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아이와의 시간이다

돌아 돌아 찾은 첫 번째 파랑새

by 엄지언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매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벌써 주말이라니. 하루는 되게 긴데, 일주일은 너무 빠르게 간다.


하루를 보내느라 급급하다. 그때그때 반응하느라 가끔은 내가 하는 것들이 잘하는 것인지 아닌지 돌아볼 여유가 없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먼 훗날 돌이켜 보았을 때, 이 시간을 후회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기대했던 만큼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게 최선이었다고. 그러니 잘했다고. 나 자신을 토닥이며 칭찬할 수 있을까?


가끔 나는 인생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학창 시절 나는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공주 키우기 게임에 푹 빠졌었다. 처음엔 서툴어 이상한 결과가 나온다. 딸이 가출해 소중한 시간을 까먹기도 하고, 내 예상과 달리 목수가 되기도 한다. 여러 번 전략을 세우고 다시 결국 원하는 결과가 나왔던 추억.


프린세스 메이커 기억하시는 분 계실까?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인생도 그리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다시 돌아가면 분명 나는 잘하지 못할 것이다. 그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다. 내 한계였다. 하지만 만약, 지금만큼의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돌아간다면?


이런 마음이 들 때, 나는 칼 필레머의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책을 만났다. 오랜 세월을 산 현자들이 삶을 돌아보았을 때 공통으로 말하는 인생의 지혜. 이들이 깨달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수많은 경험을 가지고 현시점에 도착한 효과를 누릴 것이다. 과연 현인들은 육아에 무엇이 중요했다 말할까?


LESSON 11.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필요하다면 희생도 감수하라. 계획된 ‘좋은 시간’ 뿐만 아니라 흘러가는 소소한 일상을 함께하는 것이 부모와 자녀를 더 가깝게 만든다.
LESSON 12. 깨물면 유독 아픈 손가락, 드러내지는 마라 자녀가 둘 이상이라면 그중 편애하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라. 하지만 절대로 아이들이 그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된다.
LESSON 13. 몸의 멍은 지워지지만 가슴의 멍은 평생 남는다 훈육은 애정 어린 방식, 존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체벌은 무조건 안 된다.
LESSON 14.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계의 균열만은 피하라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녀와의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금이 가는 것만은 막아라. 설령 부모가 양보하더라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LESSON 15. 자녀와의 관계는 ‘평생의 관점’에서 보라 자녀가 독립해서 집을 떠난 후에도 부모 자식 관계는 지속된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내린 결정이 나머지 절반의 인생에서 자녀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들이 강조하는 몇 가지가 있었다. 편애하지 말 것. 이것은 내가 최근 올린 '총애의 부작용'과도 일치한다. 체벌하지 말 것. 체벌은 득 될 것이 1도 없다. 관계를 유지할 것. 내 아이라서 나와 좋은 사이를 유지할 것이 당연한가? 아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부모의 노력에 따라 아이와의 거리가 결정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이 가장 중요하다 말하는 것. 여러 번 강조해도 부족하다는 것. 그것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훗날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있다면 바로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라고 인생의 현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딱 한방이면 자녀 양육과 관련한 온갖 문제들이 거짓말처럼 해결되는 ‘마법의 특효약’은 없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게 될 문제들을 미리 경고해주며, 평생 아이와 유대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한 비법 말이다. 인생의 현자들은 그 비법이 바로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귀띔한다. 그들은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필요하다면 희생도 감수하라고 말한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인생의 현자들은 말한다. 자녀와 평생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도록 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오직 시간이라고.


현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자녀 양육의 비법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시간'이었다. 특별한 사건보다는 일상을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단다. 그것이 관계를 지킨다 그들은 말한다. 모든 아이들에게 부모와의 시간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아이처럼 예민한 아이들에게는 더욱 중요할 것이다. 내가 그리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부모와 있을 때 불안도가 낮아진다


많은 예민한 아이들이 불안도가 높다. 불안도가 높은 아이들은 원시시대 이상한 것이 나타났을 때, 먼저 가까이 가지 않고 안전하다 판단했을 때 가서 슬쩍 보았다. 불안함은 그들이 이 세상을 신중하게 살아가는 무기다. 다룰 줄만 알면 건강과 생존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그 불안함이 과하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아이들은 애착을 잘 형성하면 부모와 있을 때만큼은 편안한 생활을 한다. 안전지대(safe zone)가 생기는 것이다. 결과 부모와 함께하며 문제없이 발달한다. 그런데 불안한 상황에 놓이면 상위 뇌가 아닌 원시 뇌에 피가 돈다. 정시기 지나 적응하면 괜찮다.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 그런데 과민한 일부는 잘 적응하지 못한다. 계속 겉돌거나, 문제행동을 하거나, 유달리 거부가 심한 것이 그 사인이다. 주양육자가 있으면 그나마 버티지만, 없 그 상태에 오래 노출되면 전두엽 발달이 지연될 수 있다. 모든 포커스가 생존에 맞추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평소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좋다. 일정 시간이 지나 상위뇌 발달이 잘 되면, 그때 좀 더 시간을 늘려 사회에 적응해도 된다.



