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납금을 줄여줄 수 없을까
스타트업 파산의 모습
IT 기술을 활용하여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통하여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회사를 스타트업이라 한다. 경쟁시장에 뛰어들어 기존의 업체들이 안고 있던 비효율성을 해결하는 회사가 대표적이다.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파산의 위험을 감수하여야만 하는 회사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경쟁하는 업체들이 당장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스타트업은 계속하여 돈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과정에서 혁신을 도모한다.
예를 들어, 쿠팡은 오프라인 할인마트, 택배차량을 늘리는, 기존 유통회사의 성장 메커니즘을 거부했다. 대신에 "익일배송"을 가능하게 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다음, 전국에 저온물류창고를 깔고 첨단 마케팅 기법을 활용한 웹사이트를 고도화하면서 소위 유통혁명을 일으키는데 성공하였다. 쿠팡이 당장 돈 버는 것에만 착안하였다면(기존의 유통회사들이 그러하였듯이) 결코 현재처럼 유통시장을 독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타트업의 성공은 쉽지 않다. 쿠팡마저도 약 10년의 막대한 영업손실을 감수하여야만 했다. 토스(toss)를 창업한 이승건은 6년 동안 8번 망했다고 한다. 이승건 회장처럼 결국에 성공한다면 멋진 성공스토리가 되는 것이지만, 그러한 스토리 뒤에는 말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창업자들이 존재한다.
스타트업을 창업할 때에는 (1) 투자를 받거나(상환전환우선주 등 발행), (2) 대출을 받는다. 특히 코로나 19 펜데믹 전후하여, 기술보증기금이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신용보증기금, 신용보증재단 등의 보증부 대출 또는 직접 대출이 많았는데, 그러한 대출을 받은 회사에 대한 파산 신청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리고 창업자들이 실패를 인정하고 회사를 정리할 때, 회사의 정리와 그 후의 재기를 돕는 것이 이른바 도산 전문 변호사의 역할이다.
창업자의 고뇌를 마주할 때
오늘 오전에 파산신청서를 제출한 회사는 플랫폼 개발을 위해 3년간 노력하다가 결국에는 파산을 결정한 회사이다.
이 회사는 약 3년간 매출이 0원이었다. 즉, 3년 동안 돈을 "전혀" 벌지 못했다. 이 회사는 플랫폼 개발을 위한 개발비용, 직원 인건비만을 지출하였다. 대표이사는 급여를 전혀 지급받지 못하였다. 재무제표를 자세히 보면, 매년 지출을 줄이기 위하여 고군분투한 창업자의 노력도 엿보인다.
이 회사는 플랫폼을 개발하기 위해 다수의 개발 관련 계약을 체결하여 왔다. 회사가 3년간 체결하였다가 해지되기를 반복한 수 많은 계약들을 보고 있자면, 대표자가 가졌던 고뇌를 그대로 느끼게 된다. 회사가 자체적으로 개발 역량을 갖추었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지만(개발자가 직접 창업하는 경우), 모든 회사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개발자들이 직접 창업하는 경우보다는 기획자, 마케팅담당자, 개발자 등이 팀을 이뤄서 창업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이므로, 개발 역량이 부족하였다는 것만으로 창업자를 탓하여서도 아니된다.
파산신청서를 제출할 때는 대표이사의 진술서가 필수적인 서류이다. 법원 입장에서는, 회사의 흥망성쇠를 알아야 파산을 선고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팀의 경우 대표자께 진술서 견본 파일을 몇개 보내드리면서, 어느 정도 선까지 작성해주셔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드린다. 그러나 매번 설명드릴 때마다 약간의 송구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누구나 그렇듯이, 실패를 들여다보는 일은 감정적으로 힘든 일이다.
예납금 - 자산, 매출이 전혀 없으면 줄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서울회생법원의 경우, 최근 예납금 부담을 경감하기 위하여 실무준칙을 개정하였다.
