보려고 하겠지만 잘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에는 희망이 있고 생명이 있다. 다시 일어나는 반동의 에너지가 있다. 나뿐 아닌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나만이 잘 풀어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엉키고 꼬인 실타래 하나씩 풀어내어 보련다. 생각 여행자 인셉셔니스트가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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