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희로애락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라고 하여도 매번 승소만 할 수는 없다.
어쏘 변호사 시절, 내가 모셨던 변호사님 중 변론을 가장 잘하시던 분이 계셨다. 경력 30년은 가볍게 넘은 변호사님이셨는데, 체력이 젊은 변호사 못지 않게 좋았고, 항상 안광이 번뜩이는, 아주 유능한 분이셨다. 어쏘 변호사가 쓴 서면을 단어 하나, 띄어쓰기 하나까지 꼼꼼히 읽으시던 분이셨다. 서면의 논리가 궁색하거나 근거가 부족해보이면 여지없이 송곳같은 질문을 하셨다. 그분께는 매번 서면을 준비해서 보고드릴 때마다 식은땀이 흘렀다.
그 선배 변호사님으로부터, 경상도에서 진행된 대형 행정소송을 담당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도시개발과 관련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가 10년 넘게 진행되어 왔는데, 그 프로젝트가 일순간 물거품이 되는 행정처분이 있었다. 우리 의뢰인들은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젊음과 돈을 모두 쏟아부은 사람들이었다. 의뢰인들은 소송 결과에 대단히 민감하였다.
위 행정사건과 관련된 가처분("집행정지") 사건을 시작하였다. 정말 열심히 다투었는데, 결국 패소했다. 선배 변호사님은 용안이 시뻘겋게 변하시더니 이내 사무실을 나가버리셨다. 나 역시 패소한 것이 분하였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당시 어쏘 변호사 신분이었던 나는, 위 선배 변호사님처럼 감정적으로 격앙되지는 않았다.
이것이 어쏘 변호사와 개업한 변호사의 넘을 수 없는 차이이다. 의뢰인과 상담을 해서 사건을 맡기로 한 변호사는, 의뢰인이 보낸 신뢰에 보답하여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단순히 돈을 받았으니 사건을 이겨야 한다는 마음가짐과는 다르다. 개업한 변호사는 마치 작은 보트에 사람을 태운 선장 같은 느낌으로 산다. 어쨌든 사람을 태웠으면 무사히 항해를 마쳐야 한다.
그러나 선장이 아무리 운전을 열심히 해도, 거대한 해일이 덮쳐오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물론 변호사가 실수를 하였거나, 능력이 부족하여 패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한 변호사라고 하여도, 예상하지 못하게 패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최근 유능한 의뢰인을 도와 열심히 사건을 수행했으나,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패소하였다. 또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건 중에는 가볍게 이길 것으로 예상하는 사건도 있으나, 승소를 장담하기 어려운 사건도 있다. 심지어 어떤 사건은 패소할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패소하였다고 좌절하고 있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또한 패소할 것 같은 사건이라고 하여 가만히 있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패소한 날에는 꼭 운동을 한다. 머리를 차갑게 만들어 가장 효과적인 대처가 무엇일지 잠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헬스장에서 하체 운동을 하고 나왔다. "도대체 왜?"라는 생각을 하다가 잠시 휘청일 뻔 했으나, 무거운 무게가 승모근을 짓누르고 있어 정신을 차렸다. "도대체 왜?"보다는 "앞으로 어떻게?"에 집중하기로 한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앞으로는 최선의 수(手)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법무법인 청목 엄건용 변호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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