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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Nov 30. 2022

자신부터 구하세요

11/24 명상 일기 #1

“예쁘시네요.”


누군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곱게 빗어 묶은 백발의 할머니가 보였다. 그 할머니를 돌보는 요양사가 말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좋은 옷에 구급 담요를 덮고 있었다. 순간 여기가 어딘가 두려움이 올라왔다. 요양원인가?


여기가 어디죠?

여사님 집이지 어디예요.


내 집이었다. 내가 할머니였다. 왜 내가 휠체어에 타고 있지? 내가 평소 명상에서 보던 내가 늙은 모습과 달랐다.


내가 왜 휠체어에 타고 있죠?

넘어지셨잖아요.

우리 아이들은 어딨어요?

오늘 저녁에 방문할 예정이에요.


안도감이 들었다. 순간 요양사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괴물같이 흉측한 모습이었다.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다.


당신은 누구죠?

두려움.


요양사는 두려움이었다. 아, 내가 두려워하는 장면이구나. 늙어 몸을 못 가누고, 홀로 되어, 요양원에 맡겨지는 것이 두려움 중 하나라는 자각이었다. 최악의 상황이 떠올랐으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요양사의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나은’ 이야기로 장면이 구성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두려움’이 말했다.


잘 빠져나오시네요.


그 이야기를 듣고 미소 지었다. 요즘 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잘 빠져나오는’ 경험을 하곤 한다. 어떤 의도 혹은 부정적 생각을 알아차리고 걸려들지 않는 것이다. 혹은 워낙 긍정적이어서 어떤 대화를 나눠도 결국 상대가 할 말이 없어지기도 한다. 이번에도 잘 빠져나왔다는 알아차림이었다.


두려움은 ‘기회’로 변했다. 기회와 여기저기를 다니기 시작했다. 기회와 이 세상 가장 밑바닥에 내려갔다.

이 세상 가장 밑바닥은 매우 끈적끈적했다. 마치 파리지옥 식물에 걸려든 것 같았다. 기회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바닥이 끈적끈적 하지?

그래야 힘을 주어서 여길 나가지요.


아이러니한 대답이었다. 끈적끈적 바닥에서 힘을 주어 다리를 끌어올리자 발이 땅바닥에서 겨우 떨어졌다. 그래, 이렇게 힘을 줘야 나갈 수 있다는 거지…


신은 잔인한 것 같아.

사람들이 그걸 원하더라고요.

나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어. 어떻게 해야 해?

많이 해보셨잖아요.


내 옛날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마음먹으면 나갈 수 있지. 벽을 잡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끈적한 발을 떼어냈다. 저 멀리 바닥에서 여전히 뒹구는 사람들, 그리고 기어오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들을 어쩌지? 도움이 필요한 거 아냐?

자신부터 구하세요.


뜨끔했다. 정신 차리고 다시 집중해 벽을 기어올랐다. 위에 도착하자 작은 터널이 있었다. 그 터널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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