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아이의 기질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유전자들이 있다. 그중 스트레스에 취약한 일부는 불안감, 우울증, 난독증, ADHD, 강박행동, 자폐증의 원인이라고 알려져 왔다. 허나, 이 유전자들이 대를 이어 유지되어 온 데는 나름의 생존 전략이 있을 터. 아니나 다를까,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다른 견해를 줄줄이 내놓고 있다. 공통적으로 이 유전자는 좋은 양육환경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이야기한다.
학자들은 이 아이들을 ‘난초’라고 부른다. 키우기 어렵지만 환경을 잘 조절하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다. 반면 어떤 환경에도 잘 자라는 순한 기질의 아이들을 ‘민들레'라고 한다.
붉은 털 원숭이 실험에서 어미에게서 특별한 보살핌을 받은 난초들은 스트레스에 보다 강해졌다. 집단의 지배 계층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친구 사귀기, 동맹 맺기, 갈등 해소하기 등 핵심적인 사교 기술에서 다른 원숭이들보다 나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관찰하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반면에 보살핌을 받지 못한 난초들은 최악의 결과를 보여줬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환경의 영향이 결정적이다. 부드러운 훈육을 받은 경우 더 친사회적이 되는 결과를 보였다. 든든한 환경에서 자라날 경우 각종 질환의 면역력이 더 높았다. 인지활동에서 높은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정서 문제가 적고 사교 기술이 더 뛰어났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의 반응도 환경에 따라 매우 달랐다. 안정된 환경에서는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평균보다 25프로 낮아졌다. 대신 좋지 않은 환경에서는 우울해질 확률이 20프로 더 높았다.
출처: <발달심리학> 곽금주
우리나라에서도 연구가 있었다. 예민한 아이들은 따뜻한 양육을 할수록 생활 만족도가 높아졌다. 순한 아이들과도 큰 차이가 없어졌다. 하지만 온정적 양육을 하지 않으면 생활 만족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출처: <발달심리학> 곽금주
생활 만족도에서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겨우 따라가지만 이를 보상해 줄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난초들이 긍정 양육으로 확 달라지는 부분이다. 난초들은 긍정적 양육을 받았을 때 다른 아이들보다 더 높은 학업 성취를 보였다. 반대의 케이스는 훨씬 낮은 학업 수행력을 나타내었다. 공부는 잘할 수도 있겠다. 작은 위안이 되려나?
아이는 이렇게 자랄 것이다. 공감능력이 높다. 협조적이다. 친절하다. 양심적이다. 부당함에 쉽게 흥분한다. 자신의 일에 성공적이다. 난초 가설을 지지하는 벨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양육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실제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이 아이들을 역경에 쉽게 무너지는 유형으로 보기보다 가변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쁜 쪽으로도, 좋은 쪽으로도, 쉽게 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 가지 조심할 부분이 있다. 특별하다 그래서 더 우월하다 생각하는 건 위험한 것 같다. 어떤 아이든 개개인이 각각 다르고 고유하게 소중한 법이니까. 하지만 예민한 아이들과 엄마들이 세상에서 받은 그리고 받을 수모(?)를 생각하면 울 애는 귀해서 이래~라는 철갑 마인드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마음을 무겁게 하고 부모 역할을 강조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사회의 역할이 크다고도 볼 수 있다. 괴로워도 사실을 직시해야 해결 방법이 보이는 법. 아이를 올곧이 바라보자.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참고문헌 :
<The Orchid and the Dandelion> Dr.W.Thomas Boyce
<발달 심리학> 곽금주
<아동의 기질과 어머니의 온정적 양육태도가 아동의 생활만족도에 미치는 효과> 김연수, 곽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