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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박 Apr 22. 2020

[임신과 출산] 육아 우울증 극복기

17.12.2-18.12.29 맘스홀릭 베이비 카페 엄마 칼럼니스트


아이는 정말 사랑스럽고 예뻤다. 


하지만 아이는 나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 또 나를 외롭게 하였다.


나는 아이를 통해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아이는 내가 원하는 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았고, 행동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따금씩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짜증내고 울기도 하였고, 가끔 아프기도 하였다. 


어려웠다. 아이는 엄마인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할 존재였는데,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하니 울 때마다 영문도 모른 채로 수유를 해보거나 기저귀를 확인해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겪어는 봤어도 이렇게 말을 못 하는 사람과 지내본 적이 없어서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솔직히 아이를 키우는 초반에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마음이 힘든 것까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먹는 양이 늘어나고 자는 시간도 길어지고, 규칙적인 생활패턴을 가지게 되자 나는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서 생각이 많아지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혼자 있는 나를 보게 되었고, 그 이후로 점점 외로움과 우울함을 느끼게 되었다.


불과 아이를 낳기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바쁘게 지냈던 나였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 덩그러니 아이와 나 둘만 있었다.


아이는 함께 있어도 나에게 끝없는 육체노동만을 하게 할 뿐 나와 대화를 할 수 없었기에 나의 어떠한 감정들도 공유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더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유일한 존재인 아이와 소통을 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아이와 소통이 되지 않으니 하루 중 내가 아이 이외에 유일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인 남편에게 집착 아닌 집착을 하게 되었다.


나는 매일 오후 4시 정도만 되면 남편에게 전화나 문자를 해서 언제 퇴근하는지 물어보고는 했다.

하지만 남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육아 우울증은 전혀 해소되지 못했다. 


그때 생각했다. ‘역시 나의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구나 ‘라고 말이다. 


내가 몸이 불편한 곳이 있으면 나 스스로 약을 먹던지 운동을 하던지 해서 해결해야 했던 것처럼 마음의 문제 역시 그렇게 풀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하면 기분 좋아지는 것들에 대해서 한 번 떠올려 보았다.


나는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산책하는 것도 좋아했다.


난 그런 사람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아이를 챙기고 돌보느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잠시 잊고 있었는데, 난 바로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한 날부터 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이를 보면서 편하게 음악을 듣기 위해 아이 x을 구매해서 들었고, 회사 다닌다고 동네 이웃을 사귀지 못하는 바람에 그제라도 이웃을 사귀기 위해 인터넷 카페에 친구를 구한다고 글을 올려서 이웃을 사귀었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남편에게 애를 잠시 맡겨두고 10분이라도 혼자 산책을 하고 들어왔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지내니 육아를 하면서 경험했던 외로움과 우울감에서 많이 벗어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육아 우울증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였고, 그래서 차라리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어느 정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가 아이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날이었다.


나는 너무 힘이 들어서 잠시 아이와 떨어져 있다가 다시 아이에게로 갔는데, 아이가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팔다리를 마구 움직이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무언가 아름다운 존재를 본 것처럼,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는 표정과 온몸으로 나를 보며 자신의 기분을 표현해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순간 울컥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게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고 나니 내가 아이를 너무 힘들게만 생각하고, 때로는 귀찮아하고, 그래서 아이에게 짜증내기도 했던 것들이 미안해졌다.


그리고 하나 더


문득 아이가 뱃속에서 열 달 동안 답답하게 지내며 꿈꾸었을 세상이 아이에게 아름답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세상인 내가 아이에게 천국 같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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