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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Jul 02. 2020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닮을까 봐 두려웠다

엄마, 엄마는 엄마랑 아빠랑 나랑 동생이랑 이렇게 우리 가족이 좋아, 아니면 예전에 엄마의 엄마랑 아빠랑 살던 때가 좋아?

엄마는 지금 우리 가족이 좋지. 제일 좋아.

왜?

음… 엄마는 엄마 아빠랑 같이 살지 않았거든.

왜 같이 살지 않았어?


엄마의 엄마와 아빠는 이혼했다고 설명했다. 이혼이 뭐냐고 묻는 아이에게 이혼은, 같이 살지 않기로 결정하여 헤어졌다는 뜻이라 설명했다. 아이의 질문이 꼬리를 문다.


왜 이혼했어? 왜 사이가 안 좋았어?

왜냐면 원하지 않는 결혼을 했거든.

왜 원하지 않는 결혼을 했어?

왜냐면 아기를 가졌기 때문이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거야. 그 아기가 엄마야. 두 분은 사랑하지 않으셨어.

그럼 어떻게 아기가 생긴 거야? 왜 조심하지 않은 거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아이의 깊숙한 질문은 계속되었다. 이런저런 대답을 하며 내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아이에게 조부모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나와 별개로. 아이에게 최대한 감정을 섞지 않고 팩트만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려 애썼다. 조부모도 핏줄이니까. 사람은 다 실수를 하는 법이니까. 잘한 부분이 있으면 잘 못한 부분도 있기 마련.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신의 정체성에 부정적인 감정을 갖지 않기를 바랐다.


동일시 : 한 아이가 자기가 다른 사람과 독특한 특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거기에 대리 감정의 경험이 추가되면 그 아이는 자신을 그 사람이나 집단과 동일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 제롬 케이건


부모나 가족, 민족이나 나라와 나를 동일한 대상으로 여기는 것을 '동일시'라 말한다. 아이는 처음에 나를 롤모델로 삼을 것이고 조부모를 가끔 떠올릴 것이다. 가족 중 누군가 잘된 사람이 있으면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동일시는 중요하다. 또한 그만큼, 나에게도 영향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내 폐에 소결절이 산다

보름 전 받은 건강검진. 거기서 내 폐의 소결절(작은 혹)을 발견했다. 당분간 추적 검사를 해야 한다. 나는 현재 담배를 피우지 않고, 피워본 적도 없으며, 현재 몸이 건강한 편이다. 그런데 웬 폐... 웬 소결절... 몇 년 엄청 힘들긴 했었지. 좌절 속에서 번뜩 생각이 났다. 아빠. 아빠!!


아버지는 생전 담배 두 갑씩 태우셨다. 매일같이. 하지만 처음엔 폐암이 아니었다. 혈액암에 결려 수술을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담배를 끊어야 했다. 하지만 이 세상 두려운 것이 없던 우리 아버지. 다시 담배를 피웠다. 꼭 담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우리 아버지가 폐암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몇 개월 남지 않은 말기였다.


그 전의 아버지 삶은 성공적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그러했다. 학위를 여러 개 받았다. 큰 사업체를 운영했다. 중국으로도 진출했다. 각종 단체의 회장을 연임했다. 사람들은 까맣게 몰랐다. 이혼 경력과 자식이 있음을. 아버지는 나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겼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아빠는 사람들에게 나를 큰아빠의 딸이라고 소개했다.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라고 이야기했다. 그전에도 아빠는 나를 낳은 것이 인생 가장 큰 실수라고 말했었다. 나는 여러 번 무너졌다.





