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세스 박 Apr 15. 2020

[임신과 출산] 100일간의 좀비 생활

17.12.2-18.12.29 맘스홀릭 베이비 카페 엄마 칼럼니스트


난 사람이 아니었외다. 


그저 눈만 뜨고 생활했을 뿐 내 의지대로 먹고,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기를 낳고, 병실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생아실에서는 나에게 쉴 새 없이 수유하러 오라며 호출을 하였다. 


나도 힘들면 분유를 먹여달라고 해도 되는데, 뭐 아기들이 악마의 젖꼭지를 한 번 물어서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엄마 젖은 안 문다나? 


여기저기 본 거랑 들은 거는 많아가지고, 나는 기어이 귀신 몰골을 해가지고서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러 갔다.

 

그렇게 가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 아기는 바로 잠들어버리고는 했다. 


'아니 정말 배가 고픈 것이 맞나?' 


그럼 옆에 간호사분들과 숙련 산모님들께서 조언을 해주셨다.


"발을 한 번 간질 어보세요."


'아 자세 잡기도 힘든데, 젖 물리랴 손으로는 발 간질이랴.' 몸은 고되고, 잠은 못 자서 머리는 어지럽고, 자세는 잡아야 하고, 이왕 온 거 애 입에 모유 한 방울이라도 어떻게든 떨어뜨리고 가야 하는데, 결코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나도 내가 정말 신기한 게 임신했을 때도 거의 없었던 모성애가 애를 낳고 나서부터는 어디에서 샘솟았는지 매번 병원 수유실에 가서 허탕 치고 나올 때마다 간호사들에게 부탁을 하고는 했다. 


"언제든 불러주세요. 자다가도 수유하러 올게요." 


그렇게 자주 부를 줄 모르고 나도 내가 말을 참 쉽게 던졌다 싶다. 정말 자주 불러주셨다.


어떤 때는 내가 수유실에서 병실로 돌아가자마자 돌아오는 길에 연락이 왔다고 해서 나는 침대에 등 한 번 대지 못하고 또 수유하러 가기도 했다. 


그렇게 병원에서의 나의 악착같았던 수유 패턴은 조리원에 가서도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의 지독했던 수유 방식은 조리원 생활 일주일 만에 포기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심하게 몸살이 나서 몸져누웠기 때문이었다. 


몸살이 났던 이유는 수유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유축이었다. 


난 진정 모유의 여신이었다. 나에게는 항상 모유가 넘쳐흘렀다. 


"모유가 많으면 좋은 거잖아요!" 


모르시는 말씀! 많은 것도 어느 정도가 있지!


나는 아기에게 수유할 시간 외에는 늘 유축기를 가슴에 대고 살아야 했다. 그리고 내가 샤워를 할 때면 모유가 가슴에서부터 몸 전체에 흘러내려 마치 모유로 샤워하는 듯한 야릇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었다.


만약 조리원 모든 아기들에게 나의 모유를 먹인다고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양이었다.


나는 젖양이 너무 많아 계속되는 수유와 유축으로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그저 물로 입을 헹구는 정도로만 갈증을 해결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수분이 들어가게 되면 그 많아지는 양을 또 어찌 감당하리오! 


정말 그 넘치는 모유 때문에 나는 한동안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고, 젖몸살이 너무 심해서 고열에 시달리기도 하는가 하면, 가슴은 물론 겨드랑이까지 딱딱하게 뭉쳐서 수시로 가슴 마사지를 받아야 했다. 


이러한 나의 수유와 유축 전쟁은 조리원을 나와 친정에 몸조리를 하러 가서도 계속되었다.


친정에서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지내던 방, 연인과의 데이트를 앞두고 설렘에 잠을 설치기도 하고, 밤새 전화기를 붙잡고 연인과의 달콤한 대화를 나누던 그 낭만적이었던 공간은 순식간에 먹고 먹이는 동물의 왕국이 되어버렸다.

난 아이에게 계속 먹이고, 아이는 계속 먹고 싸고, 이건 뭐 밤낮도 없고, 시간 간격도 불규칙하고, 횟수도 잦았다. 


어디 그뿐이랴 방에서는 아기의 울음소리, 유축 소리, 젖병소독기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응애~~~~", "쉭쉭쉭쉭", "윙~~~~"


이건 뭐 24시간 풀가동 기계공장도 아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하나 더 나는 천기저귀를 썼다. 


"오! 요즘 젊은 사람들 그런 거 안 쓰던데, 대단하네!"


'자랑하는 거 아닌데요. 저 후회하고 있는데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갔을까? 싶다. 


아무래도 천기저귀를 쓰면 아이가 더 빨리 자주 깬다. 게다가 분유보다 모유를 먹으면 또 더 자주 깬다. 


난 이 두 가지를 다 했으니 정말 제대로 좀비가 되어 멘붕상태로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아무도 없는 동굴에서 나랑 애랑 둘 다 한 번 살아보겠다고 전쟁 아닌 전쟁을 하면서 그토록 처절하게 보내던 중 그래도 애가 점점 커가면서 먹는 양도 늘고, 싸는 양도 늘고 하면서 시간 간격이 점차 길어지더니 조금씩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밝은 빛은 살짝 새어들다가, 어느 순간 해처럼 환하게 비칠 무렵이 되자 드디어 100 일님이 오셨다. 


기절 직전에, 바로 기적이 찾아온 것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임신과 출산] 출산이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