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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박 Apr 17. 2021

[회사] 회사가 내 삶에 주는 의미

17.12.2-18.12.29 맘스홀릭 베이비 카페 엄마 칼럼니스트

회사. 


이번 글은 회사에 대한 마지막 글이다. 사실 내가 결혼, 임신과 출산, 회사에 대한 주제로 여기까지 글을 써오면서 회사 부분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우선은 내가 회사에 대한 나의 이야기와 생각들을 이렇게 써도 될까? 싶었다. 


그리고 현재 휴직 중이라 잠시 잊고 지냈던 과거 나의 워킹맘 시절의 모습들에 나 스스로 좀 짠하기도 했고, 곧 머지않아 휴직기간이 끝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겪게 될 미래 나의 워킹맘 생활의 모습들에 가슴이 갑갑해지기도 했다.


워킹맘의 삶은 실제로도 그리고 그 삶을 글로 써서 봐도 참 힘들고 고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워킹맘으로 사는 것이 그토록 힘들다고 하면서 회사를 계속해서 다니는 이유는 뭘까? 


회사가 나에게 대체 뭐기에 나는 회사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일까? 회사가 내 삶에서 주는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

내가 지금까지 앞서 회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중간에 다 언급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들을 한 번 정리해보고 싶었다.


첫째. 나는 회사에 돈을 벌기 위해 다닌다. 


자아실현이라? 그건 잘 모르겠다. 나는 회사에 입사하고 지금까지 처음 맡았던 업무 하나만을 계속해오고 있고, 그 업무는 나의 전공, 적성, 특성과는 별개의 업무이다. 그런데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 동료들, 친구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다. 


그래도 회사에서 하는 업무로 내 비록 자아실현을 하고 있지는 못해도 나는 매달 내가 하는 일을 통해 회사에서 받는 돈으로 내가 살고 있는 임대 아파트 월세도 내고, 관리비도 내고, 생활비도 쓰고, 나의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도 사준다. 그리고 때로는 나를 위한 물건들을 사기도 한다.


그럼 뭐 되었지. 원래 꿈과 현실은 다르고, 이상은 높다 하지 않았나?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안다고 한들 현실을 무시하고 용감하게 그것만을 할 자신이 없는 이상 나에게 적당히 일 주고 돈 주는 회사를 다니면서 그 돈으로 나와 내 가족들이 먹고살면 된 거지.


자아실현? 꿈?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그런 건 잠시 접어두고 살기로 했다.



둘째. 나는 예전 대학시절을 제외한 학창 시절 때처럼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또 같은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누리고 싶어서 회사를 다닌다.


회사를 다니면 나는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회사에 나가서 일을 하고 저녁에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는 또 일정한 시간에 잠이 든다. 또 회사를 나가면 나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을 만나며 하루를 보내고는 다음 날 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


이렇게 매일 하루 시간표가 짜인 것 같은 규칙적인 생활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지겹고, 답답할 때도 있지만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나와 나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시켜주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나는 회사를 다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와 내 삶이 흔들릴까 봐, 행여나 내가 나와 나의 시간들을 흥청망청 보내게 될까 봐, 불안하고 외로울까 봐 그래서 회사와 회사 사람들에게 잠시 나와 내 삶의 일부를 맡겨두고 나는 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두 번째 이유가 첫 번째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는 이유보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 더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셋째. 나는 회사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다닌다. 


나는 회사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우리 부서 입구에 붙어 있는 부서 조직도에서 나의 얼굴과 이름을 보게 된다. 그리고 사무실 내 책상 위에 붙어 있는 내 이름이 쓰인 팻말, 그 외에도 내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에 나의 이름이 쓰여 있다.


하루 종일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나를 찾는 사람들, 내 이름이 박혀 있는 기안문과 보고서들 그 외에도 내가 회사에서 부딪히는 많은 상황들 속에서 나는 나를 발견하고 확인하게 된다.

내가 만약 전업맘이었다면 부지런히 무언가를 하고, 사람들과 교제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자칫 나를 잊고 또 잃어버리고, 누구의 부인, 누구의 엄마로 밖에 살 수 없을 텐데,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매번 그렇다면 나는 왠지 좀 서운했을 것 같다.


나도 여기 있다고요! 나도 내 이름이 있어요!라고 말이다.


그래. 그래도 회사에서는 힘들지만 분명 내가 존재한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보면 내 존재가 나의 힘듦의 대가로 얻어진 것은 아닐까 싶다. 회사에서의 존재의 크기만큼 힘듦의 크기도 달라지기도 하고 말이다.