부모와 있을 때 사회성을 배운다.


많은 민감한 아이들이 감각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다. 남다른 감각 반응으로 사회성이 결여된 듯 보인다. 울고, 충동적이고, 거부하는 등 자기 조절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남다르게 욕구가 클 수 있다. 적당하면 문제되지 않는데, 과하면 항상 타깃이 된다. 아이들이 싫어하고 거부하면, 원인을 모르고 상처 받게 된다. 예민한 아이들은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옆에서 지도해줄 보호자가 필요하다. 단체생활에서 일대일 케어를 받지 못하므로 안 좋은 경험이 좋은 경험보다 먼저 쌓일 수 있다. 그러면 대인관계를 힘들어하고 회피하게 된다. 내 아이의 뾰족한 부분이 잘 조절되어 어우러지도록 부모가 관심을 갖고 지도해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되었을 때의 시너지 효과는 크다. 사회적 장점도 많기 때문이다. 공을 들여 원석을 다듬어야 한다.



부모와 있을 때 자신의 특성을 이해받을 수 있다


사회에 적응하고 나면 그게 끝이 아니다. 평균과 다르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소수자인 아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특성을 맞추려 한다. 자신의 욕구를 접고 꿈을 포기하기도 한다.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혼자 튀어 망치질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그랬다. 평균과 달랐던 난 항상 사람들에게 나를 맞추었다. 내 재능을 일부러 발휘하지 않았다. 그나마 내 본모습을 보일 때는 놀 때였다. 그때만큼은 내 에너지를 발산했고 친구들은 나를 좋아했다. 런데 나에게 남는 건 무것도 없었다. 특히 여자아이라면 신중하자. 여아 그룹은 서열이 아닌 평등 관계를 추구한다. 이질적인 것을 싫어해 따돌린다. 여자 영재는 그룹에서 제외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다는 연구결과다.


어떻게 해야 할까. 비슷한 아이들과 친구가 되게 해주어야 한다. 자신이 가진 걸 표출할 루트를 열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렇게 이끌어줄 부모가 함께해야 한다. 스스로 할 줄 안다면 다 되었다. 손 떼도 된다. 아니라면 조금 더 도와주자. 직접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 조언하며, 필요시 도움 주는, 든든한 코치가 되어주면 된다.




내가 관찰한 많은 케이스, 예민한 아이가 잘 자란 대부분의 경우 일정기간 부모가 옆에 있었다. 꼭 좋은 부모여야 할 필요 없다. 최선을 다하는 부모면 된다. 아이는 그것을 보고 배워 자신의 인생에도 최선을 다한다. 워킹맘이라고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루 세 시간 엄마 냄새> 이현수 박사는 짧더라도 질 높은 시간을 보내면 된다 말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 그 골든아워가 하루 세 시간이라 주장한다. 내 주변의 워킹맘들은 퇴근 후 집중해 질 높은 시간을 보내고, 함께 자며, 주말에 올인하면 잘 자랄 수 있다 말한다. 그 말에 나도 동의한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면 될 것이다.


때가 되면 아이는 부모에게서 벗어나 사회로 진출한다. 아이는 결국 부모로부터 독립한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내 인생 말미에 이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잘했다 말할 수 있을까? 너무 감사하게도 현인들이 나에게 미리, 인생을 시뮬레이션할 기회를 주었다. 그들의 수많은 인생을 통해.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저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돌아 돌아 첫 파랑새를 찾다. 너무나 당연한, 하지만 요즘세상엔 어려운 아이와의 '시간'




육아서 필사 노트

인생의 현자들은 3가지 중요한 교훈을 들려준다.
첫째,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시간이다.
둘째,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셋째,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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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by 칼 필레머


수많은 인생을 미리 걸어간 그들에게 묻는다. 어린 당신 같은 나에게 조언을 한다면, 당신을 무엇을 알려 줄 건가요? 오랜 세월을 산 현자들을 인터뷰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 2011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코넬대학교의 인류 유산 프로젝트이다. 육아뿐 아닌, 결혼 일 인생 등 농축된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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