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말고 독감이 휩쓸고 간 자리

여기가 바로 지옥이구나

by 엄지언

개학이 4월로 연기된다는 뉴스가 나온 오늘.

코로나19로 개학 4월 6일로 연기. 출처: 연합뉴스


아 어떻게 하나 싶다가, 지난겨울 아팠던 생각이 난다. 내 육아에서 가장 힘들었던 중 한 장면. 그래, 아픈 것보다 그래도 그냥 가정보육이 낫지. 둘째도 어린데 혹시라도 옮으면 어떡해. 두 번 다시는 '그때' 같은 일 겪고 싶지 않다.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야. 우리 가족 네 명 모두 독감에 걸려 고생했던 때의 일기를 꺼내 읽으며 마인드 컨트롤을 해본다.




아픈 아이들 달래다 힘들어 체온을 재보니 섭씨 40도.

누가 알까? 이 경험과 이 고통을. 말로 다 표현할 수나 있을까? 그래도 한번 적어 보련다. 다시 상상하는 것만으로 몸서리치게 싫겠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 중요한 한 장면이니까.


첫째가 먼저 아팠다. 가정 보육하는 내내 아픈 날이 손꼽을 정도로 참 안 아픈 아이였던 첫째. 40개월부터 기관 다니기 시작하며 조금 달라졌다. 자주 아프지는 않은데, 일 년에 한 번 시즌마다 크게 오래 아팠다. 이번 도약기가 끝나는 듯도 했다. 요즘 둘째가 나아지며 내가 좀 신경을 써주기도 했었다. 여차저차 긴장이 풀리는 건지 확 아파버렸다. 작년에도 한 달을 놀이학교에 못 갔었지. 그때 생각이 났다. 아 죽었다 싶었다


조금이라도 효과 있을까 하여 끓인 배도라지즙


둘째가 아프기 시작했다. 먼저 걸리는 일은 잘 없는데, 첫째가 심하게 아플 때 꼭 옮는다. 불쌍한 둘째의 운명. 너무 어릴 때부터 매년 한 번씩 크게 아프고 해서 발달... 뭐 이런 거 조금 신경 쓰인다.


삼일째 철야하니 영락없이 나도 아팠다. 내가 아픈 상황에서 아픈 아이 둘을 돌보기가.. 그것도 민감한 아픈 아이 둘. 그중에 한 명은 애기. 힘들다 뭐 이런 게 아닌, 고문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고열에 시달리면서 하루 종일 찌찌 매달리는 애 젖먹이고, 밤새 애 둘 번갈이로 케어하며 한숨 못 자고. 겨우 하나 재우면 한애가 깨우고, 한애가 다시 자면 또 얘가 깨고. 계속 서서 안아줘야 하고, 약도 제대로 못 먹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주일을 못 자고 맨밥에 김치만 먹었다.


나 어떻게 된 거니. 나 어떻게 버틴 거니 흑흑. 애들한테 시달리며 내 열 재보면 39도 40도 이렇게 찍고. 그래도 또 우는 애 안아야 하고. 아 여기가 바로 지옥이구나-


보통은 남편만 항상 비켜가는데 이번엔 같이 아팠다. 너무 아픈데 그래도 나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잠 못 자고, 열나고, 어지러운데 운전하면 문 두 번 긁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진짜 하다 하다 팡 터진 날은 5일째 금요일. 찌찌 그만! 엄마는 더 이상 못 안아줘. 너무 힘들어, 나도 사람이야!! 나도 아프다고!!! 화내며 둘째를 밀어냈다. 자꾸 아파서 동생한테 옮기는 첫째가 미웠다.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애들이 저주스러웠다. 나에게는 이성 따위 없었다. 그냥 나는 살고 싶은 한 마리 동물이었다. 결국 그러다 그래도 또 들러붙는 애들을 안았다. 내가 왜 애를 둘이나 낳아서. 너무 힘들어,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돼 꺽꺽꺽...


제일 힘든 그 날은 내 30대 마지막 생일이었다.


그렇게 애들은 나아졌다. 나는 애들이 나으니 그제야 몸의 긴장이 풀리는지 입술이 터지고 혓바닥이 헐었다. 진즉에 떨어져야 정상인데 8일째인 아직까지도 미열이 지속되고 있다.


뭘 해도 피곤하고 눈이 빠질 것 같고 그러네. 첫째는 유치원 안 가고 좀 더 쉬고 있다. 둘째는 엄마가 밀어낸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밤마다 오열하며 깨서 다시 보듬느라 고생 중.


만약에 정말 지금부터 육아가 좀 나아진다면, 이번의 일은 정말 내 육아의 휘날레로, 내가 정말 이렇게 힘들었었다를 평생 기억하게 해 줄 사건. 내 인생에 절대 다시는 애는 없을 것이다 라는 다짐을 끊임없이 되새겨줄 것이다.


만약에 이렇게 자꾸 아프다면 기관도 보내기 싫고 둘째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둘 다 그냥 가정보육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단순 독감이 나은 게 아닌 죽음에서 소생한 기분이었다. 애 둘과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 기록 경신이었다




헬렌 59개월

크리스 19개월





사람의 뇌는 많은 기억을 지우지만 정말 힘들었던 기억은 지우지 않는다. 이 기억은 나에게 일종의 트라우마.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자연스레 내 몸과 마음이 움직인다.


둘째가 어린이집 입소할 것을 생각해 이런저런 일을 시작한 나. 계속 연기되며 생활 리듬이 말이 아니다. 어떻게 버텨보려 했는데 이제는 뭔가 스케줄 조정이 필요할 듯싶다. 4월 6일에는 개학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그래도 한번 다 같이 아파보았던 지옥 경험이 나를 다독인다. 뭐가 됐던 또 이렇게 아픈 것보다는 낫겠지.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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