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내복

by 책이고파

어머님이 본인 내복을 보여주시며 말씀하셨다.
"여기 봐봐. 이거 어제 내가 목 늘어진 거 꼬매느라 혼났다. 근데 이 속은 별로 질감이 안 좋아. 다 일어났어. 내 친구에게 이거 꼬매입는다고 하니까 하나 사 입으라더라. "
정말 목 주변이 한없이 늘어나서 어깨에 걸칠 정도였다. 어머니는 목부분 양쪽을 속으로 접어 바느질을 하셨다.
"너무 안 좋네요.. 버리고 하나 사세요."
"이거 니가 작년에 나 준거잖아. 너한테 크다고."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드릴 땐 이 상태는 아니었는데. 순간 기분이 확 상했다. 네가 그런 걸 줬는데 내가 그냥 입었다 하는 식으로 들린 것이다. (쓰다보니 내가 너무 자격지심에 빠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어머니는 이 내복의 출처를 밝히신 것이건만)
결국 그 내복은 버리는 것으로 결론 났다. 휴지통에 얌전히 집어넣었다.

그럼 이제 어머니의 내복 상의 한 벌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작년에 비해 살이 5킬로그램이 빠지셨다며 전보다 작은 사이즈가 맞을 것 같다고 하셨다. 하나 사야겠다고 하시며 이마트에서 하나 사다 달라고 하셨다. 난 당장 갈 일도 없고 날도 추우니 귀찮은 마음이 들어 어머님이 수영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시면 어떠시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물건을 잘 못 고르신다며 부탁하는 거라 하셨다. 유니클로 매장은 근처에 없으니 이마트에서 살 수밖에 없겠다고 하셨다. (이마트에서 산 것은 질이 좀 떨어진다고 하심) 그리고 미디움 사이즈가 맞는지 내 것을 한번 가져와 보라 하셨다.
내가 불편한 기색을 보였을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고는 나가려는 나에게 내복은 본인이 직접 사겠다고 하셨다. 난 아무 말 없이 나왔다. 마음이 불편했다.

서랍을 살펴보니 작년에 막내가 입던 미디움 사이즈 내복이 눈에 띄었다. 지금은 안 입는다. 아주 깨끗하지는 않지만 입을만한 것이다. 사이즈를 확인해 보시라고 들고 갔다. 어머니에게 그 옷이 맞았다. 새 것이 아니어서 죄송하다고 하니까
"그럼 이거 버리냐? 너희는 안 입을 거잖아."
하신다. 좌불안석이다. 입겠다고 하시는데 분위기는 영 아니시다. 일단 입으시고 나중에 새 것을 사 드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 왈
"내 돈으로 사면 되지 뭘 사 주냐?"

찜찜하다. 어머니도 그러실 것 같다.
직접 사다 달라는 부탁을 거절해서가 아니라
마음 씀씀이가 없어서..
딸들 옷 사러 가는 것은 귀찮아도 시간 내서 사오건만 어머님 것은 알아서 사세요 하는 마음에 서운하셨을 것 같다.
아이들보다는 부모를 먼저 챙기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날이 아이들보다는 적게 남았고 또 키워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잘 섬겨야 하는데 실제로는 아이들을 먼저 챙기게 된다.
죄송했다고 가서 말할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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