넷째. 나는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 


회사일은 집안일과 다르게 하면 바로 티가 나고 결과에 따른 피드백이 그 즉시 주어진다. 또 일의 시작과 끝이 있어서 무언가를 시작해서 끝이 났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을 자주 맛볼 수 있다. 


또한 회사에서 다양한 일을 하면서 나는 나의 능력이 발전되기도 하고, 몰랐던 나의 숨은 재능을 알게 되기도 한다.


‘나에게 사람을 잘 대하는 능력이 있구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말을 잘하는구나 ‘ 이렇게 말이다.

사실 일을 통해 성취감을 얻는 것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상황에 놓이면서 나를 알아가는 것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회사를 다니면서 나를 가장 많이 알게 되었다.


내가 정말 꼼꼼한 사람이고,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머리를 쓰는 일보다 단순 반복적인 일을 좋아하고,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라 딱딱한 서류 업무 대신 사람을 상대하는 업무를 더 맞고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렇게 나는 일을 통한 성취감은 물론이고, 나의 발전과 나의 발견을 위해서도 회사를 다닌다.


다섯째. 회사는 또 다른 나의 이름이 되어주기 때문에 다닌다. 


“저 어느 회사 다닙니다.”


“아 네.”


우리가 마치 학창 시절, 어느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나를 설명하고 나타내어주는 가장 큰 수식어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어떨 때는 혹 그 둘을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처럼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보니 그 학교를 대신해서 사람들이 나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회사가 되었다.


내가 그저 어느 회사를 다닌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나는 나의 남편 회사가 어디인지, 나의 아이가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공부를 잘하는지, 내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 잘 사는지 등 나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을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가끔 그렇게 나와 나의 이름이 되어주는 회사가 편하기도 고맙기도 기특하기도 했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회사가 나와 내 가족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 때문에 나는 회사를 다닌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회사도 다니며 살아보니 가정만이 나에게 울타리가 아니었다. 회사 역시 가정 이상으로 나와 내 가족들에게 울타리였다.


집과 가정이 내 마음의 안식처, 내가 정신적으로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이라면 회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돈을 제공해주는 그래서 물질적으로 나와 내 가족들이 기대고 의지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집과 가정이 심적 울타리라면 회사는 물적 울타리였다.


“회사가 미워! “라고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물론 내가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하기는 했지만, 나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또 그 돈을 줌으로써 내가 지금까지 10년 넘게 밥 먹고, 자식 낳아 키우고, 기르고 하게 해 준 회사의 그 덕을 모르지는 않는다.


나와 내 가족들에게 비바람을 피해 쉴 수 있는 집을 제공해주고, 따뜻한 밥을 먹게 해 주고, 불안한 미래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덜 불안하게 해 주기 때문에 그 안에 있고자 나는 회사를 다닌다.

여기까지가 내가 워킹맘으로 힘들지만 회사를 다니는 이유이다. 이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여섯 가지 정도만 언급했지만, 아마 더 있을 것이다.


이렇게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마지막에 정리까지 하고 나니 많은 생각에 복잡한 마음이 든다.


나는 처음 이 글을 썼을 무렵 내가 워킹맘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힘들고 아플 때였기 때문에 나는 내가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숱한 원망과 비난만을 쏟아낼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회사는 변한 것도 없고 그저 그대로인데, 내가 힘들고 바쁜 상황에 놓이게 되자 괜히 나 혼자서 회사가 나에게 이래도 되는 거야 마는 거야 하고 흥분을 했다가 가라앉혔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고맙다. 회사가. 


어떻게 보면 회사를 좋아할 때보다 싫어할 때가 더 많았는데도 아직까지 나를 내치지 않고 회사 안에 두어줘서 말이다.


워킹맘으로서의 힘든 삶 때문에 회사생활이 참 버겁고, 지옥 같을 때가 많았지만 사실 그건 회사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의 잘못도 아니었다.


일을 하는 여자들의 역할이 엄마에서 엄마+가장으로 분명히 변했지만, 사회적으로나 제도적으로는 그 변함에 따른 인식과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워킹맘이 힘든 것이고, 앞으로도 한참 힘들 것이다.


그래도 나는 회사를 다닐 것이고, 일을 할 것이고, 아이도 키울 것이고, 아이는 자주 아플 것이고, 그래서 나도 마음이 아플 것이고, 모든 것들이 힘들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워킹맘 생활을 꾸역꾸역 잘 버티고 나간 것처럼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도 잘해나갈 것이다.


회사. 이제 와서 널 포기할 순 없어. 처음부터 너는 나에게 운명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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