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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박 Jul 05. 2020

[회사] 회사는 진정 나쁜 남자인가

17.12.2-18.12.29 맘스홀릭 베이비 카페 엄마 칼럼니스트


"이것 봐 결혼 전 그놈하고 비슷하잖아. 정말 나쁜 새끼였는데." 


<2014. 12. xx 어느 워킹맘의 일기>


감기가 벌써 2주째이다. 목소리도 거의 나오지 않고, 잠도 못 잘 정도로 심하게 아팠다.


오늘 새벽 5시에 겨우 잠을 자서는 2시간도 채 눈을 못 붙였다.


정신이 하나도 없고, 젖은 솜같이 무거워진 몸을 겨우 일으키고는 일단 머리만 대충 감았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선크림만 하나 바르고는 머리는 젖은 채로 해서 어린이집에 애를 맡기고 출근길에 나섰다.


'아 오늘은 정말 힘든데, 그놈의 변경계약 2건 때문에 무조건 출근해야 하네. 하긴 이제 휴가 쓴다고 말도 못 하겠어. 저번 주에도 이틀이나 몸이 아파서 휴가 내서 말이야.'


회사를 가는 차 안에서는 나의 몸만큼 머리도 복잡하고 피곤하다.


내 몸은 그냥 차에 걸친 채로 간다. 박 대리 코트다. 나름 초보 워킹맘이니, 신상 워킹맘 코트다.


그래도 신기하게 회사 도착해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허스키한 목소리로 인사도 잘한다.


목소리만 그렇지 내가 아픈 사람 맞나 싶다.


2주 넘게 기침을 해대니 이젠 내 기침 소리가 사무실 배경음악 같다.


그래도 몸이 아프고, 말을 거의 못 해도 회사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알아도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감기 때문에 나의 척추측만증은 동료들의 관심을 잃었다. 사실은 그게 더 심각한 건데. 


내가 원래 이렇게 아팠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계속 아프게 된 건지 모르겠다.


몸이 아프니 회사를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 몸이 중하지 그놈이 회사가 뭐라고 매일 아침마다 사직을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한 번은 사직서를 내는 꿈을 꾸기도 했다.


부장님과 말다툼하다가 내가 그냥 사직서를 내고 휙 나가버리는 꿈.


근데, 문제는 그 꿈에서 내가 나갔는데, 절대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아니 다른 사람이 그만 둘 때는 막 붙잡고, 생각해보라고 했으면서 나 아니면 당장 계약업무 할 사람도 없는데, 날 잡지도 않다니...


그런데 왠지 꿈에서처럼 현실에서도 그럴 것만 같았다.


오히려 회식까지 하더라니까. 이 사람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서 그 꿈 이후로는 난 사직할 생각을 많이 줄였다.


괜히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오히려 난 금방 후회할 것 같아서 말이다.


예전에 결혼하고 애가 있기 전 같으면 힘들고 지칠 때마다 동료들과 저녁에 술이라도 한 잔씩 하면서 위로받고, 풀고 그랬을 텐데, 이제는 그런 것도 쉽지가 않다.


마치 비상구가 없는 계단을 혼자 올라가다 힘들면 앉았다 또 올라가는 그런 기분이랄까?


힘들다. 어렵다. 회사라는 존재.


하루 중 물리적으로 나의 시간을 가장 많이 지배하는 공간이고, 회사를 떠나서도 정신적으로 회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으니 거의 헤어나 있을 때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쉽게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끌려 다닌다. 


솔직히 돈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돈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뭔가 중독성이 있다. 회사라는 존재가 나에게 말이다. 


나를 무지 힘들게 하면서도, 또 그 힘듦이 나를 버티게 하는 그런 기분이다.


마치 결혼 전에 만났던 나쁜 남자 같다.


내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도 않으면서, 현실에서도 마냥 행복감을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미래를 딱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회사가 돈이라는 수단으로 날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래도 뭔가가 있겠지 하는 기대감과 희망을 품고 계속 다니게 된다.


내 것 같기도 하고, 내 것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회사 때문에 힘든 것 같기도 하고, 행복한 것 같기도 하고,


이것 봐 결혼 전 그놈하고 비슷하잖아. 정말 나쁜 새끼였는데,


사람 마음 잔뜩 홀려놓고 정신 못 차리게 만든 다음에 이용해 먹을 거 다 이용해 먹고, 더 이상 이용해 먹을 거 없으면 "안녕!" 하고 가 버리는, 회사랑 비슷하다.


나 회사를 참 많이도 사랑했었는데,


어쩌다 그토록 사랑했던 회사가 날 이렇게 힘들게 하게 된 거지?


결혼하고 애를 낳아서 그런 건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


회사는 진정 나쁜 남자인가? 맞나? 틀리나? 모르겠다.


이용당하고 있는 건 맞긴 하는데, 뭐 나도 회사를 이용하고 있으니까.


그럼 뭐야. 회사 입장에선 내가 또 나쁜 여자 된 거 아니야?


에이 설마. 회사는 척추측만증이랑 감기 안 걸리잖아.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고, 


아닌가? 가끔 도산하고 합병하고 자회사 하면 그게 그건가? 아 모르겠다.


나쁜 남자이던 아니던, 우리 계속 이렇게 힘들게 지내자! 그게 우리의 운명 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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