부채 100억원 미만인 경우 예납금을 500만원으로 일률화하였다. 과거에는 부채 100억원 미만인 경우에는 예납금이 500만원 ~ 1500만원으로 형성되어 있었던바, 예납금 부담을 크게 완화하여 준 것이다.
그러나, 자산이 전혀 없고, 매출도 발생하지 않은 회사(대표적으로, 스타트업 등)의 경우에는 파산관재인이 선임되어도 환가 및 배당할 것이 없으므로, 이른바 "동시폐지"에 준하여 예납금을 더 낮추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있다.
실제로 예납금 마련을 위하여 대표이사들이 개인 신용대출 등을 활용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고, 예납금에 대한 부담때문에 파산을 미루는 경우도 보았다. 회사의 실제 사정에 따라 예납금을 더 낮출 수 있다는 근거를, 서울회생법원 실무준칙 등에 남겨두는게 좋지 않을까 한다.
동시폐지면 예납금이 0원
만일, "동시폐지" 사건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예납금을 전혀 내지 않아도 된다.
"동시폐지"란 법원에서 파산을 선고하면서 동시에 파산 절차를 끝내버리는 것이다(채무자회생법 제317조 제1항).
본래 파산은 "파산선고 -> 파산관재인 선임 -> 환가 및 배당 -> 종결"의 흐름을 따르는데, 동시폐지를 하게 되면 "파산선고 및 종결"로 절차를 즉시 끝내버리는 것이다.
동시폐지는 '파산관재인을 선임하여 자산, 부채, 부인대상행위 등을 조사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생각건대, (1) 영업이 중단되고 상당한 시일이 경과하고, (2) 종업원이 없고, (3) 재산목록과 대표이사 심문 결과 드러난 사정에 비추어 볼 때 법인에 아무런 자산이 남아 있지 않아야 하고, (4) 법인의 채권자가 금융기관만 남아있는 등 부채 현황이 단순하고, (5) 부인대상행위(편파변제, 무상행위 등)가 없는 것이 명확해보이는 경우로서, (6) 예납금을 납부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회사 및 대표이사의 경제적 사정이 어렵다는 점을 소명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동시폐지를 위한 절차로는, (1) 파산신청서 및 대표자 심문사항의 답변서에 동시폐지에 관한 요건이 충족되었다는 것을 소명해야 할 것이며(그래야만 법원에서는 검토를 해주실 것이다), (2) 법원이 동시폐지에 관하여 채권자들을 상대로 의견조회를 하여야 하며, (3) 채권자들의 의견에서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실무적으로는, 유동화전문회사의 경우 동시폐지가 비교적 자주 이루어지고 있다.
동시폐지가 이루어지면, 파산관재인 선임 없이 법원의 파산폐지결정 공고(채무자회생법 제317조 제2항) 및 통지(법 제313조 제2항 유추적용)만으로 파산절차가 종결되며, 회사는 법인격이 소멸하게 된다.
만일, 동시폐지가 이루어진 회사에 잔여재산이 남아있는 경우(대부분, 잔여재산이 남아있으면 동시폐지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동시폐지 이후에 숨겨진 재산이 드러난 경우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청산인이 선임되어야 하는데, 이 경우 누가 청산인으로 선임되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1) 종전 회사의 이사가 청산인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 (2) 법원이 선임하는 사람이 청산인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법인파산실무, 647면).
스타트업 파산, 대표이사 개인의 재무 상태도 점검해야
회사를 파산하면서 대표이사 개인에게 불이익이 오는 것이 있는지 여쭤보시는 분들이 많다. 회사를 어떻게 운영했는지에 따라, 간혹 대표자가 책임을 주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회사를 운영한 경우에는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
법인파산 사건은 변호사가 직접 수행해야만 대표자를 보호할 수 있다. 과거에는 사무장님을 시켜서 파산신청서를 대충 접수하고 끝나는 일이 많았는데, 파산절차 종결에 실패하거나 대표자가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의뢰인들 입장에서는 담당 변호사가 직접 법인파산 사건을 수행하는 로펌을 찾아야만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