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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Mar 10. 2020

바닥을 갱신하고 계세요?

노력 아닌 노오력이다

어느 날 운명이 말했다.

작작 맡기라고.

유병재 <블랙코미디>  


무너지고 또 무너진다. 이게 내 진짜 바닥인 줄 알았다. 더 이상은 내려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또 바닥 갱신이라니. 내 자신이 싫다. 더럽고 추악한 괴물 같다.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다. 누가 나를 좀 붙잡아 주었으면. 아니, 모든 걸 포기하고 이대로 꺼지고 싶다. <나의 일기장에 적혀있는 어느 날 일기> #바닥갱신 #한계야


계속 바닥을 갱신할 때.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는데 또 똑같은 일을 저질렀을 때. 해도 해도 안될 때. 그냥 다 잊고 포기하고 싶은데 그조차 허락되지 않을 때. 나라는 존재에 드롭킥을 날리고 싶다. 숨 쉬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백 프로 내 의지가 아니었는데. 나를 세상에 꺼내 놓았으면 책임도 져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원망해 봤자 아무런 소용없다. 가장 힘든 건 외로움과의 싸움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느 누가 나를 사랑해도 소용이 없다. 사람들과 있을 때조차도 외롭다. 모든 생명에겐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건 말인가 방군가. 역으로 존재하기에 이유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애써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내가 존재함을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고통스러워 나라는 자체가 힘들다.



과거와의 연결 고리를 끊어내기


끊어내야 한다. 무너지고 또 무너졌더라도 이번엔 그 전과 다르다. 내일 또 무너지더라도 그건 지금과 다른 것이다. 연속성 안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실제로 그 안에 있더라도 내 정신만큼은 똑바로 차려야 한다. 계속 다시 빠지는 연속성의 늪은 호랑이 굴이나 다름없다. 매일을 또다시 아프더라도, 나는 밤마다 기도하여 오늘로서 끝내 마무리해야 한다. 새 아침엔 새 마음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나를 미치게 하는 간헐적 희망을 피한다


썩은 동아줄에 매달린다. 너무 간절해서 아닌 걸 알면서도 놓지 못한다.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가장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건 간헐적인 희망이다. 될 것도 안될 것도 같은 상황. 불규칙적으로 가끔 던져지는 희망. 짜인 각본처럼 썩은 동아줄은 언젠가 꼭 끊어진다.

출처: <초등 자존감의 힘> 리뷰 from 엄지표 블로그


그런데 동아줄이 끊어지면 그 상처를 이루 말할 수 없다. 슬픔과 좌절감. 바라던 것이 안되어서 슬프고, 해도 해도 안되니 좌절스럽다. 그리고 가장 힘든 건 나 자신에 대한 미안함이다. 나는 알면서 나를 학대한 것이다. 그러니 가장 나쁜 사람은 나다. 악순환 아닌가. 결과는 뻔하다. 눈물을 멈출 수 없다. 끝도 없이 무너진다. 당장 나를 돌아버리게 만드는 희망고문에서 멀어져라. 썩은 동아줄 말고 작은 것이라도 나에게 성취감을 줄, 확실한 걸 붙들어야 한다.



질투 말고 부러워하기다


지나가는 개만 보아도 부러운 수준에 이르렀으면 심각하다. 무엇이든 나보다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마음속에 미움이 생긴다. 어떤 행동 어떤 말도 아니꼽다. 통증이 느껴진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내 마음이 아프다. 질투를 느낄 때 통증과 관련된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 한다. 아.. 그래서 질투하지 말라고 하는 거구나. 내가 아픈 거구나. 차라리 부러워하란다. 부러움은 순수하게 바라고 자신을 격려하는 마음이다. 부러워하면 그 사람을 동경하고 닮으려 노력하게 된다. 질투와 부러움, 비슷해 보이지만 전자는 부정적이고 후자는 긍정적이다. 그러니 질투 말고 부러워하기다.



한 걸음 떼는 노오력


한걸음 떼기가 어렵다. 내 발걸음은 천근만근 쇳덩이 같다. 모래자루를 10개는 달고 있는 것 같다. 하염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 그걸 일으켜 움직이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의식적으로 루틴(routine)을 만든다. 아무리 하기 싫어도 제시간에 일어나고 제시간에 자야 한다. 밖에 나가 햇빛을 받아야 한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좋으니 얼굴을 보고 들어와야 한다. 제대로 된 밥을 한 끼라도 먹어야 한다. 일어날 수조차 없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력으론 안된다. 노오력이다.



시간이 지나길 기다린다


뇌는 잊는다. 상처도 아픔도 모두 희미해진다. 시간이 필요하다. 푹 자고 시간이 지나길 기다려본다. 이 세상이 싫고 도피하고 싶어 계속 잠만 자보기도 한다. 하루 종일 잘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루틴이고 나발이고 그냥 자야 한다. 노오력은 그나마 조금이라도 일어날 힘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기분이 조금 나아질 때가 온다.



트라우마와의 동거


하나 절대 잊히지 않는 고통도 있다. 사람들은 그걸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트라우마를 다스리려면 아파도 매일 한 걸음 걸어 살아내야 한다. 애써 잊으려고 하지 말자. 잊히지 않는다. 시간 낭비다. 트라우마는 생존의 위협이므로 뇌는 그것을 쉽게 지우지 않는다. 살기 위한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트라우마는 자제력을 향상하고 같은 위험에 처하지 않게 나를 이끈다.  뇌는 잊지 않으나 나는 그 과거에서 나와서 다른 현재를 살아내야 한다. 충분히 애도하고 치료하여 그때의 나와 안녕을 고한다.





 넘어져도 나는. 다시 일어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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