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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Nov 29. 2022

내가 임사체험 후 깨달은 것

죽음 앞에서 깨닫는 것

스무 살 초반 나는 늘 그렇듯 다이어트 중이었다. 유난히 아랫배 살이 빠지지 않았다. 열심히 줄넘기를 한 덕분에 다른 곳은 말라가는데 아랫배만 뾱 튀어나와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어느 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변도 자주 마려운 것 같았다. 사실 통증이 없어서 그냥 지나가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뭔가 진정한 내가 나를 도왔던 것 같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무작정 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갔다.


검사를 받아보니 난소에 혹이 있었다. 혹이 꽤 크다고 의사가 이야기했다. 어서 큰 병원에 가라 했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니 혹이 약 15센티에 가까웠다. 수술을 받아야 한단다. 수술비는 약 200만 원이었다. 나는 당시 돈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로 벌어 겨우 학비 내고 생활하는 상황이었다. 아빠에게 이런 일이 있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아빠는 듣기만 하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연락을 해서 이야기했다. 엄마는 나의 상황을 알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왔다. 당시 엄마도 상황이 좋지 않아 작은 이모에게 돈을 빌렸다. 그렇게 나는 난소 혹을 떼는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당일 아침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기구를 삽입해 자궁을 벌리고 약을 먹었다. 스물 초반인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너무 배가 아파 엎드려 고통에 꺽꺽 울었던 기억이 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수술은 잘 되었다. 그런데 수술하고 몇 시간 후 나는 의식을 잃었다. 수술 부위가 잘 지혈되지 않은 것이다. 심박수가 떨어지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엄마가 나를 발견하여 나는 재수술을 받게 되었다.


당시 내가 누워있는 침대를 다급하게 끌고 가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생각난다. 약 5명이 붙어있었고 내 침대를 끌고 뛰어가면서도 내게 어떤 처치를 했다. 옷을 가위로 자르며 찢었다. 어떤 장치를 부착했다. 내가 굉장히 위급한 상황이구나 알 수 있었다. 내 의식은 깜박깜박 돌아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말을 하거나 움직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다급했던 것에 비해 나는 너무나 평온했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 어떤 생각도 판단도 없었다. 살려는 마음도 없었다. 그냥 나는 나를 살리려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느낌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는 '초월'이었다. 그들과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었다.


재수술은 잘 마무리되었다. 나는 다시 의식을 찾았다. 깨서도 죽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 이 모든 돌아가는 세상에서 죽음을 맞닥뜨린 나의 진정한 평화.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구나 알게 되었다. 두려움과 고통은 오로지 살아있을 때 죽음을 상상할 때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왜냐면 겪지 않았고 모르니까.


그리고 깨달은 지금 죽음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진정한 끝은 오로지 내가 스스로의 한계에 갇혀 나가지 못할 때뿐이다. 나의 존재는 영원하기에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른 형태의 옷을 입고 이 세상에 다시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영혼의 길을 가게 되면 결국 이러한 옷조차 훌훌 벗어 우주로서 존재하게 된다.



나는 이 죽음의 경험에서 모든 물질적인 것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냥 휩쓸려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결과 가족 같지만 전혀 도움이 안 되던 많은 친구들과 연을 단칼에 끊었다. 당시 나를 챙긴 친구들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들과는 연을 돈독히 했다. 하기 싫지만 돈 때문에 억지로 하던 일도 단칼에 그만두었다. 한동안 금전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아예 쓰지 않는 삶 그리고 어떻게든 빌붙어 사는 삶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서 차근히 내가 하고 싶던 것들을 하기 시작해 나중에 경제적으로 다시 설 수 있었다. 결국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돈이 문제가 아니라 두려움의 문제라는 걸 알았다.


이 생사를 오가던 경험은 나에게 축복이 되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중요한 메시지를 나에게 던졌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인가?' 답을 앎에도 돌아온 적이 있지만 결국 목적지는 같았다. 고요하고 평화로움이 진정한 존재이며 모든 건 그냥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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