아버지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편애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친할머니는 삼 남매 중에 막내인 아버지를 유독 예뻐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친할머니는 남아선호 사상이 강한 분이셨다. 예전 많은 분들이 그럴 것이다. 그냥 강한 것이 아닌, 딸이라는 존재를 혐오하였다. 본인이 그렇게 받으며 억울하게 자란 것을 대물림했다. 그래서 첫째인 고모는 할머니의 편애 대상에서 제외됐다. 둘째 아들은 왼손잡이였다. 왼손잡이는 불길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매질로 큰아버지를 키우셨다. 자신의 타고난 것을 거부당한 큰아버지. 더욱이 외모도 성적도 변변찮았다. 큰아버지 또한 편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막내인 우리 아버지는 키가 크고 잘 생겼다. 애교가 많았다. 공부를 잘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득이자 독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득이 된 부분은 자신감이다. 아버지는 이 세상 못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무얼 해도 잘했다. 무얼 해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독이 된 부분은, 과신이었다. 세상 아버지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막히면 뚫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뚫리지 않으면 무시해버렸다. 그 무시의 대상에 나도 포함됐다.


이렇게 잘났던 아버지가 실수를 한 것이다. 일찍 여자를 만나 혼전 아기가 생긴 것이다. 보수적이었던 두 집안의 결정으로 결국 대학생 때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대학교에서 학생회장을 했고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집에는 궁상맞게 생활하는 아내와 자식들. 아버지는 가족이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숨겼다. 바람을 펴서 결국 이혼하게 되었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여러 여자를 만났다. 여러 번 동거했고, 결혼했고, 이혼했다. 나에겐 친동생 외 배다른 동생이 하나 더 있다. 그 동생은 나의 존재조차 모른다. 아버지는 이 모든 걸 비밀로 하고 젊은 나이인 50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 거긴 나의 존재를 모르는 새 부인과 배다른 동생이 있었다. 남편은 나에게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50은 너무 일렀다. 억울했다. 그 잘난 사람이 왜 그렇게 일찍 죽었어야 했을까 하고. 미워하는 것도 살아있어야 할 수 있었다. 내 원망은 갈길을 잃었다. 맥없이 허공으로 퍼지는 아지랑이가 되었다.




나는 가끔 아버지를 떠올린다. 항암을 받던 어느 날, 아버지는 갑자기 냉수마찰을 하겠다며 찬물 목욕을 하고 그날 돌아가셨다. 나는 아빠가 아마도, 죽음을 예감하고 끝까지 싸우다 죽은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역시 자신감이 너무 과했다. 참 우리 아버지 답게도. 내 폐에 소결절이 생긴 지금, 다시 모든 걸 되짚어본다. 아빠 생각이 났어야 할 내 인생의 중요한 이유가 있을까. 우리 아버지를 떠올리며 내가 정리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



먼저, 아버지는 내 아버지다. 싫어도 좋아도 내 아버지가 맞다. 아버지는 사람들 있는 앞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했다. 내가 홍길동도 아니고 그때가 조선시대도 아니고 대체 뭐람. 사실 나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불행 닮까 겁이 났다. 하지만 인정하겠다. 그 두려움조차도 내 아버지였기 때문에 가졌음을. 어느 누가 부인해도 우린 핏줄이고 꼭 닮았고 부모 자식 간임을.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잘못들을 객관화하여 더 이상 대물림하지 않겠다. 우리 아버지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던 과한 자신감. 나는 자신감을 갖되, 과신하지 않으련다. 이 세상 내 뜻만으로 되는 것이 없음을 배운 것이 내 험난한 인생 가장 큰 수확이다. 나는 운칠기삼. 운이 70프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90프로 이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열심히 하지만 그것이 되고 안되고는 하늘의 뜻이다. 절대로 자만하지 않기. 겸손하기. 내 몫은 갖되, 과한 부분은 베풀기. 나는 깨어있으려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버지를 내 삶에서 떠나보내련다. 용서하고 정리하고 싶다. 아버지는, 참 아빠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아빠가 잘못한 건 맞지만 모든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는 거라고. 아버지를 용서한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것이 아깝고 억울한 것. 그 미련이 내 마음에 남아 삶에 영향 주지 않도록. 그 또한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고.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모든 사람들의 운명. 매일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임을 잊지 말기. 나쁜 일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건 맞으나, 그럼에도 다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삶은 원래 불공평하다고. 조금은 내려놓기. 이렇게 안타까움을 떠나보낸다.



내게 남은 건 이제 정기적인 폐 소결절 체크뿐. 아빠, 거기서라도 행복하세요. 아빠는 참 아빠 자격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내 아빠예요. 용서할게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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