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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박 Apr 04. 2021

[회사] 회사는 내 이름이 살아있는 곳. 존재감

17.12.2-18.12.29 맘스홀릭 베이비 카페 엄마 칼럼니스트

공소 증후군. 


결혼 시작부터 중년까지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자식을 키우고 시부모를 모시는 등 바쁘게 살아오다가 어느 날 문득 남편도, 자식도 모두 자신의 품 안에서 떠나버렸음을 깨닫고 자신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는 심리적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애정의 보금자리라고 여겼던 가정이 빈 둥지처럼 되었음을 깨닫고 주부 자신은 빈 껍데기 신세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증상이라고 하여,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공소 증후군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이러한 공소 증후군이 워킹맘도 오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올 새가 있을까? 싶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챙기고 허겁지겁 회사에 출근해서는 정신없이 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나서는 다시 아이들을 챙기고 누워서 머리만 대면 잠들어버리는 워킹맘들이 말이다. 


즉 나를 포함한 워킹맘들은 하루 중 눈 뜨고 있을 때는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쉴 새 없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도 공소 증후군을 못 겪지 않을까 싶다.


워킹맘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전업주부들의 삶이 때로는 부럽다. 집에 있는 전업주부들이 간혹 4, 50대가 되어 공소 증후군을 겪더라도 말이다.


내가 매일 아침 출근시간에 쫓겨 아이를 어린이집에 대충 맡기고서는 정신없이 주차장으로 달려갈 때마다 다른 전업주부 엄마들끼리 아이를 보내고서는 삼삼오오 모여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되면 순간 너무 부럽다.


비록 전날 애가 아파서 밤새 간호하느라 잠을 못 자도, 회식한다고 폭탄주 메들리에 속이 심하게 부대껴도 그런 것들에 아랑곳할 새 없이 힘차게 생활전선으로 뛰어가야 하는 내 모습이 그들과 너무 비교돼서 스스로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난 전생에도 이렇게 노예처럼 살았을까 싶다. 결혼 전에는 나름 멋쟁이로 통하고, 핫플레이스도 자주 다니고, 브런치도 종종 즐기던 고급녀였는데, 이젠 뭐 매일이 삶의 체험현장이다.


하루하루 바쁘고, 허리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으니 구두와 치마를 포기한지도 오래되었고. 그저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여기저기 분주히 다니기에 버겁기만 한 나날들이다.


그런데 내가 잠시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전업주부들의 뒷모습이 아련해지고, 회사가 가까워질 때쯤이면 나는 약간 나도 모르게 신이 나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한 거다. 내 이름이 살아있는 곳에 갈 생각을 하니까 그런 것이다.


내가 만약 전업주부로만 지냈다면 나의 앞에는 늘 수식어가 따라붙을 것이다. 동네에서는 아이의 이름을 딴 누구 엄마였겠고, 남편 동료들에게는 제수씨나 형수님, 누구 와이프였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난 결혼 전과 다름없이 박○○이고, 박 대리이다.


내가 회사에 가면 하루에 수십 번씩 내 이름과 직급이 불리어지고, 나도 역시 말하고는 한다. 


내가 사무실 내 자리에서 전화를 받을 때에도 “예 감사합니다. ○○부 박○○입니다.”라고 멘트를 시작하니 하루에 내가 전화를 50번 받으면 내가 내 이름을 50번 부르는 것이고, 내 이름을 듣는 사람도 50명인 것이다. 내 주변에서 간접적으로 듣는 동료들까지 하면 그 횟수는 더 많을 것이다.


회사에서는 내 이름, 나 자신이 살아있고 그것을 수시로 확인할 수가 있다. 회사에서는 더 이상 난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와이프도 아니고 누군가의 며느리, 딸도 아니다. 


난 그냥 나다. 내가 작성하는 서류에도 다 내 이름이 박혀있고, 난 나의 능력으로 평가를 받는다.


내가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산다면, 하루 중 내 이름을 나 스스로 몇 번이나 부르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리어질까?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 나는 전업주부로서의 삶도 약간 아쉬울 것 같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워킹맘이니 나를 응원하기 위해서 이런 생각들을 하고 사는 건가 싶을지도 몰라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내가 집에서 설거지를 한다고 접시마다 내 이름 석 자가 새겨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걸레질을 한 자리마다 내 이름이 보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회사는 나를 거치는 모든 곳마다 내 이름이 따라다니고 남는다. 나는 그것이 너무 좋다.


이처럼 나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고, 확인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진정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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