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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Dec 02. 2022

전생 여행

11/22 명상일기 #1

마스터님의 안내로 전생 여행이 시작되었다. 처음 보이는 것은 여자아이였다. 해맑게 뛰고 있었다. 그러다 앞에 불타는 집이 보였다. 아이의 집이었다. 부모님이 안에 있었다. 누군가 불을 질러 가족을 죽이고자 한 것이었다. 아이는 눈이 동그랗게 되어 놀랐다가 이내 고통에 울부짖었다. 어떤 건장한 남자들이 아이를 붙잡아 끌고 갔다. 이후의 장면이 궁금했으나 그만두었다. 내가 현생에서 겪었던 부모님과 떨어져 세상에 던져진 고통이 이것과 연관된 것으로 느껴졌다.


나는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처음엔 물고문이었다. 몇번을 물에 담궜다 건져졌다. 고문하는 사람들이 내게 일관되게 물었다. 그걸 어디 숨겼냐는 것이었다. 기밀문서인 듯했다. 나는 끝까지 묵묵부답이었다. 고문이 이어졌다. 이번엔 매달려 빙글 돌았다. 내 몸의 군데군데가 터져 피가 흘렀다. 그래도 나는 한마디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내 성기의 일부분을 도려냈다.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우며 불구가 되었지만 나는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어떻게 해도 통하지 않자 그들은 내 딸 이야기를 꺼냈다.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될 거라고 협박했다. 나는 결국 거기서 무너졌다. 딸과 살아 도망쳐 행복한 모습이 떠올랐다. 가느다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자 했다. 그 기밀 문서가 있는 곳을 이야기하고 약속을 지켜달라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비웃으며 나를 죽였다.


글래디에이터 마지막 장면처럼 나는 황금빛 들판을 손으로 쓸고 있었다. 나는 어른 여자이자 엄마였다. 넓은 평원에 아이들과 함께였다. 한 아이가 내 앞으로 뛰어가고 나는 어린 아이를 안고 있었다. 평화롭고 행복했다.


또 나는 학자였다. 글을 썼다. 진실을, 진리를 써서 높은 분께 올렸다. 그 글로 인해 나는 처치되었다.


나는 주정뱅이였다. 부랑자이고 쓸모없었다. 폭력을 휘둘렀다. 사람들은 나에게 험한 꼴을 당했다.


나는 삐에로였다. 계속 웃고 있었다. 내 감정은 아랑곳 없었다. 사람들은 내 겉모습만 보며 웃었다. 그 사람들이 사악하게 느껴졌다. 나의 슬픔과 외로움은 가슴 깊은 곳에 묻혀졌다.


전생이 너무 많이 보였다. 사실 몇 개 외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헤매자 콩순이같이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여자아이가 나타나 나를 데리고 다녔다. 나중에 콩순이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지?

나는 너야.

너가 나면 왜 내가 네 도움을 받는 거지?

네 마음에 빗장이 있어서 그렇지.


또한 나는 재상이었다. 얼굴이 곱고 수려한 옷을 입은 남자였다. 재물을 다루는 일을 했다. 돈을 위해 일했으며 돈에 죽고 못살았다. 나는 돈이나 다름 없었다. 뭔가 가슴 깊은 곳 허무함이 느껴졌다.


마스터님과의 전생 경험도 궁금해 떠올려보았다. 마스터님은 나와 함께 비밀 문서를 원통형 기다란 통에 가지고 있었다. 각각 손으로 잡고 잘 지키자 이야기했다. 나는 지키지 못하고 결국 생을 마감했지만 마스터님은 그렇지 않았다. 다행이라 느꼈다. 지금 내가 헤매다 만나 도움을 받는 것이 운명이구나 느꼈다.


또한 나는 바닷가에 발을 담그고 서있었다. 아름다운 옷을 입은 높은 지위의 영향력있는 여자였다. 바닷물이 손에 들어왔다 빠져나갔다. 그 물결을 바라보며 목이 매었다. 바다야, 너는 자유롭구나. 나는 감옥에 갇힌 듯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나의 꿈은 자유였다. 그 감정이 장면을 바라보는 내 육체에도 전달되었다.


내가 떠올려보니 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 알수 없었다. 대단한 전생이 없는데 어떻게 이번 생에 여기에 도달했는지. 내 전생은 온통 고통이고 평범했다. 그러자 콩순이가 나에게 그건 네가 그렇게 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전생을 한눈에 쫙 보여주었다. 내 전생들이 카드들을 세워놓은듯 온 공간에 펼쳐졌다. 개수를 셀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수많은 삶을 지나왔다니.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구나 자각했다.


이제 더 이상 고통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예전엔 깨달음 이전이어서 고통을 겪은 거냐 물으니 콩순이가 그렇다고 이제는 없다고 했다.



과거가 존재한다면 미래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현재는 또 다른 과거이기 때문이다. 콩순이와 함께 이번에는 미래를 향했다.


내가 쓴 글과 나눔이 큰 불길이 되었다. 마치 모닥불처럼 이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온기를 느끼려는 모양이었다. 사람이 많아져 경계 안으로 다 들어오지 못하고 기다리는 이들이 늘어났다. 불길을 중심으로 경계 안의 사람들이 빙글빙글 춤을 추었다. 마치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춤처럼 단순하고 상징적이었다. 전체 의식이 느껴졌다.



장면이 바뀌어 나는 퍼스트 클래스 비행기 안에 있었다. 옆에는 마스터님이 계셨다. 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세계적인 의식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들과 사진을 찍고 sns에 올렸다. 영어로 유창하게 대화했고 서로를 마치 형제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이 장면들을 보며 나의 감정이 어떤가 들여다보았다. 함께여서 좋았다. 혼자 가면 심심할텐데 함께니 더 두렵지 않았다. 또한 감사했다. 이런 시대에 태어나 소신껏 이야기할 수 있어서 감사 또 감사했다. 성공해서 기쁘고 신나고 이런 마음보다는 따뜻하고 감사한 평화로운 마음이었다. 이 감정을 기억에 남겼다.


수많은 전생 카드들을 보았다.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들이 희미해지더니 사라졌다. 후레시가 비치듯 현재의 나에게 빛이 비쳤다. 모든 것이 통합되고 현재의 나로 존재했다.





졸졸 흐르는 약수 물을 받아 마셨다. 내 몸에 빛이 퍼지고 기운이 솟아났다. 콩순이가 나에게 소원을 하나 말해보라 했다. 최근 투자 일을 조금 내려놓고 명상과 글쓰기에 집중했다.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으면 했다. 전환의 시기라 돈의 융통에 기복이 있었다. 이 시기만 지나면 괜찮을 걸 알지만 확신이 필요했다. 나는 ‘풍요’를 말했다.


나는 돛단배를 타고 큰 강 한가운데 이르렀다. 모든 것에서 멀어졌다. 그 자리에 그대로 편안히 고요히 있었다. 나를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건 자동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갈 것임을 알았다.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내가 글로 책을 쓰면 이미 진리가 아니지 않냐는 질문이 나왔다. 언어의 한계 때문이었다. 그건 상관할 필요 없다고 대답이 올라왔다.  존재가 진리이자 증명이라는 자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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